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2 (수)

시진핑은 해리스와 트럼프 누구를 원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1972년 2월21일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미국의회도서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 투표할 수 있다면,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까.



중국 정부는 미국 대선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낀다.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미국의 대선에 간섭한 적도 없고 간섭할 수도 없다”고 강조해왔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은 “트럼프와 해리스는 중국에 두 잔의 독배”라는 자오밍하오 푸단대 교수의 표현이다. ‘어느 쪽이 대통령이 되어도 미국의 대중국 강경책은 지속될 것이니, 중국은 미국 대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물론, 중국 정책 결정자들은 단기·장기 시나리오에 따라 미국 대선 결과의 이해득실을 철저하게 따지면서 대응 방안을 세심하게 준비한다.



해리스와 트럼프 가운데 누가 더 중국에 유리한가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궁지웅 대외경제무역대학 교수는 해리스의 당선이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궁 교수는 8월 말 런민대학 충양금융연구원 강연에서 “해리스는 대체로 조 바이든의 현재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집권하면 천지가 요동칠 것이고 미중 관계는 거센 풍랑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우선, 중국의 민생 경제가 어렵고 실업난 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예측불가능한 압박을 하는 상황을 경계한다. 다음으로 궁 교수는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중국의 위험 요소로 꼽았다. “오바마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아직도 완전히 아시아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미국을 막아왔고, 중국은 운이 좋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돌아온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고 미국의 완전한 ‘아시아 회귀’가 실현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 견제와 포위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게 돼, 중국의 전략적 부담이 커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중국의 장기적인 전략적 목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외교 책사’로 유명한 왕지쓰 베이징대 교수 등은 지난 8월1일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중국은 해리스와 트럼프 누구를 더 선호할까’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들은 “중국 전략가들은 향후 10년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환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며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서 전략적 경쟁과 봉쇄를 계속 우선시하고 협력과 교류는 뒷전으로 밀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미국 정치권과 여론에서 대중국 강경론은 확고하고,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부상, 특히 군사력과 직결되는 첨단기술 발전을 억제하고,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겠다는 목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근본적 판단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의 특징’에 주목한다. 2017~2021년 대통령 집권 당시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무역전쟁을 거칠게 밀어붙였지만, “전반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유연성을 유지했다. 징벌적 관세와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무역 협상에 대해 열려 있고, 기술 경쟁, 대만 등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타협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왕 교수 등은 이런 점을 근거로 트럼프가 재선되면 “중국과 양자 합의를 추진할 수도 있다. 또한 대만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중국이 무역에서 타협하는 대가로 미국이 대만의 도발적 행동을 억제하겠다고 제안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도 7월2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미-중 간 경제적 갈등은 커지겠지만, 대만해협을 둘러싼 전쟁 가능성은 작아진다”며 “트럼프는 항상 자신이 냉전이 끝난 이후 새로운 전쟁에 관여하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중국과 대만해협에서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또, “트럼프가 동맹국들에 제공하는 안보 보장이 바이든 시대보다 훨씬 약해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주도권을 잡게 될 것”으로 보았다.



중국 정책 결정자들과 전략가들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중국 견제는 계속될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트럼프가 승리하면 단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해 대비책을 준비했다. 트럼프가 모든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을 차단하려 할 가능성에 대비해, 러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중국의 시장을 확대하고, 주요 원자재도 비축해왔다. 중국도 미국에 보복할 수 있도록 관세법도 제정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유리한 형세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핵심 키워드는 동맹, 유럽, 대만이다.



트럼프가 승리해 미국 내부의 대립과 혼란이 더 극심해지면,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는 빠르게 허물어진다. 미국이 전 세계 59개국과 맺고 있는 동맹 네트워크는 손상되고 대중국 포위망은 약화된다. 특히 ‘유럽의 향배’가 중요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견제 동참을 주저하던 유럽 국가들을 끌어들여 ‘미국-유럽 대 중국’ 구도를 만들었지만,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과 유럽은 갈라설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유리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곧바로” 끝내겠다고 공언해왔고, 유럽산 수입품에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비 지출 확대를 압박할 것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가 한번 더 집권하면 유럽은 미국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비롯해 안보에 대해서도 더 이상 미국만 믿고 갈 수 없게 된다”며 “유럽은 미국과는 다른 독자성을 모색할 것이고, 국제질서는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첨단기술과 구매력 높은 시장을 가진 유럽이 중국 쪽으로 다가서는 것은 미-중 패권 경쟁의 결정적 변수다.



가장 민감한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묘한 신호를 발신한다. 트럼프는 최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은 우리 반도체 사업을 빼앗아갔다. 그들은 엄청나게 부유하다”며 왜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는 비용을 치러야 하느냐고 했다. “대만은 (미국에서) 9500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중국과는 68마일 떨어져 있다”며 대만 방어가 사실상 어렵다고도 했다. 올해 미국 공화당 정강·정책에서 1980년 이후 처음으로 대만이 언급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간다면, ‘대만 카드’를 들고 중국을 압박할 수도, 거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겨레

2020년 1월1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을 마친 1단계 무역합의문을 나란히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2018년 중국과 무역전쟁을 거칠게 시작한 ‘반중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해왔지만, 중국을 압박하는 한편 협상에 나서 2020년 1월15일 백악관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와 1단계 무역 합의에 서명하기도 했다. 중국이 첨단산업 육성에 투입하는 대규모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미국 상품 2천억달러어치를 추가 구매하기로 한 합의다. 코로나 팬데믹이 없었다면 트럼프와 중국의 협상은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모든 중국 수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위협이 실제 디커플링 전략인지, 중국을 압박해 미국에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거래의 기술’인지 따져보며, 대응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는 참고할 만한 역사적 사례도 있다. 1972년 2월21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을 만난 마오쩌둥 주석은 “당신네 선거에서 나는 당신에게 한표를 던졌다”며 “(서구에서) 우파가 권력을 잡았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했다. 닉슨 대통령은 “미국에서 우파는 좌파가 말만 하는 일들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 소련과의 핵 경쟁, 경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은 함께 소련에 맞서자며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 있던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선 미국과 중국의 극적인 데탕트(화해)는 세계질서를 바꾼 사건이었지만, 한국·대만 등에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해리스와 트럼프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극과 극으로 갈라진 미국 국내 정치의 혼란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미국의 고립주의는 더 강해질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거래하는 날이 올 때, 한국 같은 동맹의 목소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미국 대선의 혼란을 지켜보면서, 시진핑은 마오와 닉슨의 대화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겨레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