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가운데 문상호 정보사령관(앞줄 오른쪽 끝)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둘째 줄 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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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2.20) 아침신문 1면에는 △한덕수 권한대행, 거부권(6곳) △환율 15년 만에 1450원 넘어(5곳) △통상임금 범위 넓어져(3곳) △김용현 전 장관, 시국선언 당일 계엄 선포(2곳) 등이 주요하게 보도됐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분야를 두루 취재하고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권태호 논설실장이 6개 종합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비교하며, 오늘의 뉴스와 뷰스(관점·views)를 전합니다. 월~금요일 평일 아침 9시30분, 한겨레 홈페이지(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① 차이의 발견 : 점점 드러나는 계엄 전후 상황
② Now and Then : Feliz Navidad(호세 펠리치아노, 1970)
① 차이의 발견
# 점점 드러나는 계엄 전후 상황
- 검·경 수사, 군 내부 관계자들의 제보를 통한 의원들의 폭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계엄 전후 상황이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은 계엄도 즉흥적으로 홧김에 했다는 것과, 엉성한 ‘군내 사조직’이 이 계엄의 뇌관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국회 상황이 희생자 없이 무사히 지나갔지만,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보도된 내용 등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1. 계엄 투입 30여명 간부 포섭(9월)
- 현직 군인도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12.3 내란 기획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정보학교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2018년 10월 교육생 신분인 부하 여군을 술자리에서 수차례 성추행해 징역 1년6개월형을 받고 복역을 하다 풀려난 이력이 있습니다. 군 전역 뒤에는 안산에서 점집을 공동운영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중앙일보가 이 점집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 노 전 사령관은 지난 9월 친분이 있는 두 대령에게 (격투·전투에 능한) 중·소령급 35명 선별 지시. “호남 출신은 배제”
2. 정보사령관, 선발 및 대기 지시(10월)
- 10월30일, 문상호 정보사령관(소장)이 김 대령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이어 11월6~7일 선발된 인원을 직접 확인한 뒤, 7~10일께 위수지역(관할 경비구역) 안에서 대기하라고 지시
- 이렇게 현직 사령관이 개입하면, 공식화가 됩니다. 민간인인 노 전 사령관이 사실상 현직인 문상호 정보사령관의 상관이 된 셈입니다.
3. 부대 정기훈련 축소(계엄 1주일 전)
- 계엄군으로 동원됐던 부대들, 비상계엄 선포 1주일 전부터 예정됐던 정기 훈련 및 일정 취소 또는 축소
4. 햄버거 집에서 내란 모의(12월1일)
- 노 전 사령관이 집 근처인 안산의 한 햄버거 가게로 이들을 불러 4인 모임(노 전 사령관, 문 사령관, 두 대령)
- 김용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은 절친한 사이로 육군 참모총장 비서실장-국정원 파견 등으로 서로 긴밀히 연락
- 노 전 사령관과 문 사령관은 같은 대전 출신인데다 박근혜 대통령 때 경호실에 인근 근무
- 지난 11월25일 하반기 장성인사에서 노 전 사령관이 힘써 여러 실책에도 문 사령관 유임
- 김용현 - 노 전 사령관 - 문 사령관의 상하관계 형성
한겨레신문 3면 그래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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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엄 직전 국방장관(12월3일)
- (오전)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 예비역 장성 14인 시국선언
- (오찬) 김용현 장관, 국방부 오찬. “국회가 국방 예산으로 장난질인데, 탱크로 확 밀어버려”.(간부 월급과 수당 인상 미반영)
- (오후) 주변에 “얘기가 새는 것 같다”며,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계엄 사령관 3인방’(방첩사령관·특수전사령관·수방사령관)에게 연락
- 계엄을 계획했으나, 그 시기가 계엄 당일 갑자기 실행된 정황
- 민주당에서 김용현 국방장관 탄핵 추진 계획을 의식해 갑자기 계엄을 서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6. 판교 정보사 100여단에 집결(12월3일 저녁 6시)
- 선발된 정보사 병력 30여명이 계엄 선포 전에 이곳에 대기
- “이들 정보사 산하 북파공작원부대(HID) 임무는 케이블 타이로 중앙선관위 실무자 30명 손·발목 묶고, 복면 씌워 B-1벙커로 납치하는 것, 납치 대상 30명 명단 다 불러줬다”(김병주 의원, 군 내부 제보)
- 탱크 부대장(기갑여단)인 구삼회 육군 제2기갑여단장, 노 전 사령관 지시(?)받고 대기(탱크 동원 계획 의심)
- 국방부 정책기획차장 방정환 준장(전작권전환 TF장), 당일 휴가 내고 이곳으로 이동
7. 삼청동 안가 만찬(12월3일 저녁)
- 윤 대통령 + 김용현 국방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계엄사령관)
- 윤 대통령, 두 경찰청장에게 계엄 선포 뒤 장악해야 할 기관 등이 적힌 문서 전달
8. 계엄 당일 투입 병력과 무기
- 계엄군 1500여명
- 고성능 저격용 소총과 기관단총, 실탄 1만발, 공포탄 4천여발 등 다량의 무기
- 특전사 소속 블랙호크 헬기 12대, 중·대형버스(41대) 등 군용차량 107대
9. 윤 대통령 직접 지시(12월3일 밤)
-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윤 대통령으로부터 ‘4명이 들어가 한 명씩은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느냐, 국회 들어가 끌어내라’는 지시 받았다. 계엄 해제 표결 임박하자 다시 전화해 ‘그것도 못 데리고 나오냐’며 질책했다”(검찰 진술)
-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가능한) 의결정족수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지난 10일 국회)
- 조지호 경찰청장, “계엄 당일 오후 11시37분 이후 윤 대통령이 6차례 전화 걸어 ‘계엄법 위반이니 체포해, 잡아들여’라고 국회의원 체포 지시했다”
10. 윤 대통령, 후회(?)(12월4일 오전 1:20~50)
