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현지시각)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는 베를린 미테구 소녀상 앞에서 거리 콘서트를 열어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를 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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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이 미테구 공공부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을 사유지로 이전하지 않으면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주독일 일본 대사관이 소녀상 관련 교육 프로그램 독일 정부 지원을 방해하려 한 정황이 29일 확인됐다.
소녀상을 설치한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가 베를린시 정부에 신청했던 프로그램 등의 지원을 총괄하는 시 산하 ‘문화·교육을 위한 베를린 기금’ 재단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에 응해 일본 대사관이 올해 3월 재단의 기금 사업을 심사하는 자문위원회 위원들에게 연락해 식사 초대를 했다고 말했다.
이 단체가 지난 2월12일 “내 옆에 앉아”라는 이름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 역사 교육 프로젝트 지원 연장 신청서를 제출하자, 곧바로 일본 대사관에서 나서 위원들을 만나고자 한 것이다. 코리아협의회는 당시 8만7000유로(한화 약 1억3천만원) 규모 지원금을 신청했다. 그 뒤 4월 초순에 성사된 식사 자리에서 일본 대사관 직원들은 코리아협의회의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베를린 중심지인 포츠다머 플라츠의 5성급 호텔에서 식사를 초대한 일본 대사관 직원들은 “일본을 일방적으로 나쁘게 표현하고, 모욕하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의 문제이기 때문에 독일이 개입해선 안되고, 교육 프로그램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고 베를린시 기금 재단 관계자는 말했다. 이들은 지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이 “이미 사과한 문제”라고도 주장했다고 전했다.
코리아협의회가 신청한 프로그램은 이 식사 자리 뒤인 지난 4월23일 자문위원회 표결에서 떨어져 지원 연장이 취소됐다. 시 지원을 받으려면 정족수 10명 중 4분의3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하지만, 당시 코리아협의회 신청 안은 6(찬성)대 4(반대)로 지원 조건에 들지 못했다.
재단 관계자는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이 위원회 투표 당일 코리아협의회를 콕 집어 프로젝트를 지원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도 전했다. 그는 “(베그너 시장이) 일본 정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었다”면서도 “이 프로젝트는 갈등 요소가 많기 때문에 지속되선 안 된다고 했지만, (사실상) 일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일 독일 공영방송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RBB)은 베그너 시장이 일본 정부가 원치 않는다며 코리아협의회의 신청을 거절하도록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베그너 시장은 지난 5월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만나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녀상 철거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도 있다.
코리아협의회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 역사 교육 프로젝트에 대한 베를린시 예산 지원도 중단됐는데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과 소녀상이 미테구 요청대로 사유지로 이전한다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전개한 ‘위안부’ 관련 활동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코리아협의회가 소녀상 근처에 개관한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은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학교와 연계해 다양한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또한, 소녀상의 공적 성격을 고려할 때 사유지 이전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코리아협의회는 지난 26일 미테구청에 관내 공공부지 중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과 반경 500m 이내의 후보지 5곳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체지 중 최대 5곳을 후보지로 정해 최종 장소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테구청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슈테파니 렘링거 구청장은 사유지 이전을 받아들이지 않은 코리아협의회에 “철거를 명령할 수밖에 없다”며 4주 이내에 소녀상을 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글·사진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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