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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부검 때 나온 ‘코끼리 주사’ 약물…정신병원에선 왜 기록 안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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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영등포구 해상병원 격리실에서 침대 머리맡과 벽 사이에 하반신이 끼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해자 박아무개(58)씨. 박씨는 지난 4월19일 새벽 이 병원 격리실에서 4시간 동안 이렇게 방치된 채 숨졌다. 시시티브이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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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살 남성 박아무개씨는 알코올 중독으로 자해를 하다 서울 영등포구 해상병원에 입원한 지 8시간 만에 격리실에서 숨졌다. 박씨는 침대와 벽 사이에 하반신이 낀 4시간 동안 방치됐다. 부검 결과 의무기록에 없는 할로페리돌이 검출됐다.



33살 여성 박아무개씨는 다이어트 약 중독 치료를 위해 부천더블유(W)진병원에 입원한 지 17일 만에 숨졌다. 사망 6시간 전 간호진에 의해 의문의 약물을 삼킨 뒤 급격히 몸을 못 가눴고, 이후 격리·강박 당했다. 해당 약물은 의무기록지에 기재되지 않았다.





최근 정신병원에서의 사망사건이 잇따라 드러나며 ‘정신병원 개혁’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각 사건마다 입원 기간 의무기록지에 나오지 않은 약물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격리실 내 방치와 격리·강박도 문제지만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약물 투여로 인한 ‘화학적 강박’이 사망 과정에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해상병원 사건과 부천더블유진병원 사건 유족과 변호인은 진료기록부에 등장하는 않는 약물에 의문을 제기하며 진료기록부 및 간호기록부 허위작성 혐의를 주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침대 머리맡과 벽 사이에 몸이 끼인 채 상반신을 숙인 자세로 사망한 해상병원 박씨의 경우 지난 7월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심장 혈액과 위 내용물 및 말초혈액에서 할로페리돌이 검출됐다. 할로페리돌은 주사제로 쓸 경우 진정효과가 너무나 강해 정신병원 강제 입원 경험이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아티반 주사와 더불어 ‘코끼리주사’로 불리는 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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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8일 밤 9시52분, 서울 영등포구 해상병원에 입원한 박아무개씨가 간호진이 준 약을 삼키고 있다. 시시티브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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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검색 사이트 약학정보원 등을 보면, 할로페리돌은 주로 정신분열증(조현병), 양극성 장애의 조증 등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1세대 항정신병 약물이다. 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22일 한겨레에 “할로페리돌은 도파민 수용체를 차단하여 환각·망상·혼란된 사고 등 정신병적 증상을 억제하고 강한 진정 효과로 불안과 과도한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근육의 경직과 부정맥 등 근육계통과 심장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할로페리돌의 진정효과가 너무 커서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의식의 저하로 인해 신체적 손상이 가도 이를 감지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만한 컨디션이 못 됐을 수 있다”고 했다.



유족들도 영등포경찰서에 낸 고소장에서 “할로페리돌은 의무기록지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약물이다. 즉 의사의 처방이 없었는데도 투약된 것이다. 처방되지도 않은 진정제를 추가로 투여함으로써 알코올중독인 망인에게 투약한 다른 진정제들과 함께 작용하여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효과를 강화함으로써 망인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데 기여하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사망한 박씨가 침대에 끼인 뒤 몸을 제대로 못 가누고 빠져나오지 못한 데에 이러한 약물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느냐는 의심이다.



이에 대해 병원 쪽은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해상병원의 이 아무개 이사는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할로페리돌 투약에 대한 질문에 대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더 드릴 말이 없다”고만 답했다. 이 병원에서는 2016년 4월에도 27살 남성이 35시간 격리·강박 당한 끝에 사망한 적 있다. 당시 엔젤병원이었던 이 병원은 사건 이후 해상병원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해상병원 이아무개 이사는 2016년의 격리·강박 중 사망사건과 관련해서도 “강박이라는 게 묶는 게 아니라 치료개념”이라고 말했다. 8년 전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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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 오후 9시43분경 간호조무사 등 3명이 환자 박아무개씨에게 약을 먹이고 있다. 투약 이후부터 박씨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기색을 보였고, 다음날 새벽 4시경 사망했다. 시시티브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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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더블유진병원 사건 피해자 유족도 기록에 남지 않은 약물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부천원미경찰서에 낸 고소장에서 “5월26일 19:00경부터 27일 04시03분경까지 안정실(격리실)에 갇혀 있었으며 간호사들로부터 총 4회에 걸쳐 미상의 약을 경구투약 당하였다”며 “하지만 진료기록부를 보면 27일 쿠아틴정 200mg 1정을 간호사(간호조무사)에게 구두 처방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으로 이는 의료법위반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실제 폐회로티브이(시시티브이) 영상을 보면, 5월26일 20시40분경 간호조무사 2명이 환자에게 약 3알을 먹이고, 21시43분경에도 3명의 간호조무사가 3차례에 걸쳐 약을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약이 바닥에 떨어지자 주워서 먹이기도 한다. 이때부터 환자가 몸을 못 가누는 기색이 보이자 다음날 새벽부터 강박이 시작되는데, 두 시간이 안 돼 강박은 해제됐지만 환자는 끝내 숨졌다.



양재웅 부천더블유진병원 원장은 앞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에 “(26일 저녁에 투약한 약은)원래 처방이 되어있는 정규 오더의 약이라고 알고 있고, 기존에 처방되어있는 약은 간호 기록에 기입하지 않는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간호기록지 및 경과기록지를 보면 다른 약의 경우 다시 처방했을 때에도 처방 기록이 남아있어 26일 투약 약물 미기재가 양 원장의 답변만으론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양재웅 원장의 답변과 관련해 또 다른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상식적으로 차트 누락이 맞다. 이런 의문점을 하나하나 밝혀내야 고인이 왜 사망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법 22조는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 기재·수정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신과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기회가 없고, 부작용이나 이상반응을 경험해도 이에 대해 적절한 처치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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