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 둔 아버지, 대학생 한 데 모여
"국가도 공범...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27일 오후 서울 강남역에서 여성·인권·시민단체 회원들이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허유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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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범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다시 한 번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허위 성착취물을 무분별하게 제작·유포하는 성범죄를 규탄했다. 특히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딥페이크 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과 관련, 여전히 대책 마련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정부와 국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집회는 서울여성회를 비롯한 7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딥페이크성범죄아웃공동행동'과 소속 대학생들의 주도로 열렸다. 금요일 저녁인데도 전국에서 130여 명이 참여했다. 6,000명이 운집한 지난 21일 혜화역 집회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지만, 참가자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이들은 '보여주기식 입법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 '피해 고통보다 가해자 의도 중시한 국회의원 규탄한다' 등의 팻말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딥페이크 처벌법 '알면서' 촌극... "국회, 딥페이크 성범죄 심각성 몰라"
27일 서울 강남역에서 열린 딥페이크성범죄아웃공동행동 말하기 대회에 참석한 시민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허유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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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이날 한목소리로 국회가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에 관심이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딥페이크 처벌법에 '알면서'라는 문구가 등장했다가 하루 만에 사라지는 촌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이 딥페이크 영상인 줄 모르고 시청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며 해당 문구를 추가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다시 삭제한 것이다. 애초에 고의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법안에 '알면서'를 추가해 불필요한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은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을 확대하려는 법안에 굳이 '알면서'를 넣으려던 의원들이 있다"며 "그분들은 아직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모든 성폭력 가해자는 몰랐다고 주장한다"며 "성범죄의 기준은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와 피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디지털성범죄를 방관하는 빅테크에 대해 적극적으로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황정은 국제전략센터 사무처장은 "미국은 27개 주 정부에서 딥페이크 규제 법안을 마련했고, 유럽에서는 플랫폼에 불법·유해 콘텐츠에 대한 삭제·감시·감독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정부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젠더폭력 해결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응 미온적인 정부도 공범...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딥페이크 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이 재석 249인, 찬성 241인, 기권 8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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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은 성교육에 대한 대학생들의 요구도 나왔다. 대학 내에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만큼 교육부와 대학의 적극적인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심규원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건국대지부장은 "각 대학에 설치된 인권센터는 성폭력 피해예방 및 대응, 학교구성원 인권 보호의 역할을 해야하지만 그 어떤 대응도 하고 있지 않다"며 "자체적인 피해자 지원 태스크포스(TF)를 만든다거나 신고 핫라인을 구축한다거나 하는 노력이 부재하다"고 꼬집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도 '반복되는 딥페이크 성범죄 국가도 공범이다'는 구호를 외쳤다. 중학생 아들은 둔 이모(49)씨는 "딥페이크 성범죄는 성별을 떠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간의 신뢰를 잃게 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혐오 범죄"라며 "사회, 국가 개입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인 만큼 작은 보탬이라도 되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조모(24)씨는 "최근 딥페이크 처벌법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많은 허점이 있다"며 "분노의 불씨를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매주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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