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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일사일언] 엄마 음식을 떠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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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품을 떠나면 엄마들은 음식 생각을 자주 한다. 사방에 널린 게 음식이고 이제 대학생이니 알아서 먹는다고 해도 입에 맞는 음식이 없을까 봐 걱정이다. 나도 그랬다. 집을 떠난 딸에게 매일 인사처럼 뭘 먹었는지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음식도 보냈다. 김치, 장조림, 오징어채 무침, 곰국도 몇 덩이 얼려서. 문자도 한다. 받아서 맛있게 먹으라고. 답은 늘 시큰둥하다. 몇 달 뒤 딸이 사는 원룸에 가서 냉장고부터 열었다. 음식이 그대로 있었다. 그전에 보낸 것도 있고. 나는 이게 뭐냐고 냉장고 문을 요란하게 닫으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는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왜 보내느냐고 얼굴을 붉히고.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과의 만남은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불편해졌다.

그 얼마 뒤 대학교 문예창작 실기 수업에서 ‘냉장고에 든 음식’을 글쓰기 과제로 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반에서 한두 번 수업한 적이 있는데, 그분들의 음식과 많이 달랐다. 대학생들의 냉장고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건 엄마가 보낸 음식이었다. 어떤 학생의 글은 조금 더 진전되어 엄마가 보낸 음식을 모두 버렸다로 끝맺었다. 생각도 못 한 일이라 글 쓴 학생을 찾아, 왜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친구처럼 보이는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먹을 시간이 없다고. 나는 다시 물었다. 시간이 없어도 밥은 먹지 않느냐고. 글 쓴 학생이 친구랑 먹어야 한다고 하자 아이들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랑 매일 밥을 먹지는 않잖아요,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또 물었다. 내 말이 답답했는지 맨 뒤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일어났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서 잘 먹지 못한다고 했다. 엄마가 보내준 음식만 먹으면 언제 새로운 음식을 먹어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주변의 음식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중엔 엄마가 보내준 음식을 잘 먹는 학생도 있었지만, 안 먹는다고 해서 마음 상할 일은 아니었다. 친구랑 밥을 먹으며 삶을 나누고 새로운 음식을 먹으며 세상 공부를 하고, 품을 떠난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 중이었다.

[정영선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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