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6 (금)

결혼 준비하며 ‘친가 열등감’에 다시 움츠러들어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데 도망가고 싶어요. 제일 힘든 점은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가족에 대한 열등감을 다시 확인하는 거예요. 저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어요. 방탕했던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집이 망하면서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그리고 엄마와 저희 자매는 반지하로 이사했어요. 냄새 나고 제 방도 없는 새 집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었어요. 중학생이었던 저는 혹시라도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가자고 할까 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 되면 이어폰을 끼고 문제집만 풀었어요. 고고한 척 한다고 친구들이 저에 대해 수군거리는 걸 알았지만 타인의 접근을 막을 벽을 갖는 게 더 절실했어요.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는 목표에만 집중했어요. 저의 배경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성인이 되어 가장 좋은 점은 누군가의 딸이 아닌 ‘이소연’으로 있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가난해서가 아니라 성실히 공부한 대가로 장학금을 탈 수 있고, 제 능력으로 과외 자리를 구할 수 있고, 입사할 때 부모님이 누구고 무슨 일을 하는지 쓰라고 요구 받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결혼을 준비하며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저희 집은 제 결혼에 보태줄 돈이 없고 저도 모은 돈이 많지 않아요. 남자친구 집은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넓고 잘 꾸며지고 정돈된 집에 들어서면서 이미 주눅이 들었어요. 결혼식 손님도 큰 대비를 이룰 거예요.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아직 경제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제 손님은 저의 직장 동료들이 거의 전부예요. 결혼만 아니면 이런 제 모습이 문제가 안 되는데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저를 어떻게 보실지 신경 쓰여요.



남자친구는 우리 둘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된다고 말해요. 그 말이 더 부담스러워요. 저는 ‘잘 사는’ 부부의 모습이 어떤 건지 몰라요. 제가 본 건 싸우는 부모님의 모습이 다니까요. 서로 존중하는 부모님을 둔 남자친구가 과연 저를 얼마나 이해하고 언제까지 참아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약 이혼이라도 한다면 결손 가정에서 자란 제 문제로 보이겠죠? 열등감 가득한 제가 밝고 안정감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아요. 이소연(가명·32)





A. 쇼펜하우어가 쓴 고슴도치 우화를 소개해드릴게요.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들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의 체온을 찾아 바싹 모였어요. 그러다 서로의 가시에 찔리게 되자 다시 흩어졌어요. 체온의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 모이면 또다시 찔리는 고통이 반복되었어요. 이 두 가지 고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찾게 되었어요. 타인에게 다가갔다가 상처를 주고 받으며 멀어지길 반복하는 관계의 딜레마를 보여주면서도 결국 함께 지낼 수 거리를 찾게 되는, 염세주의 철학자의 염세적이지만은 않은 짧은 이야기예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소연님이 양가감정을 겪는 건 당연해 보여요. 누군가와 한 공간에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이상한 습관과 어린 아이 같은 행동들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올 거예요. 못된 심보나 트라우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은 구김살을 들킬지도 몰라요. 거추장스러운 가면을 다 벗고 한껏 밀착되고 싶으면서도 서로의 허물에 환멸을 느끼며 숨겨놨던 가시를 세우지 않을까 겁내는 것은 ‘애’와 ‘증’이 분리될 수 없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특히나 결혼은 관계가 급진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이에요. 잘 모르는 사람과 가족으로 묶여요.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나를 좋아하실지, 나를 못마땅해해도 나와 남자친구의 관계가 흔들리지 않을지, 남자친구는 나와 부모님 중 어느 쪽의 관계를 더 굳건하게 지키고 싶어할지 여러 의문과 두려움이 침습할 수밖에 없어요.



또 결혼을 한다는 건 부모님의 삶을 반복할 가능성에 한발 더 다가서는 일이기도 해요. 소연님도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의 삶을 대물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결혼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더욱 당연해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이혼할 일도,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인해 경제적 추락을 경험할 일도, 딱딱한 벽을 치고 사는 딸을 보며 가슴 아파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두려움이 소망을 집어삼키도록 두진 마세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요. 어떻게든 부모님만은 안 닮고 싶어하면서도 결국 부모님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게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집을 떠나겠다고 비장한 다짐을 했을 때부터 소연님은 이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발을 뗐어요. 소연님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직장도 구했어요. 소연님을 주눅들게 한 가난은 이제 어느 정도 멀어졌어요. 소연님이 찾은 안정감 있는 짝은 방탕한 아버지의 모습과는 아마도 반대편에 있는 사람일 거예요. 소연님이라고 과외 그만두고 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누군가를 믿고 소연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기까지 크고 작은 두려움을 얼마나 많이 넘어야 했겠어요. 그 시간을 견뎌내고 지금의 모습에 다다른 소연님은 행복을 탐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불행의 유산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소망을 더 많이 가져도 됩니다.



친밀감과 고립 사이의 갈등을 다룬 많은 이야기들 중 고슴도치 우화가 통찰을 주는 차별적인 지점은 다가갔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적당한 거리를 찾는 과정이 강조된 데 있다고 생각해요. 우화는 인간인 이상 공허함과 단조로움으로부터 생겨나는 친밀함에 대한 욕구를 피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있어요. 동시에 가까운 관계에서 느끼는 상처와 불쾌감, 반발심도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비롯되는 한계라는 걸 인정해요. 독립을 지나치게 고평가한 나머지 의존을 창피한 응석으로 여기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소심함으로 치부하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과 달리, 두 가지 마음을 모두 보편타당한 감정으로 수용해줘서 잔잔한 위로를 줘요. 소연님도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지금 남자친구와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을 둘 다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새로운 가족들과 온기를 나누면서도 찔리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생활에 고민이 있으신가요? ‘마음 돌봄 MZ가 MZ에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사연 보내실 곳: esc@hani.co.kr



한겨레 기자로 짧은 기간 일했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며 임상 및 상담심리학을 공부했고, 30대 상담자로서 내담자들의 자기 이해와 발견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