- 4일 새벽 국회 12·3 비상계엄 해제 의결 직후, 용산 합동참모본부 지하 벙커 결심지원실
- 김용현 국방장관, 박안수 계엄사령관,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최병옥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 등과 회의(공수처 조사)
- 윤 대통령 : “국회에 병력을 얼마나 넣었냐”
- 김용현 장관 : “500명 정도”
- 윤 대통령 : “거봐, 부족하다니까. 1000명은 보냈어야지”
11. 국무회의 의결(12월4일 오전 4:30)
-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의결
12. “체포 용어 쓴 적 없다”(12월19일)
- 석동현 변호사, “윤 대통령은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이 없다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대통령은 법률가다. ‘체포하라’, ‘끌어내라’ 그런 용어를 쓴 적 없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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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윤 대통령은?
- 나흘째 탄핵심판 서류 수취 거절
- (‘법적 책임 지겠다면서 압수수색 왜 막나, 탄핵심판 등기는 왜 안 받나’라는 기자 질문에) “제가 답변할 입장이 아니다”(석동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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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국민의힘은?
-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탄핵안 발의·표결한 국회의원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여아가 공동발의하자”(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 “국회에서 마주치면 악수도 거부하고, 심한 경우 가까이 와서는 ‘배신자’라고 나지막이 속삭이고 가더라. 탄핵 찬성 뿐 아니라,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한 의원들(18명)에 대해서도 다른 의원들이 공식 석상에서 악수를 일부러 하지 않거나,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국민의힘 의원)
15. 생각해 볼 점
1) 군 시스템과 문화, 문제다
- 이번 내란의 핵심으로 ‘군내 사조직’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과거 군내 엘리트들을 개별적으로 포섭해 점조직을 확대시키고 세력을 키워나간 ‘하나회’에 비하면, 규모는 물론이고 역량이 너무 떨어집니다. 만일 이들이 이번에 계엄을 하지 않고, 하나회처럼 계속 세력을 키우는데 주력했다면 실제로 `하나회'처럼 됐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계엄이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무능하고 치밀하지 못한 게 천만다행입니다만, 역으로 이런 무능한 사람들이 군내 요직을 차지하면서 이런 황당한 일을 꾸미고, 또 계선상에 있는 간부들이 제대로 항의를 하거나 폭로도 하지 않고서 그냥 시키는대로 따라간 상황을 복기하면 현재 우리 군의 시스템과 문화에 큰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계엄에 성공하면, 뭔가 자기한테도 떡고물이 떨어지기를 바란건지, 아니면 그냥 선배가 하라니까 그대로 따랐던 건지. 둘 다 문제가 많습니다. 탐욕이거나 판단력이 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50~60대인 이 세대는 어릴 때부터 ‘비판 의식’을 키우기보다는 따르고 순응하는 것을 배워온 사람들입니다. 대개 이 세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사고가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육사로 들어간 이들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일찌감치 육사-군으로 이어진 탓에, 아무런 비판의식을 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명령이면 무조건 따른다’는 식이었습니다. 이번 내란 직후,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군은 명령이 떨어지면, 그게 맞냐, 틀리냐를 생각할 수 없다. 굉장히 급박한 상황에서 그냥 따르는 게 군”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꼭 군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우리 사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떨결에 국회로 불려간 20대 초반의 젊은 군인들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계엄을 막은 것입니다. 20대 젊은 사병보다 못한 사람들이 지금 군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군의 간부 교육을 바꿔야 합니다. 군의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2) ‘평균 이하’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 노 전 사령관은 육사 입학 때 수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추행으로 군복을 벗었고, 지금은 점집을 하고 있고, 쿠데타를 모의했습니다. ‘누가 썼길래 이렇게 조악하냐’던 계엄포고문 초안도 그가 썼다고 합니다. 김용현 국방장관도 한때는 군내 엘리트였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은 서울법대를 나오고, 9수를 하긴 했지만 사법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지적 수준을 보면, 우리 사회 평균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외국에서도 그런 경향이 없진 않지만, 우리나라에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이를 평생 우려먹습니다. 명문대 졸업이 최고의 가성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좋은 대학 나왔다는 과거에 빠져, ‘한 번 엘리트면 평생 엘리트’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 경기고 모임에 갔더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지금 잘 나가는) 걔가 2학년 중간고사 때, (전교) 몇 등을 했는데 나보다 한참 밑이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빠져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전혀 개발 노력을 않거나, 과거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거나, 또는 극우 유튜뷰에만 빠져 망상을 키운 사람들입니다.
