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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부동층 잡으려... 해리스는 ‘우향우’ 트럼프는 ‘좌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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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한 달 앞

조선일보

11월 미국 대선의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어디서도 내연기관 자동차·트럭을 금지할 수 없을 겁니다! 거짓말쟁이 카멀라 해리스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기하겠습니다.”

오는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약 한 달 앞둔 3일 오후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시간주(州) 새기노 카운티 유세에서 이렇게 외치자 지지자들이 환호했다. 트럼프가 이날 찾은 미시간주는 과거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영광을 누리다 몰락한 러스트 벨트(쇠락한 제조업 중심 지역)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모터 시티(자동차 도시)’라 불렸던 디트로이트가 미시간에 있다. 미시간은 2016년 대선 때는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고, 2020년 대선에선 반대로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선택했다. 선거인단 538명 중 15명이 걸린 주요 격전지로 트럼프와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모두 이기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미 정치권에서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은 친환경을 이유로 기업들에 전기차 전환을 밀어붙여 왔고, 강력한 자유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공화당은 전기차 의무화 폐지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경합주가 몰린 러스트 벨트에서 패배할 경우 백악관을 내줘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최근엔 해리스도 전기차 전환 의무화 정책과 거리를 두고 “지지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미 대선이 한 달 남은 가운데 지지율 초박빙 상태가 지속되면서 아직 지지 후보를 확정하지 못한 부동표(浮動票)를 흡수하기 위해 두 후보가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리스는 전기차 의무화 같은 강경 진보 노선에서 한발 물러나 ‘우(右)클릭’을 시도하고, 트럼프 또한 낙태·대마초 반대 등 중도·진보층이 거부감을 보여온 강경 보수 노선을 다소 수정하며 ‘좌(左)클릭’에 나섰다. 모두 경합주의 승패를 가를, 중도층 표심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해리스는 이날 또 다른 경합주인 위스콘신주 리폰을 찾아, 공화당 출신이지만 반(反)트럼프로 돌아서서 해리스를 지지 중인 리즈 체니 하원 의원과 함께 유세하며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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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예측 불허의 접전을 벌이는 양당 후보들은 부동층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3일 공화당의 발상지로 불리는 경합주 위스콘신의 리폰에서 유세를 열었다(왼쪽 사진). 같은 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다른 경합주 미시간의 새기노를 찾아 러스트 벨트(제조업 쇠락 지역) 표심을 공략했다. /AFP 연합뉴스·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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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공격에 해리스 “전기차 의무화 지지하지 않는다”

민주당 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폐지를 공언해 왔던 트럼프는 이날 유세에서 “(바이든 정부가) 미시간주의 4만개를 포함해 미국 내 자동차 일자리 약 20만개를 없애고 있다”며 “미시간 경제와 자동차 산업에 사형 선고를 내린다는 사실이 믿어지나”라고 했다. 전기차 의무화 정책이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 일자리를 없앤다는 뜻이다. 미시간에서 해리스와 트럼프 지지율이 초접전인 만큼 ‘전기차가 이 지역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트럼프 주장은 해리스로서 뼈아픈 공격일 수밖에 없다고 AP는 보도했다.

트럼프의 이런 공격을 의식한 해리스는 최근 “전기차 생산 의무화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면서 ‘방어’에 나서고 있다. 해리스는 과거 수차례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차량 생산 의무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고, 부통령 시절에도 전기차 의무화 지지 발언을 여러 차례 했지만 러스트 벨트 유권자를 의식해 입장을 틀었다. 구조가 완전히 다른 전기차가 대세가 되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위험이 있다.

해리스는 아울러 중산층 감세 공약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세금을 올려 복지를 확대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큰 정부’ 방향과 배치되는 기조다. 해리스는 최근 약 1억명 이상의 중산층 미국인이 감세 혜택을 받게 하겠다고 공언하는 한편 자녀 세액공제 확대, 팁(tip)에 대한 소득세 면제 등 공화당과 유사한 공약을 내걸었다. 다만 법인세만은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하겠다고 해 법인세 대폭 인하(21→15%)를 공약한 트럼프와 차별화했다.

해리스의 ‘우클릭’을 상징하는 또 다른 사안은 셰일 가스·셰일 오일 추출에 쓰이는 공법인 ‘프래킹(수압 파쇄법)’에 대한 입장이다. 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한때 프래킹에 반대했던 해리스는 이번 선거에선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고도 청정에너지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있다”며 말을 바꿨다. 셰일 가스 생산이 주된 수입원인 또 다른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의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고 미 선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여성 표심 절실한 트럼프, 낙태 반대 대신 ‘모호함’ 전략으로

강경 보수 신념을 숨기지 않아온 트럼프 또한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노선 수정에 나서고 있다.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낙태권에 관한 입장 선회가 대표적이다. 미 남부 강경 보수층 및 자신의 골수 지지층 여론과 부합하는 ‘낙태 반대론자’였던 트럼프는 대선을 앞두고 모호한 발언으로 이슈를 피해 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집토끼’ 격인 기존 지지자들보다는, 낙태권을 옹호하는 여성 등의 추가 지지가 필요한 이번 대선의 현실을 받아들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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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상훈


1기(2017~2021년) 대통령 재임 당시 트럼프는 보수 성향 대법관 세 명을 임명해 연방 대법원을 절대 보수 우위로 재편했고, 이 대법원은 2022년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보장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트럼프는 이 판결을 자신의 성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같은 해 중간선거(상·하원 의원 선거) 당시 낙태권 폐지에 반발한 여성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레드 웨이브(공화당 압승)’가 좌절됐다. 최근 트럼프는 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낙태권 보장은) “각 주(州)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하면서 이전 같은 날 선 발언은 자제하고 있다. 지난 1일 X(옛 트위터)엔 “나는 연방 차원의 낙태 금지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트럼프가 21세 이상 성인의 기호용 마리화나(대마) 사용을 합법화하겠다고 한 것도 ‘좌클릭’의 사례로 꼽힌다. 트럼프는 그간 “마약 밀거래 형량을 사형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마약 강경 반대론자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마리화나를 연방 차원에서 ‘비(非)범죄화’하려는 가운데 트럼프까지 대마 합법화를 거론한 것은 젊은 층 표심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는 마리화나 소지로 인한 체포가 유색인종에게 집중돼 이들의 불평등을 고착화한다는 주장 등을 들어 마리화나 합법화를 검토해 왔다. 불법 암시장에서 거래되도록 방치하느니 차리라 양지로 끌어올려 세수를 늘리는 편이 낫다는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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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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