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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이 책 어때]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미국의 달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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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 국익에 부합" 루빈 前재무장관 정책

제조업 위축 야기…트럼프 등장으로 이어져

"美 자국이익 外 세계금융시스템 조정자 돼야"

미국 제73대 재무장관 존 스노(2003~2006년 재임)는 퇴임 뒤 한 인터뷰에서 금융 기자와 외환딜러들이 공모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자들은 현직 재무부 장관에게서 전임자들이 했던 말과는 판이한 발언을 듣고 싶어 하며, 금융시장은 그런 발언이 시장에 요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말했다.

난처한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힌 기자들, 자신의 발언을 확대해석해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운 딜러들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나타낸 것이다. ‘달러 전쟁’은 지난 30여년간 미국 재무부 수장을 지낸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에서 스노 장관은 시장 교란을 일으키지 않고 달러 관련 발언을 내놓아야 하는 함정을 피하지 못한 재무장관으로 표현된다.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 중앙은행 수장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함께 기축통화인 달러의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그의 발언 한 마디에 달러의 방향성이 결정되고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 흐름이 뒤집힌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압박감도 클 수밖에 없는 자리다.
‘달러 전쟁’은 그런 압박감을 견뎌야 했을 미국 재무장관들 이야기를 다룬다. 미국 제25대 재무장관으로 남북전쟁 당시 그린백 발행의 주역이었던 새먼 체이스(1861~1864년),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52대 헨리 모겐소 주니어(1934~1945년) 등도 언급되지만 주로 언급되는 재무장관은 70대 로버트 루빈(1995~1999년)과 그 후임들이다. 1990년대 등장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미국의 달러 정책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그 변화가 세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살펴보는 셈이다.

글쓴이 살레하 모신은 미국 재무장관들을 괴롭혔을 블룸버그 뉴스 기자로 2016년부터 미국 재무부를 취재했다. 그는 미국 재무장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달러를 힘의 원천으로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달러 전쟁’은 미국의 달러 정책이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변화해왔음을 보여준다.
아시아경제

루빈 전 재무장관은 "강한 달러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강달러 정책을 표방했다. 강한 달러는 1990년에 등장한 세계화의 핵심 원칙이기도 했다. 루빈은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설립된 국가경제위원회(NEC)의 초대 의장을 맡았다. 1993년 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은 중산층 감세 정책을 추진코자 했다. 월가가 싫어하는 정책이었다. 물가가 오를 위험이 있었고 재정적자를 악화시켜 미국 채권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가는 중산층 감세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채권 자경단 역할을 자임했다. 국채를 대량 매도해 국채 금리를 끌어올렸고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중산층 감세 정책을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인 루빈에게서 조언을 많이 구했다. 루빈은 NEC 초대 의장을 거쳐 1995년 재무장관에 취임했다. 루빈은 클린턴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고 균형 예산을 맞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등 월가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취했다.

루빈의 재임 기간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클린턴 정부 초기 8%대였다가 1998년 4% 초반으로 안정됐고 루빈의 재무장관 재임 4년 동안 달러 가치는 16%나 올랐다. 하지만 루빈의 강달러 정책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위축을 가져왔다. 강달러 영향으로 미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2016년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트럼프는 몰락한 제조업 지역인 러스트 벨트 공략에 성공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한다. 재선에 실패했지만 현재 다시 백악관 복귀를 노리는 중이다. 트럼프 재임 시절 미국의 달러 정책은 한층 노골화됐다. 트럼프 재임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스티븐 므누신은 2018년 다포스 포럼에서 "달러 약세가 미국에 좋다"는 발언으로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위안화 약세를 바탕으로 수출을 늘려온 중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했고 미국과 중국은 보복 관세로 무역 전쟁을 치렀다.

2006년 미국과 중국이 제1차 전략경제대화를 개최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2006년 당시 미 의회는 중국 제품에 27%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검토 중이었는데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이를 제지하려 했다. 폴슨은 중국과의 관계에 필요한 것은 관세와 경제 제재가 아니라 대화라고 의회를 설득했다.

미국은 1971년 베트남 전쟁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브레턴우즈 체제를 포기했고 이로 인해 변동 환율 시대가 도래했다. 오늘날 달러 가치 변동에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미국의 자국 이익 추구 때문이었던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달러 전쟁’이 보여주는 미국이 달러 정책 변화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나 미국 이익 우선을 내세운 트럼프의 등장은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다만 모신은 브레턴우즈 합의를 통해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이에 따라 미국이 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혜택을 누려왔다며 이에 따른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자국 이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달러 관리를 통해 세계 금융 시스템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미국과 중국은 거대한 신용 순환 구조로 연결돼 있다고 했다. 중국은 위안화 약세에 따른 수출 호황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이를 미국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렇게 투자된 중국 자금이 미국의 공공 지출 재원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과의 대립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달러 전쟁 | 살레하 모신 지음 | 서정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360쪽 | 2만1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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