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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기본 지켜지지 않았다”…안전수칙 무시한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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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 ‘안전수칙’ 따르지 않고 임의로

안전장치 배선·방사선 경고등 조작해 사용

기흥 내 방사선 기기 694대, 안전관리자는 2명

추가 위반 사항 포함 과태료 약 1700만원 부과될 듯

경향신문

지난 5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방사선 피폭 사건이 발생한 엑스선형광분석장치(XRF).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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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 설명서에 나와 있는 취급 주의사항대로도 관리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방사선 피폭 사건을 조사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설명서나 안전수칙을 따르지 않고, 방사선 발생 장비를 임의로 조작해 수년째 사용하다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누가 언제 왜 했는지 모르는 ‘비정상적 조작’


26일 원안위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5월27일 기흥사업장 내 엑스선으로 반도체 웨이퍼에 도포된 화학 물질의 두께를 측정하는 ‘엑스선형광분석장치(XRF)’ 1대가 고장났다. 장치 안으로 웨이퍼를 넣었다 빼는 기능이 멈춘 것이다. 정비를 담당하는 직원 2명이 고장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덮개라 할 수 있는 ‘셔터 베이스’를 열고 내부를 확인했다. 약 14분 뒤 장비 앞 표시등에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작업을 중단했다. 직원 2명은 특별한 증상이 없어 귀가했지만 다음날 신체 일부가 붓자 피폭인 것 같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사측도 이때 피폭 의심을 인지하고 병원 이송 등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

원안위는 이번 사건이 XRF를 임의로 개조한 데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방사선 발생 장비는 용도와 용량에 따라 ‘허가 대상 장비’와 ‘신고 대상 장비’로 나뉜다. 해당 XRF는 신고 대상 장비로 상대적으로 전압이 낮고 방사선 피폭 위험이 낮다.

그러나 해당 XRF는 출시 때와 달리 비정상적으로 개조돼 있었다. 원래는 셔터가 열렸을 때 ‘인터락’이라 불리는 안전장치가 작동해 엑스선 방출이 정지되고, 셔터가 닫히면 인터락이 해제돼 엑스선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해당 XRF는 셔터가 열리더라도 인터락이 작동하지 않도록 배선이 변경돼 있었다. 원안위는 오랜 기간 사용하다 셔터와 인터락 스위치 사이 틈이 발생해 셔터가 닫혔을 때도 엑스선이 나오지 않자, 셔터 개폐 여부와 상관없이 항상 엑스선이 나오도록 배선을 변경한 것으로 추정했다.

해당 XRF는 일본의 ‘리가쿠’가 제조한 것으로 삼성전자가 2001년 5월 국내 판매사 ‘한국아이티에스’를 통해 들여온 장비다. 기흥사업장에는 같은 모델의 장비가 8대 있는데, 사건이 발생한 장비를 포함해 3대가 동일하게 배선이 변경돼 있었다.

원안위는 정비 이력은 물론 최근 3년 내 정비 작업을 했던 삼성전자 직원 37명과 XRF 판매사 직원 2명 등을 조사했지만 누가, 언제, 왜 배선을 변경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원안위는 수사 의뢰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피폭 사건을 인지한 다음날인 지난 5월29일 나머지 2대의 배선을 정상 상태로 복원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배선뿐 아니라 경고등도 임의로 교체한 사실도 드러났다. 원안위에 따르면 해당 XRF 상단에는 방사선이 방출되면 불이 켜지는 경고등이 있었지만, 2015년 필라멘트 전구에서 작은 LED 전구로 교체됐다. 이 때문에 피폭자들은 경고등에 불이 켜졌는지도 몰랐고, 장비 전면 표시등을 통해 방출 사실을 인지했다.

있으나마나 한 ‘설명서’ ‘안전수칙’


원안위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이 자체적으로 유지·보수 절차서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지만 ‘방사선안전관리자’의 검토나 승인 절차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기흥사업장 방사선안전관리자는 2명으로, 이들이 신고 대상 장비 693대와 허가 대상 장비 1대를 담당하고 있다.

또 판매사가 제공한 사용설명서, 유지·보수 설명서는 물론 XRF 표면에 부착된 ‘안전수칙’도 따르지 않았다고 원안위는 덧붙였다. 안전수칙에는 ‘인터락 임의 해제 금지’ ‘인터락 정상 가동 여부 확인’ ‘설비 개조할 때 방사선안전관리자에게 허락은 얻은 뒤 진행’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각에서 전원을 끄지 않고 정비를 진행한 직원의 과실도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원안위는 개인의 과실이 아닌 관리·감독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사건 발생 이전부터 정비가 잘못돼 있었다”며 “작업자의 과실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피해는 컸다. 피폭 직원 2명은 피부에 대한 등가선량(특정 장기에 방사선 종류에 따른 가중치를 적용한 흡수량)이 각각 94시버트(㏜), 28㏜였다. 작업종사자의 경우 1년에 최대 0.5㏜까지 노출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188배, 56배 초과한 것이다. 통상 흉부 엑스선 촬영 1회에 노출되는 등가 선량은 0.1밀리시버트(m㏜)로, 94㏜는 엑스선 촬영 94만회에 해당하는 양이다.

원안위는 이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다음달 기흥사업장에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처분을 할 계획이다. 과태료 액수는 최대 1050만원일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안전법을 보면 안전 관련 품목을 임의로 해제해 사용한 경우 최대 450만원, 직원이 피폭 선량한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 6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원안위는 이번 사건과 별개로 허가 대상 장비 관련 교육 부적합 등 원자력안전법 위반 사항도 적발했다. 원안위는 과태료 약 600만원에 해당하는 이 위반 사항까지 포함해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다만 원안위는 사건 발생 후 삼성전자의 초기 대처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피폭 의심을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약 3시간이나 보고가 지체된 점 등을 봤을 때 원안위 조사 결과를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방사선 노출 인지 직후 문제의 설비를 즉시 정비했고 동종 설비는 빠른 시일 안에 모두 교체할 계획”이라며 “안전 관리 시스템도 대폭 강화해 방사선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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