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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사향’ 대신 ‘영묘향’…이것이 신의 한 수 [장수 브랜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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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광동제약 거북표 우황청심원


우황청심원.

긴장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험생, 큰일을 앞두고 예민해진 회사원에게 ‘필수품’으로 꼽히는 약이다. 시험이나 면접 등에 앞서 불안감을 줄이고 안정을 찾기 위해 복용하는 상비약으로 잘 알려졌다. 신경안정제 역할을 하는 한방약품으로 오랜 세월 애용됐다. 긴 역사만큼 수많은 제약사가 우황청심원 시장에 뛰어들었다.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우황청심원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제품이 있다. 바로 광동제약이 만드는 ‘거북표 우황청심원’이다.

매경이코노미

광동 거북표 우황청심원은 1973년 첫 등장 이후 시장에서 꾸준히 매출 상위권을 기록하는 ‘효자’ 브랜드였다. 현재는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인기’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광동제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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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한나라 때부터 만든 영약

광동 ‘현대화’ 뒤 승승장구

우황청심원은 중국 한나라 시기 의학서인 ‘금궤요략’에 처음 처방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한약이다.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고가 영약으로 널리 쓰였다. 국내에서는 의방유취,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등에 처방 기록이 남아 있다. 근대 이전에는 수은 성분이 들어갔다. 수은은 가열하면 독성 물질이 나오는 탓에, 끓여 먹는 ‘탕’이 아닌, 약재를 빻아 원 형태로 뭉친 ‘환’으로 먹었다. 대중에게 ‘우황청심환’으로 알려진 이유다. 일제강점기부터 ‘솔표 우황청심원’으로 유명한 조선무약 등 기업이 등장하면서 우황청심원 대량 생산 시대를 열었다.

광동제약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우황청심원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방의 과학화’를 창업정신으로 삼았던 창업주 故 가산 최수부 회장이 광동제약 성장의 열쇠 역할을 할 제품으로 우황청심원을 지목했다. 동의보감에 적힌 제조법을 토대로 연구개발을 시작, 1973년 ‘거북표 우황청심원’을 처음 선보였다. 후발 주자였던 거북표 우황청심원은 점유율을 서서히 끌어올리며 선발 주자인 솔표 우황청심원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거북표는 솔표와 함께 우황청심원 시장을 양분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거북표 점유율은 더 가파르게 치솟았다. 마케팅 강화 전략과 현탁액 제품 공개 영향이 컸다. 당시 광동제약이 만든 ‘30년 최씨 고집’이라는 문구가 TV 광고를 타고 큰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 뇌리에 ‘거북표’를 확실히 새겼다. 동시에 1991년 액체 형태 상품 ‘우황청심원 현탁액’을 내놨다. 환 형태 제품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목표였다. 일본에 제품을 수출하며 해외 판매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판매량이 급등한 거북표는 2000년대 이후 시장점유율 1위 브랜드로 등극했다. 2015년 연매출 300억원을 돌파했고, 2017년에는 한때 라이벌이었던 조선무약과 솔표의 상표권까지 인수했다. 2022년 매출 500억원을 넘겼다. 2023년에는 매출 717억원을 거뒀다. 광동제약 전체 매출의 7.8%에 달하는 수준이다. 광동제약이 생산하는 제약 상품류 중에서 매출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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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청심원 질주 원동력은

전략적 유연성과 다양성

후발 주자였던 거북표 우황청심원이 시장 지배자로 올라선 배경에는 ‘전략적 유연성’과 ‘제품 다양화’가 자리한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군사 용어에서 유래한 경영 전략이다. 본래는 한 전략만 고집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군대를 유연하게 운용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단어다. 경영학에서는 기업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광동제약의 전략적 유연성이 빛을 발한 사례가 2001년 선보인 ‘영묘향 제품’이다. 우황청심원에는 핵심 재료 중 하나로 ‘사향’이 들어간다. 수컷 사향노루 복부에 있는 향낭 분비물을 건조해서 얻는 향료다. 효능이 우수하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협약(CITES)에 따라 허가된 양만 수입할 수 있어 수급이 어렵고 값이 비싼 단점이 있다. 사향 가격에 우황청심원 가격까지 좌우될 정도로 원가 부담이 큰 재료다.

