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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단독]공사비 분쟁 조정기구 유명무실… 2021년 이후 갈등 조정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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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조합-시공사 공사비 갈등에… 1년반 사업 멈춰도 조정위 안열려

“한쪽서 수용 안하면 쓸모없는 절차”… 구속력 없어 활용 어렵다 목소리 커

실효성 강화 법안들은 모두 국회 계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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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은행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올해 4월 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과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조합과 시공사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3.3m²당 공사비를 최초 445만 원에서 600만 원 중후반대로 인상하는 인상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3400채 규모 사업이 1년 반 가까이 멈춰 있는데 정비사업 갈등 조율 기구인 성남시 도시분쟁조정위원회(조정위)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조합 관계자는 “계약 해지 대의원회의를 바로 앞둔 시점에 와서야 성남시에서 조정위로 갈등을 조율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며 “이런 기구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고 했다.

공사비 분쟁을 조율하는 법적 기구인 도시분쟁조정위가 2021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공사비 갈등 조정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비 갈등으로 도심 주택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 그나마 있는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1기 신도시 재건축 등 향후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갈등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공급 지연에 따른 도심 집값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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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도시분쟁조정위 설치가 의무화된 전국 117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도시분쟁조정위는 12곳에서 39건 개최됐다. 이 중 공사비 갈등으로 개최된 사례는 ‘0건’이다. 도시분쟁조정위는 2009년 ‘용산 참사’ 이후 정비사업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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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도시분쟁조정위 결과에 구속력이 없어 활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어느 일방이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절차가 돼버린다”며 “시간만 지체할 수 있어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도시분쟁조정위를 운영하는 기초지자체는 현행법상 조정 항목에 ‘공사비 갈등’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사업 분쟁이라는 문구가 있지만 ‘공사비 갈등’이라는 문구가 없어서 사실상 실적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했다. 조합 차원에서는 공사비 갈등이 외부로 알려지면 기존 조합 집행부에 대항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세력이 나올 수 있다며 분쟁 조정 신청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다.

도시분쟁조정위와 함께 정비사업 분쟁을 조정하는 코디네이터(전문가) 파견 제도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코디네이터 파견을 요청한 사업장은 서울 8곳, 경기 4곳, 지방 3곳에 그쳤다. 서울 방화6구역의 경우 올해 5월 코디네이터가 파견됐다가 조정에 실패했다. 조합 관계자는 “매월 금융비로 6억 원이 나가는데 코디네이터가 참석하는 회의를 한 번 잡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며 “제도가 좀 더 신속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분쟁조정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법안들은 모두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도시분쟁조정위 대상에 ‘공사비 갈등’을 명시하고, 도시분쟁조정위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된 이후 22대 국회에 재발의됐다. 권 의원은 “현재 운영되는 분쟁조정기구들은 실효성이 없다”며 “도시분쟁조정위 위에 중앙도시분쟁조정위를 만들고, 조정안에 대해 재판상 화해 효력을 부과한 법안이 빠르게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사비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 조합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갈등을 줄이려면 조합이 전문성을 갖추고 시공사를 상대해야 한다”며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조합 전문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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