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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기자의 시각] 유족 없는 유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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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근 고령화로 사망자가 늘면서 수십 년 전 문을 연 전국 주요 공설 납골당들이 포화를 맞았다. 일부 납골당은 평균 30년(통상 15~45년)인 봉안 가능 기한이 도래한 유골에 대해 보관 연장을 위한 재계약에 나서거나 유족에게 반환하고 있다. 지난 29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연화장 실내 봉안 시설의 한 유골함에 ‘안치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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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억하고 추모하겠다고 봉안당에 모셔놓고, 결국 가족도 없이 다른 유골들과 한데 섞여 방치되다 사라지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달 실내 봉안 시설이 있는 한 추모공원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해마다 봉안 시설 사용 계약이 만료됐지만 가족들과 연락이 끊겨 찾아가지 않는 유골이 많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사망한 사람의 유골만 있고, 그걸 관리할 산 사람은 없는 이상한 상황”이라며 “무엇이 효(孝)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지난해 경기도 수원시연화장에서는 유골 77기가 ‘미조치 유골실’로 향했다. 봉안된 지 15년이 지나 계약이 만료됐지만, 유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방을 뺀’ 유골들이다. 2000년 초에 지은 이 시설에선 지난해에만 유골 총 1232기의 ‘15년 계약’이 한 차례 끝났다. 851기는 계약이 연장됐고, 304기는 유족에게 돌아갔다. 미조치 유골은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유골실에 5년간 보관됐다가 수원시연화장 직원들에 의해 한데 모아져 산분(散粉)된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다.

속속 만기가 도래하는 유골이 늘면서 미조치 유골실마저도 빈자리 없이 차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더는 계약 연장이 안 되는 ‘30년 만기’가 도래했을 때다. 10~15년만 지나도 해외 이민, 후손의 건강 악화나 사망 등으로 ‘가족이 없어진’ 유골이 많기 때문이다. 수원시연화장 직원은 “5년쯤 뒤면 계약 연장이 더는 안 되는 유골들이 나오기 시작할 텐데 벌써 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미조치 유골실이 없는 추모 시설의 경우 고민이 더 깊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며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에 닥쳤다. 모셔야 할 조상은 많고, 후손은 적다. 남아 선호 사상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핵가족화에 따라 가족 결속력도 악화되고 있다. 수십 년씩 봉안 시설에 선대의 유골을 보관하며 추모하는 장례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새로운 추모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정부와 장례업계에선 최근 ‘산분장(散粉葬)’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보고 제도화하고 있다. 화장한 유해를 산이나 바다, 강에 뿌리고 아무런 표식을 두지 않는 장례 방법이다. 유골은 산분하되 디지털로 고인(故人)을 추모할 수 있다. ‘e하늘장사정보시스템’에선 누구나 추모관을 열고 고인에 대한 추모 글과 생전 사진, 영상 등을 올릴 수 있다.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고인의 ‘소셜미디어’를 만드는 셈이다.

물론 장사 문화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매장(埋葬)에서 화장(火葬)으로 한 차례 장례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바 있다. “전(全) 국토의 묘지화를 막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 부담이 될 것이다”라며 전 국민적인 인식 전환 캠페인을 벌였다. ‘가족 없는 유골’이 더 늘어나기 전에 ‘제2 장례 문화’로 획기적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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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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