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김여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이 상정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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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19일 국회 본회의에 불참하면서 ‘김건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의 국회 표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도 진행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이미 필리버스터를 했던 법안이거나 내용 숙지가 안 됐다는 이유를 든다. 정치권에선 ‘포기’라고 본다. 대통령·당 지지율 동반 하락의 주요 원인인 김건희 여사 ‘육탄 방어’에 나설 명분도, 총대 멜 의원도 찾기 어려웠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경제·안보·의료 등 각종 위기 상황에서 여당 의원이 돌아가며 24시간 김 여사 감싸기 발언을 할 때 불어닥칠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정치적 셈법이 작동한 결과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본회의 개회 직전 의원총회를 열어 본회의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안건마다 필리버스터로 대응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아예 불참하는 쪽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후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3개 법안이 처리됐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은 21대 이어 22대 국회에서 강화된 법안이 다시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쪽에선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
의원 수에서 밀리는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 5월 이후 주로 대통령 거부권에 기대는 원내 전술을 써왔다. 4·10 총선의 기록적 참패로 여소야대 구도가 더 확대되자, 헌정질서 훼손 비판을 받는 윤 대통령 거부권 남발에 ‘절차적 명분’을 제공하는 지렛대로 필리버스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들어 채 상병 특검법안(7월3∼4일), 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7월25∼30일),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안(8월1∼2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8월2∼3일) 등 한 달 사이 무려 7건의 필리버스터를 했다.
이때마다 ‘쟁점법안 본회의 상정→국민의힘 ‘무제한 토론’ 요구→민주당 등 야당 ‘토론 종결권’ 행사→야당 본회의 단독처리→국민의힘 ‘대통령 재의요구권’ 요청→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본회의 재의결 부결’이 반복됐다.
앞서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은 1차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의결된 바 있다. 민주당이 주도했던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은 지난해 12월 필리버스터 없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은 즉각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배우자 관련 수사를 거부한 초유의 상황이어서 통치권의 사적 남용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채 상병 특검법 역시 21대 국회 마지막 회기인 지난 5월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 없이 의결되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자신이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황이어서 ‘방탄 거부권’ 비판은 더 커졌다. 두 법안 모두 민주당 등 야당이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 의결했는데, 재의결 때는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해 부결시켰다.
국민의힘이 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맞서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지난번에 충분히 법안의 부당함을 설명했기에 같은 것을 반복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판단이 있었다”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요구해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이 진행한 의사일정이다. 강력한 항의 표시로 아예 보이콧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여사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 나왔다.
당장 김 여사 관련 의혹은 주가조작·명품가방 수수에 이어 이날 총선 개입 의혹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다. 김 여사 모녀가 23억원 이득을 봤다는 주가조작 사건은 방조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고, 명품가방 수수는 기소는 피할지 몰라도 ‘검찰식 법과 원칙’이 선택적으로 적용됐다는 비판을 방어할 논리가 달린다.
지역사랑상품권 형태로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지원하는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안을 한 달여 전 필리버스터·거부권으로 부결시킨 상황에서, 정부의 ‘지역화폐’ 재정 지원을 의무화한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을 다시 부결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지역 자영업자 등 민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의원들에게 부담이다.
필리버스터에서 억지 주장을 펴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국회법은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간 국민의힘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발언을 보면, 쟁점법안에 대한 반대토론이 아닌 ‘장시간 버티기’가 목적인 경우가 자주 있었다.
지난 7월4일 채 상병 특검법안 필리버스터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검찰 출신인 곽 의원은 당시 채 상병 특검법안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라며, 특검법안과 관련 없는 이화영 전 경지도부지사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어 김건희 여사 관련 허위사실 유포 고발 사건, 검찰 수사를 받는 야당 의원 사건 등으로 5시간 가까이 이어진 필리버스터 발언 대부분을 채웠다.
당직을 맡고 있는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오늘 공천 개입 정황까지 추가로 보도된 상황에서 여당이 김건희 여사를 디펜스(수비)하기 난감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늘상 시간때우기식으로 해오던 필리버스터마저 못한 것은 결국 김건희 특검법이나 채 상병 특검법, 지역사랑상품권법에 대해 더는 반론할 내용이 없다는 걸 인정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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