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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인정받지 못하는 ‘건강한 적자’…말라죽는 성남의료원 ‘공공의료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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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3년 주민발의에 의한 조례로 설립이 확정돼 509병상 규모로 지어진 성남시의료원 전경.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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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으로 의료대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공공의료 최전선에 있는 지방의료원마저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지방 공공병원은 일반 진료를 포기한 채 코로나 환자의 80%를 책임졌다. 그러나 이후 중앙은 물론 지방정부의 지원마저 끊기거나 줄어들면서 경영 구조가 악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0여년 전 시민들의 자발적 설립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었던 경기도 성남시의료원. ‘공공의료의 실험대’로 주목받으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정식 개원 직전 전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치열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 의료원 역시 ‘건강한 적자’를 인정하지 않는 지독한 경영논리와 지방정부의 ‘방치’로 고사 지경에 이르렀다.





‘덩치 큰 보건소’로 전락한 성남시의료원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지역응급의료센터’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었지만, 여느 대형 병원과 달리 요란하게 드나드는 구급차도,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의료원 구급차는 주차장 한쪽에 멈춰져 있고, 사람이 접근할 때마다 이따금 열리는 응급실 내부도 한산하기만 했다.



1층에 있던 한의과는 아예 문을 닫았고, 산부인과는 의사가 없어 분만이 불가능했다. 신경외과는 의사를 뽑지 않아 진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활의학과 의사 2명 중 1명은 사직했고, 나머지 1명은 휴직 상태여서 성인 진료는 소아 담당 의사가 맡았다. 2명의 의사가 근무하던 소아과도 1명이 휴직 상태여서 일주일에 4번, 그것도 오전이나 오후를 정해 진료가 가능한 상태여서 환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개원 초기 북적거렸던 원무과 앞 의자에는 예닐곱명의 민원인만 앉아 있었지만, 막막하게 자기 순서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18명이었던 창구 직원이 8명으로 줄었고. 이마저 몇명은 응급실 창구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119구조대원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 이곳 응급실로는 환자 이송을 꺼린다고 합니다. 사실 호송을 해도 ‘뺑뺑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라더군요.” 임성언 전국의료서비스노조 성남시의료원 지부장의 말이다.



임 지부장은 “긴급 호송된 환자는 응급처치 뒤 정상적 진료와 수술, 입원 등 후속 치료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런 진료체계가 붕괴돼 정상적인 기능을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의료원은 종합병원에 가까운 진료체계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응급실마저 단순한 상처 치료나 골절 등의 처치 정도만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003년 12월 성남시민 1만8595명이 주민발의한 조례에 따라 설립돼, 2019년 12월 첫 진료를 시작한 성남시의료원의 현재 모습이다. 애초 의료원은 509병상 23개 과를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 의사는 정원의 절반 수준인 50명 안팎에 불과하고 299병상만 가동 중이다. 이 가운데 110여개 병상에만 환자가 있다. 환자는 주로 임종을 앞두고 호스피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들과 내과나 정형외과, 맹장 수술을 받은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주민발의로 설립된 공공의료원이자, 대학병원 수준의 진료 체계와 병상을 갖춰 전국 으뜸으로 자리할 것이라던 성남시의료원은 이제 덩치만 커진 보건소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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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족 등으로 빠른 진료와 치료가 어려운 탓에 텅 비어 있는 성남시의료원의 소아과 대기실 모습.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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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5년차에도 운영방식 ‘갑론을박’…방치





2013년 당시 1691억여원을 들여 2만4711㎡에 지하 3층, 지상 10층으로 지어진 성남시의료원의 이런 ‘초라한 성적표’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전문가들은 운영 주체인 성남시가 적자 타령만 하며 시민 세금으로 지어진 의료원을 다른 기관에 넘기는 ‘위탁 운영’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공의료에 대한 적극적 지원보다는 위탁이라는 회피 수단만 찾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설립 과정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정치 색깔’까지 덧칠해져 공공의료기관의 역할 수행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료원은 애초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이끌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의해 추진·설립됐고, 같은 당 소속 은수미 성남시장 시절 개원해 직영됐다. 그러나 이후 국민의힘 소속 신상진 시장이 당선되면서 코로나19로 정상 진료를 할 수 없었던 의료원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운영 정상화보다는 위탁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다.



시의료원 노조 관계자들은 “신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위탁운영을 공식화해 사실상 ‘공공의료 포기’를 선언했다. 이에 실망감이 커지면서 의료진과 직원들이 다른 공공의료기관으로 대량 이직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또 “운영권을 가진 시가 의료원장을 22개월이나 공석인 상태로 두는 등 팬데믹 이후 정상 운영을 지원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지역구에 성남시의료원이 있는 김태년 민주당 의원(성남 수정)은 적자를 핑계로 민간위탁을 추진하는 것은 공공병원을 경제성으로만 평가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로 망가진 공공병원의 의료생태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시장의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료원 정상화는 위탁이 아닌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앞서 성남시는 2023년 11월 보건복지부에 의료원의 위탁운영 승인을 요청한 상태이고, 복지부는 올해 4월에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지방의료원 운영방식 변경 타당성 검토’라는 연구를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성남시의회 의원들은 10월2일까지 열린 임시회에서 ‘성남시의료원 대학병원 위탁운영 보건복지부 신속 승인 촉구 결의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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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초기에 비해 인적이 드물기까지 한 성남시의료원 원무과 앞 민원 대기석 모습.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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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 공공의료원도 ‘동병상련’





다른 지방의료원들도 경영난에 허덕이며 존폐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코로나19 대응에 헌신한 지방의료원이 환자 이탈, 병상 가동률 저하, 의사 인력 수급난 등으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어 지역거점공공병원의 기능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그는 지난 8월30일 민주당 이수진 의원(성남 중원)의 주도로 국회에서 열린 ‘표류하는 성남시의료원,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나 실장은 8월 국회 토론회에서 발제문을 통해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지난해 외래환자 수는 전년보다 13.9%나 감소했다. 이 시기 외래환자 수가 줄어든 곳은 29곳(82.8%)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방의료원의 평균 병상 이용률도 2017~2019년 81%에서 지난해 42.9%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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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료원 인가 병상 수 역시 2022년 1만91병상에서 지난해 9670병상으로 줄었다. 병동 폐쇄 등으로 실제 운영된 병상도 지난해 7886병상에 그쳐, 2022년 8397병상보다 511병상 감소했다. 그는 “코로나19 전담병원을 맡으면서 병상 수가 줄어든 것은 그만큼 지방의료원의 진료 역량이 훼손된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의사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지방의료원 전문의 수는 2022년 1094명(공보의 68명), 지난해 1116명(공보의 58명)으로 기관당 평균 31~32명 수준에 그쳤다. 경영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지난해 지방의료원의 적자는 모두 3156억원으로, 2019년 흑자 292억원과 비교하면 4년 새 3448억원 차이가 났다. 지난해 흑자를 낸 지방의료원은 35곳 중 단 1곳에 불과했다.



나 실장은 “지역거점공공병원의 기능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전면적인 기능 회복 지원과 필수의료 제공이 가능한 시설, 장비, 인력 등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를 앞둔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지방의료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병원 총액예산제 도입, 감염병 전담병원에 대한 실질적인 손실보상 지원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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