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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레바논 청년 4인 인터뷰 “헤즈볼라는 악몽, 국민을 위험 내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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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공습에 생존 위협 받는 레바논 청년 4人 온라인 인터뷰

지난 1일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시작한 이스라엘이 수도 베이루트 공습을 강화하고 병력을 추가로 투입하면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2일 레바논 보건 당국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50여 명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본지는 보다 생생한 레바논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을 온라인으로 접촉해 피해 상황과 헤즈볼라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들은 안전을 우려해 모두 익명을 요청했다.

◇나디아(여·22)

저는 요즘 매일 머리 위로 끊임없이 날아다니는 드론 소리로 잠을 잘 수조차 없습니다. 친구들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불안하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주로 베이루트 남부 지역 다히예에 집중돼 있다고 하지만, 제가 사는 베이루트에서도 큰 폭발음은 계속해서 들립니다. 건물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제가 직접 느낀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상전 개전 이전에 헤즈볼라 지도부를 제거하겠다며 수도 베이루트를 대거 폭격했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 깔리고 다친 이는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레바논 적십자사와 비정부기구(NGO) 사람들이 이들을 구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베이루트 시내엔 (이스라엘군이 진입한) 남부에서 피란 온 수많은 사람이 이불 한 장 없이 거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차마 보기 힘든 슬픈 광경입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진영


이스라엘은 민간인 거주지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민을 죽였고, 우린 엉망이 됐습니다. 이스라엘·헤즈볼라·이란 모두가 지어낸 거짓말이 난무하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본래 정치엔 관심이 없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레바논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모두 비난받아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나랏돈을 빼돌리고 헤즈볼라가 권력을 키우도록 방관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헤즈볼라도 비판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은 전부터 레바논을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헤즈볼라가 하마스(이스라엘과 지난해 10월 이후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 단체)를 지원해 이스라엘에 레바논을 공격할 명분을 제공해 버린 꼴이 됐습니다. 그 탓에 레바논 국민은 심각한 위험에 빠졌습니다.

(헤즈볼라를 지원해 온) 이란은 유대인들이 중동에 정착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헤즈볼라 같은 대리 세력을 사용해 왔습니다. 저는 이슬람교도들의 지나치게 배타적인 행동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이나 기독교도의 기준이 자신과 다르다고 무조건 배척한 것이 비극적 전쟁의 결과를 낳은 것 아닐까요.

레바논 정부의 무능력, 무장 단체 헤즈볼라의 테러 행위만을 보고 중동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우린 그저 모두 평화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만 살기를 원합니다.

◇라나(여·17)

저는 레바논 동부 지역 베카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이곳은 이스라엘군의 공습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레바논의 대부분 학교는 수업을 중단했거나, 하더라도 원격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2주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에 있는 대학에 유학을 가고 싶어서 열심히 프랑스어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계획이 멈춘 상태입니다.

아버지는 일단 집에 있으면 너무 위험하다면서 저와 형제들을 비롯한 모든 식구를 집 근처에 있는 학교 건물로 피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버티는 것은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아버지는 안 된다고 하면서 (베카보다 안전한) 외곽에 새로 집을 구할 계획이니 여기 있으라고만 합니다.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공범은 레바논을 위험한 구렁텅이에 빠트린 헤즈볼라, 그리고 (헤즈볼라를 제거한다며) 레바논의 민간인까지 죽게 만드는 이스라엘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간인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일상은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저는 평범한 10대처럼 친구들과 놀고 쇼핑몰에 가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조선일보

베이루트 도심 곳곳엔 피란민 노숙 텐트 - 지난 1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집을 잃은 피란민들이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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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드(남·23)

저는 베이루트 동부에 있는 아시라피예 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베이루트는 크게 수니파 무슬림(이슬람교도)이 모여 사는 서베이루트와, 저 같은 기독교인들이 사는 동베이루트로 나뉩니다. 이스라엘군은 현재 시아파 무슬림이 모여 사는 남부 다히예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 국가다). 제 거주지는 그나마 공습 피해가 작은 편이지만,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흔히들 레바논 사람들은 이슬람교도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레바논엔 공식 종교가 18개 있고, 이슬람교도 중에서도 시아파를 제외한 모두가 아마 이 전쟁이 ‘헤즈볼라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지난 1년간 미사일을 계속 터트리면서 중동을 ‘불안한 화약고’로 만든 장본인이 헤즈볼라이니까요.

시아파 무슬림 중에도 속으로는 헤즈볼라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시아파 친구가 많이 있는데 이들 상당수는 헤즈볼라를 두려워해 친한 친구와도 속마음을 나누기를 무척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한 가지는 레바논 국민이 지난 100년 동안 기근·전쟁·학살 등 최악의 불운을 겪어왔다는 것입니다. 외부 세력은 이 나라를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중동의 이슬람 국가 간) 대리전의 전장으로 악용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 국민은 버텨왔고, 여전히 서로를 돕고 지내고 있습니다.

베이루트는 중동에서 가장 번성하고 아름다운 도시였고 ‘중동의 파리’라고 불렸지만 전쟁으로 그 명성을 다 잃었습니다. 이젠 부디 제대로 기능하는 나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현재 레바논 정부는 헤즈볼라에 주도권을 뺏긴 채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댈 곳은 국제사회뿐입니다. 레바논 정부에 압력을 넣어 국민을 대표할 대통령(현재 2년째 공석)을 선출하게 해야 하고,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나비흐 베리 국회의장 휘하 의회를 제재하길 바랍니다. 유엔군에도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해 헤즈볼라를 해체하라는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민간 지역 폭격과 침략을 중단해야 합니다.

◇로라이트(남·20)

저는 베이루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지금처럼 상황이 나쁜 적은 없었습니다. 신변 안전을 위해서 제가 머무는 곳과 저의 종교에 대해서 자세히 묻지 말아주세요.

헤즈볼라는 악몽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상황은 헤즈볼라에 책임이 있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도 결국 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가슴 아픈 일은 헤즈볼라가 레바논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장본인인데도, 역설적으로 이들이 없다면 레바논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습니다.

헤즈볼라를 공격하는 외부 세력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헤즈볼라가 그동안 지역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레바논은 오랫동안 이슬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과 싸워왔고, 헤즈볼라는 그 중심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부는 오히려 하는 일이 없습니다. 레바논 정부가 부패와 경제난으로 비틀거리는 동안 그나마 헤즈볼라가 정치를 지탱해 왔습니다. 헤즈볼라에 가담해서 싸우는 병사들은 이슬람교도이긴 하지만 대부분 극단주의자가 아닌,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우리는 헤즈볼라가 싫지만 그럼에도 기댈 수밖에 없는 비극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헤즈볼라가 사라지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의 다른 이슬람 무장 단체들이 (레바논에 들어와) 우리 나라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까 두렵습니다. 헤즈볼라마저 없다면, 미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이스라엘과 맞설 엄두조차 못 내지 않았을까요.

[김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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