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노동자의 야근.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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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워크
덜 일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내는 법
칼 뉴포트 지음, 이은경 옮김 l 웅진지식하우스 l 1만8000원
전보다 바쁜데 중요한 일을 잘 끝내지 못한다. 일단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메신저와 이메일에 재깍재깍 답한다. 불필요한 온라인 화상 회의는 거절하고 싶지만 비협조적이란 말을 들을까 겁도 난다. 팬데믹 때 원격 재택근무가 자리 잡힌 뒤 사무직이 겪는 일상이다. “일을 잘하려면 더 바빠지고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믿음”에 빠진 이들에게 말을 거는 책이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출신 공학자인 지은이는 지식 노동자들이 눈에 보이는 쉬운 일로 노력을 인정받으려는 태도를 돌아보자고 말한다. 상사가 옆에 있어 바쁜 척을 해본들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긴 어렵다. 용기 내서 불필요한 일을 줄이고 중요한 일에 집중한다면 덜 일하고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그가 일터에 만연한 ‘유사 생산성’ 대신 ‘슬로우 생산성’을 제시하는 이유다.
‘느리게 일할수록 생산성이 는다.’ 이상적이고도 모순적인 이 명제는 과학적이거나 연역적으로 입증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보다는 지식 노동자에게 새로운 생산성을 소개하는 자기계발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독자는 ‘슬로우 워크’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접할 수 있다.
첫째, 업무량을 줄인다.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잡무를 줄여 필수 업무에 집중하고 준비된 경우에만 새 일을 가져오라는 뜻이다. 지은이는 과부하는 업무량을 관리하는 방식이 서툴러서 생기는 부작용일 뿐 지식 노동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둘째,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중요한 일은 서둘러 하지 말고 탁월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집중력을 조절하며 해내자는 말이다. 셋째, 일의 질에 집착한다. 지은이는 단기적으로는 기회를 놓치더라도 결과물의 질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회의나 메신저 답변, 전화 통화를 하지 않는 ‘심층 업무 시간’을 관리자가 확보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책에는 세 원칙을 시행하기 위해 ‘아이들이 잠든 뒤에 글을 쓰라’거나 ‘취향을 연마하라’는 등 구체적인 방법도 제안한다. 또 갈릴레오 갈릴레이, 쿠엔틴 타란티노, 폴 매카트니 등 다양한 지식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했는지 보여준다.
물론 지은이는 ‘슬로우 워크’를 모든 지식 노동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철저한 감독을 받는 사무실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안하는 전략을 온전하게 실천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모든 혁명에는 시작점이 필요하고 먼저 자기 실험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원격 노동자, 프리랜서, 1인 경영자, 교수, 제품 디자이너 등이 그 대상이다. 그렇게 지은이는 지식 노동자들이 일에 소진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해내고 유용한 성과물을 내어 커다란 만족감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일과 자아실현을 연결짓는 지은이의 전제에 동의한다면 이 책은 일을 잘하려다가 지치고 만 이들에게 전환점이 될 듯하다. ‘조용한 퇴사’의 지침도 그 시작이 되지 않을까. 2022년 7월 한 틱톡 이용자는 17초짜리 퇴사 영상을 올렸다. 직장을 진짜로 그만두는 것은 아니었다. “추가업무를 자진해서 맡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칼같이 일을 마치며, 스스럼없이 거절하고, 이메일과 채팅으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낮춰놓으라는 것.”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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