광동제약은 사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를 지속, 영묘향 제품을 개발했다. 영묘향은 사향노루가 아닌 사향 고양이에서 채취한다. 임상적 효능이 기존 사향과 같아 대체물로 적합하다. 동물을 사육하면서, 살상하지 않고 채취할 수 있어 동물 보호에 일조한다. 채취량도 많아 완제품 가격이 사향 제품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타 업체가 ‘사향’ 제품만 고집하는 것과 달리 광동제약은 과감하게 영묘향을 도입했다. 결국 사향값 폭등을 견디지 못한 다른 제약사들은 우황청심원 사업에서 철수했다. 반면, 영묘향 제품 선전에 힘입은 광동제약은 끝까지 시장에 남았고,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선두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제품 다양화는 소비자 폭을 넓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 광동 우황청심원은 크게 형태와 원료로 제품군이 나뉜다. 우선 형태에 따라 환제와 액제로 구분된다. 고체 약이 환제, 현탁액 형태가 액제다. 광동제약은 환 형태의 약에 거부감이 심한 소비자를 위해 1991년 최초로 액체 형태 약품을 내놨다. 현탁액 제품은 우황청심원 복용에 어려움을 겪던 수요를 거북표로 끌어오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원료를 기준으로는 원방과 변방으로 나뉜다. 원방은 동의보감 원처방 그대로의 재료와 함량을 따른다. 일종의 프리미엄 제품이다. 변방은 우황과 사향 함량이 적고 다른 재료의 함량은 같거나 더 많다. 고급 한약 시장, 대중 한약 시장을 모두 공략할 수 있는 라인업을 만들었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한 덕분에 거북표 우황청심원 매출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장했다. 해당 기간 누적 매출은 4500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우황 수급난 헤쳐 나가야 하는데

장기적으로는 해외 공략도 필수

잘나가는 거북표 우황청심원이지만 고민거리도 꽤 많다. 단기적으로는 원료 수급난 돌파, 장기적으로는 해외 시장 공략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현재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황’ 수급난이다. 우황청심원의 핵심 원료인 우황은 소의 담낭이나 담관에 생긴 결석을 건조해 만든 생약재로, 주로 자연 초지에서 방목한 소에서 채취한다. 최근 우황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채취량 감소, 국제 수요 증가 등의 여파다. 우황 가격은 2022년 1㎏당 약 1억1000만원에서 2024년 현재 약 2억4000만원으로 2배 가까이 올랐다.

광동제약은 문제 해결책으로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일부 제품 단종을 결정했다. 국내에서 수급할 수 있는 우황이 한정적이고, 그마저도 점차 어려워지는 만큼 대표 품목에 집중해 품질 제고에 만전을 기울인다는 취지다.

장기적으로는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한다. 현재 거북표 우황청심원 매출 대다수가 국내에서 발생한다. 규모가 작은 국내 시장은 한계가 뚜렷하다. 매출을 더욱 늘리려면 세계 시장에 안착해야 한다. 광동제약도 이 사실을 잘 안다. 한약에 대한 거부감이 낮고, 한국산 우황청심원의 이미지가 좋은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시장 경쟁력은 이미 입증됐다. 1991년 미국과 일본에, 2012년에 베트남에 수출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1990년대 미국과 일본에 우황청심원 수출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 인기가 대단해 한방약 연구 모임인 ‘경옥회’가 광동제약을 방문할 정도였다. 현재는 베트남에서 인기가 상당하다. 현지에서 불법적으로 제조한 가짜 약품이 있을 정도로 화제를 모으는 약”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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