8월20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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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기 희생자 백락정(1919년생, 충남 서천)씨 사건의 재조사 담당 부서(국)를 바꿔달라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락정 사건은 지난해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받았다가 국방경비법 위반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재조사가 진행 중인데, 야당 위원과 유족들은 현재 조사 담당 국을 신뢰할 수 없단 이유로 담당 부서 변경을 요청해 왔다.
김광동 위원장은 8일 오후 열린 제88차 전체위원회에서 “실무진의 의견과 위원장의 판단으로 (백락정 사건 재조사를) 원래대로 1국에서 맡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사건)신청도 1국으로 들어왔고, 조사 결과도 1국에서 진행했으며 부역 혐의 사건으로 보여서 2국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이 이날 1국 배정 사유로 “부역 혐의 사건으로 보인다”고 말한 대목은 군법회의 판결만으로 이미 ‘부역 혐의자’라는 결론을 내놓고 재조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오동석 위원은 “단심제 등 (당시 사형 집행이) 적법절차대로 진행됐는지도 함께 살펴보겠다는 계획과 함께 1소위(조사1국 관할)에서 비상임위원들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군법회의 판결문만 갖고 속단해서 결론에 이르지는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진실화해위 야당 추천 몫인 이상훈·이상희·오동석·허상수 위원은 “백락정 사건 조사를 애초 조사 1·2국에서 각각 집단희생과 행방불명으로 조사한 데다 현재 조사를 담당하는 조사 1국 4과장이 각하 결론을 예단하고 있어 충실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조사국 변경을 요청해왔다. 조사1국(조사1~4과)은 한국전쟁기 집단희생을, 조사2국(조사2~8과)은 나머지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룬다. 백락정의 조카인 백남식(75)씨도 “조사1국 4과의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지난 30일 진실화해위에 조사담당 부서 변경신청서를 낸 바 있다. 백씨는 이날 한겨레에 “얼마 전 국방부 검찰단에 백락정의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 체포 및 수감 관련 기록물, 사형장소, 시신처리 기록물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서를 보냈으나 ‘부존재’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위원들은 지난달 27일 야당 추천 위원들이 별도로 백락정 재조사 사건 관련 소규모 기자간담회를 열어 조사국 변경 등을 요청한 것을 두고도 설전을 이어갔다. 야당 추천 허상수 위원은 “진실화해위의 ‘위원장 리스크’ 때문에 다수 국민이 인내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이런 일(백락정 사건 재조사)까지 생겨서 일부 위원들이 외부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이에 “자백을 했다”는 표현을 쓰며 야당 위원들이 “정파적인 활동을 했다”는 취지로 비판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자 이상희 위원은 “자백이 뭐냐?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했고, 이옥남 위원은 이에 반발하며 또다시 언성을 높였다.
이상희 위원은 “1기 진실화해위 이영조 위원장이 있을 때도 (국방경비법 위반 군법회의 사형 판결 사건에 대해) 단심제 문제를 제기하면서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며 “재판 절차의 불법성으로 재심 개시되는 사건이 많다. 국방경비법 사건을 시기와 유형별로 분석해달라”고 김광동 위원장에게 주문했다.
국방경비법 위반 군법회의 판결이란
1기 진실화해위(2005~2010)의 경우 국방경비법에 따른 군법회의는 대부분 불법적으로 운영돼 온 것으로 확인돼 판결이 인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자체가 범죄행위라는 판단을 해왔다. 국방경비법 위반 군법회의 판결을 근거로 백락정씨 사건에 대해 이뤄지는 재조사가 ‘부역자 색출’의 새로운 버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가령 2009년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 진실규명 보고서에서 군법회의 판결을 사실상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검찰관 1명이 하루에 159명을 심리하는 등 지극히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대부분 집단살해됐기 때문이다. 단심제와 신속한 집행으로 사형이 남발됐는데, 오전에 검사가 구형하고 오후에 판사가 선고한 뒤 당일 바로 사형집행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들의 사형판결문에는 사형이유가 공란으로 비워진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재조사가 진행 중인 백락정의 사형 판결문 역시 그렇다.
1기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48년부터 1962년까지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죄), 33조(간첩죄)에 의해 판결받은 피고는 약 2만3000명(제주도 군법회의 피고 1600명 제외)이며, 이 중 90%는 민간인이었다. 2만여 명 중 약 30%(7300명)는 사형을, 10%(2100명)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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