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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사설] “코로나 때보다 힘들다” 비명 쏟아지는 서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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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에 위치한 한 은행 개인대출 및 소호대출 창구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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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 계층이 정책 대출을 받았다가 못 갚아 정부가 대신 상환해준 대위변제액이 올 들어 1조원이 넘었다. 저신용·저소득층에게 싼 금리로 급전을 빌려주는 ‘햇살론 15′의 대위변제율은 무려 25.3%로, 코로나 기간인 2020~2022년(5.5~15.5%)보다도 늘었다. 취약층에게 100만원까지 빌려주는 소액 생계비 대출의 연체율은 작년 말 11.7%에서 올 8월 말 26.9%로 급등했다. 빚도 못 갚을 만큼 서민 경제가 어렵다는 뜻이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이 12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이 예상되지만 저소득층 민생 경제엔 온기가 닿지 않고 있다. 서민 급전으로 꼽히는 카드 대출 잔액은 44조원을 넘어 2003년 통계 작성 후 21년 만의 최대로 불어났다. 빚 갚고 남은 돈이 최소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한계 가구주’는 275만명에 육박한다. 이 중 157만명은 번 돈이 부채 상환액에도 미달해, 빚 갚고 나면 수중엔 한 푼도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가계 대출을 받은 사람 1972만명 중 8%가 회생 불능 상태인 셈이다.

가계 살림살이는 곤궁해지고 있다. 지난 2분기 적자를 낸 가구 비율이 23.9%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입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계 적자는 소비 부진으로 이어져 소매 판매액 지수가 9분기 연속 감소했다.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감소 기록이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들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지난 2분기 8.0%로, 2015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 2분기(6.0%)보다 높았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공실률은 41.2%에 달하고, 강남(20.7%) 홍대(14.4%) 등 대표 상권의 공실률도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법인과 개인 사업자가 100만명 가까이 줄폐업하는 등 내수 부진과 고금리 여파로 자영업 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진 탓이다.

그동안 정부는 원리금 상환 유예나 만기 연장 등의 금융 지원, 전기료·배달비 등을 지원하는 등의 자영업자·취약층 대책을 여러 차례 냈다. 지난 2일에도 금융 지원 규모를 11조원 늘린다는 추가 지원책을 내놨다. 하지만 근본 해법은 못 되고 급한 불 끄는 대책뿐이다. 지금의 내수 침체는 고금리 등에 의한 일시적 현상만은 아니다. 고령화와 경제 활력 위축,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러시에 따른 자영업 출혈경쟁 등 구조적 요인이 겹쳐서 벌어지는 일이다. 1인당 25만원씩 돈 풀어 해결될 일도 아니다.

경제가 수출 외바퀴로 굴러갈 수도 없고 내수가 살아나야 밑바닥 경제까지 온기가 돈다. 금리 인하를 서두르고, 채무 재조정 등 과감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취약층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적극적 내수 진작과 민생 부양 대책을 펼쳐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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