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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오너라, 사필귀정의 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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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이재명의 ‘기획 거짓말’ 이번엔 어떻게 빠져 나갈까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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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학교에서 제일 많이 하는 가르침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졌다. “아니, 인간이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 난 절대 거짓말 같은 거 안 할 거야.” 하지만 이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원래 인간은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기꺼이 거짓말을 선택하는 이가 숱하게 많았다.

나 역시 매 순간 정직하진 못했고, 시시때때로 거짓말을 했지만, 그러면서 깨달은 교훈이 있다. 거짓말이 당장 이익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들키고 나면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고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있으니 길게 보면 손해라는 것이다. 거짓말이 특히 비난 대상이 되는 직군은 정치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의 본질이 권력을 잡으려는 싸움인데, 거짓말쟁이가 권력을 잡는 것만큼 위험한 상황은 또 없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처럼, 많은 정치인이 거짓말로 나락에 갔다.

물론 정치인의 거짓말 중에도 이해할 만한 것들이 있다. 일명 ‘말할 때는 진심’인 경우로, 진짜라고 생각해 말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거짓말이 된 경우를 일컫는다. 예컨대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보자. 그는 1992년 대선에서 큰 표 차로 낙선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68세라는 고령도 걸림돌이었지만, 그에게 패배를 안겨준 이는 오랜 기간 민주화 운동을 같이했던 김영삼 대통령. 이 선거로 DJ가 평생 싸워왔던 군부 독재가 종식됐으니, DJ의 은퇴는 당연한 절차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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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1992년 12월 19일 마포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계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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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주며 정계에 복귀한다. “민족이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여야가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게 복귀의 변. 이는 3년 전 자신의 말을 뒤집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비난을 많이 받긴 했지만, 정계 은퇴를 말할 당시의 DJ로선 자신이 진짜로 정치판을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말할 때는 진심’의 예가 될 만하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겠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지도록 만들겠다 등등, 2017년 5월 10일 그가 취임사에서 한 말은 대부분 공수표가 됐다. 하지만 문재인은 남이 써줬을 그 취임사를 읽으면서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의 죽음 덕에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졌고,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책임 있는 자리에 가본 적이 없었던, 그래서 자신의 무능을 깨달을 기회가 없었던 문재인으로선 열심히만 한다면 취임사에 나오는 말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믿었을 테니 말이다. 안타까운 건 그 이후, 최저임금과 부동산을 비롯해 하는 일마다 망치기 일쑤였던 문재인은 점점 거짓말에 익숙해졌고, 결국에는 ‘나는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단계에 이르렀고,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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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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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는 대조적인 거짓말이 ‘기획 거짓말’이다. 범죄를 모의하면서 혹시 걸리면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울 목적으로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어놓는 것을 말하는데, 범죄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기획 거짓말’을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도입한 이는 바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보통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거짓말에 능숙해지기 마련이지만, 이재명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2002년 정치에 발을 들인 38세 청년 이재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검사 사칭이었다. 그 결과로 얻은, 김병량 시장과 통화한 녹음은 불법 저작물로 방송이 불가능했지만, 이재명은 익명 제보자에게서 얻은 것인 양 사진을 조작했고, 이를 발판으로 방송을 내보낸 것은 물론, 기자회견을 열어 녹음본을 공개했다. 그 때문에 전과 1범이 됐음에도 이재명은 ‘기획 거짓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지금 재판받고 있는 대장동과 성남FC, 백현동 특혜, 법인 카드 유용, 대북 송금 등은 그 결과물. 주목할 점은 이전보다 방법이 치밀해졌다는 사실이다. 통화할 때는 꼭 남의 전화기를 썼고, 점조직을 만들어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수사 향방이 이재명에게 향하는 것을 차단하는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재명의 측근 중 21명이 구속되고 더 많은 이가 불구속 기소됐으며 다섯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이재명은 여전히 권력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차기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통령도 될 수 있기에 이재명은 단식투쟁을 포함해 갖은 수단을 동원해 가며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으며, 현 대통령을 탄핵해 대선을 앞당기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졸개들도 마냥 놀고 있는 건 아니어서,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하고, 수사 검사를 탄핵했으며, 판사까지도 겁박하는 등 제대로 된 단죄를 방해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대장동 변호사 출신인 이건태가 ‘법 왜곡죄’를 대표 발의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검사의 수사와 기소가 어려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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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결심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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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은닉에 이토록 치밀한 이재명이지만, 문제는 범죄 연루 여부에 대해 직접 질문을 받을 때 드러난다. 벌여놓은 범죄가 워낙 많은 데다 순발력도 뛰어나지 못하다 보니, 이재명은 소위 ‘즉흥적 거짓말’을 할 때마다 스텝이 꼬인다.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친형 강제 입원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정치 생명이 끝날 뻔했던 이재명은 2022년 대선에서도 ‘김문기를 모른다’고 하고, 백현동 부지의 용도 변경을 한 게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고 함으로써 또다시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얼마 전 결심 공판에서 검찰이 징역 2년을 구형한 걸 보면, 이번에는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금해진다.

문제는 다음이다. 거짓말을 해도 승승장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재명 덕분인지, 지난 몇 년간 한국 정치는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대중의 수준도 같이 추락해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 ‘청담동 술자리’ ‘계엄령 준비’ 같은 가짜 뉴스를 신봉하는 이가 거의 절반에 이를 정도다. 이재명이 있는 한 정치의 정상화가 어렵다는 얘기. 정말 다행스러운 건 이재명의 다음 말이다. “세상일이라고 하는 게 억지로 조작하고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다 사필귀정할 것.” 그의 바람처럼, 사필귀정의 순간이 오길 빈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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