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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만물상] 안경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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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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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지난 6월 중국이 어린이 근시(近視) 줄이기에 고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8년 “학생들의 근시 유병률이 높아지고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큰 문제”라며 대응을 지시했다. 이후 중국은 초·중학교의 숙제와 시험 부담을 줄이며 근시를 줄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중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동아시아의 근시 급증은 안과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2015년 네이처지(誌)는 “한국 19세 남성의 96.5%가 근시”라며 놀라워했다. 우리 스스로도 놀랄 일이다. 1960년대엔 ‘유전’을 근시의 원인으로 봤고, 관련 유전자도 규명됐다. 그러나 유전적 원인만으로는 1950년대 인구의 10~20%에 불과했던 동아시아의 근시 환자가 수십 년 만에 80~90%까지 급증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1990년대엔 독서나 컴퓨터 사용의 영향이 주목받았지만, 그것도 주된 원인은 아니라는 연구가 나왔다. 2007년 미국 아동 500명을 5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근시와 강력한 상관관계를 가진 환경적 요인은 ‘야외 활동 시간 부족’뿐이란 결과가 발표됐다. 2008년 호주 연구팀이 초·중등 학생 4000명을 3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근시는 안구의 앞뒤 길이가 너무 길어져서 생기는 병이다. 녹내장, 망막박리, 백내장, 황반변성 같은 심각한 질병의 위험성까지 높인다. 학계에서는 성장기 야외 활동의 근시 예방 효과가 ‘햇빛’에 있다고 추정한다. 햇빛이 눈에 들어가면 망막에서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돼 안구의 과도한 성장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햇빛을 많이 못 보면 도파민 분비가 교란돼 자라면서 근시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독일·호주·일본에서는 햇빛과 유사한 특정 파장의 빛을 눈에 쐬어 근시를 억제하는 기술과 의료 기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중국 연구팀이 최근 영국 안과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어린이의 근시 비율이 36%로 1990년대보다 3배 증가했다고 한다. 도시화와 햇빛을 못 보는 실내 생활 증가 탓이다. 일본(85%), 한국(73%), 싱가포르(44%), 중국(41%) 등 동아시아의 근시 유병률이 제일 높았다. 하루 2~3시간 햇빛을 보고 뛰놀면 근시가 줄어든다. 그래서 싱가포르도 성장기 아동의 야외 활동을 늘려보려 했지만, 학부모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시력도 지키고 성적도 높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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