- 그런데 이들이 국군통수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명태균의 말처럼, ‘5살 꼬마가 총 들고 있는 격’이었습니다.
16. 사설
1) 군
한겨레 = 내란에 개입한 '군내 사조직', 이 역시 윤석열 책임이다
경향 = '내란 모의' 용현파·롯데리아파, 군 사조직들 전모 밝혀라
동아 = '계엄의 밤' 탱크부대장도 대기… 무슨 짓을 벌이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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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권한대행 거부권
한겨레 = 한덕수 권한대행, 내란·김건희 특검법 즉각 공포하라
한국 = 거부권 행사 韓 대행, '내란·김건희 특검법'은 조속 공포를
동아 = 韓, 6개 법안 재의 요구는 불가피… 양대 특검법은 다르다
중앙 = 정국 혼란 줄이려면 내란·김여사 특검 수용이 현실적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농업 4법’ 등 6개 법안 거부권 행사 이후, 언론들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내란특검, 김건희 특검’은 거부권 행사하면 안된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6개 법안 거부권 행사 직전,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식으로 사설을 썼던 중앙일보도 ‘내란·김건희 특검’은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조선일보는 이날 3개의 사설을 △검사 무더기 탄핵소추 하더니 재판엔 '노 쇼', 헌법·헌재 농락 △이화영 2심도 중형, '공범' 기소된 이 대표는 1심도 하세월 △"김어준 허구" 밝힌 野 의원, 예상대로 金 앞에서 사과 등 민주당을 비판했고, 한겨레는 이날 3개의 사설을 △한덕수 권한대행, 내란·김건희 특검법 즉각 공포하라 △경호처의 압수수색 거부, '윤석열 사병' 자처하나 △내란에 개입한 '군내 사조직', 이 역시 윤석열 책임이다 등 여권을 비판하는 것으로 채웠습니다. 혹시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야당 비판, 한겨레는 여당 비판, 진영논리 심각’이라는 식으로 인식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순 있겠습니다만, 현시점에서 비판의 잣대와 중요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해당 매체가 자신의 소비자(독자)의 needs를 생각하는 차원의 결정이었다면, 납득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언론이 소비자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서 제작한다면 존속도 어려울 뿐 아니라 존재가치가 모호해 지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언론이 일반소비재 상품과 똑같은 제작 결정방식을 가져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② Now and Then
미국에서는 11월 말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곧바로 백화점과 마트는 크리스마스 치장을 하고, 라디오에서는 온통 캐롤만 흘러 나옵니다. 1980년대에는 과소비를 조장한다며 정부 지시로 백화점 등에서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캐롤을 틀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요즘에는 저작권 때문에 캐롤이 예전처럼 많이 들리지 않기도 합니다. 매일 이 뉴스뷰리핑 말미에 노래 한 곡을 첨부하는데, 원래는 12월에 접어들면 크리스마스 때까지 캐롤을 계속 전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2·3 내란 사태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오늘 노래는 유명 캐롤인 Feliz Navidad 입니다. 이제는 누구의 노래라고 한정짓기도 힘든 수준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호세 펠리치아노가 1970년 취입한 캐롤입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 가수인 그는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이렇게까지 유명해지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그리고 캐롤은 그때까지 백인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스페인어 캐롤이 퍼지면서 크리스마스 문화가 다양화 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위 영상은 지난 2006년 호세 펠리치아노가 보스턴 팝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하는 장면입니다. 관객은 모두 백인 일색입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문화가 또 섞이고 융합되는 것이겠지요.
이 Feliz Navidad는 이번 탄핵 집회에서도 민중가수 백자가 발음을 음차해 ‘탄핵이 답이다(davidad)’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개사해 시민들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TrkS0NdCQ8
(*일부 포털에서는 유튜브 영상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시려면, 한겨레 홈페이지로 오시기를 권합니다. 기사 제목 아래 ‘기사 원문’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끝)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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