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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가족의 명절<하>] 친구를 입양했다…현실 못 따라가는 '가족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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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가족기본법, 가족범위 혈연·혼인·입양에 한정
국민 인식·현실 바뀌었는데…尹정부는 되려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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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이스턴아동합창단 단원 등 관계자들이 지난해 5월 서울 용산구 노들섬 다목적홀 숲에서 열린 제18회 입양의 날 기념식에서 타임캡슐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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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조채원 기자] # 2023년 발간된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저자 은서란은 20대 때부터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계속 찾던 중에 귀촌을 결심한다. 귀농학교 등을 통해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비혼 여성이 혼자 시골에 정착하기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후 또래가 있는 시골 마을에서 삶을 꾸려가던 은 씨는 마음이 맞는 친구 어리를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다. 5년 간 함께 지내왔고 앞으로도 같이 살기로 약속했지만 동성인 이들은 서로의 법적 보호자는 될 수 없었다. 은 씨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은 5살 연하의 어리를 딸로 입양하는 것이었다.

추석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소중함을 되새기는 명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정책의 기본법인 건강가정기본법(건가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한다.

"2인 대상으로 공급하는 청년주택에서 친구와 둘이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동성 혈연가족만 같이 살 수 있어서 포기했어요."

"'법적 가족'이라고 하는 테두리는 맨 마지막 가장 결정적인 곳에서 힘을 발휘해요. 진단서를 뗀다거나 환자를 도와 같이 일을 하려고 해도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와야 하는 게 되게 많더라고요. 호스피스로 가는 상담을 할 때도 환자 본인이 못 움직이면 제가 대신 가야 하는데 가면 가족이어야 한다고, 네가 왜 오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한국여성민우회가 2022년 5~6월 '뚝딱뚝딱, 가족 법·제도·문화를 다시 짓다'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집담회 발언 中-

은 씨와 위 사례처럼 같은 집에 사는 친구나 동료, 비혼 연인, 동성 부부 등 전통적인 구성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법적 가족이 아니면 의료, 주거와 생활, 복지제도, 장례 등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와 사회보험, 공공부조, 출산휴가, 가정폭력방지 등에서의 제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법과 제도가 변화하는 국민 인식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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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정책의 기본법인 건강가정기본법(건가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한다. 사진은 한 기업행사에 참여한 임직원이 가족들과 걷고 있는 모습. /박헌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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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가 '유대감 느끼면 가족'

가족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4월 발표한 가족실태조사 결과 가족은 혈연관계 87.4%, 가족은 법적으로 연결된 관계 83.1%, 가족은 심리적으로 유대감을 느끼는 친밀한 관계(동거여부 관계 없음) 79.0%, 가족은 경제적으로 생계를 함께 하는 관계 72.8%, 가족은 함께 거주하며 생활을 공유하는 관계 67.8% 순이었다. 가족은 내가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동의 비율은 39.7%로 가장 낮았다. 가족 구성 개념은 혈연과 혼인 등에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동거 여부보다 경제적 공동체로서와 정서적 친밀성도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14일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인이 일정 기간 다른 사람의 자녀를 양육하는 일반위탁가족,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닌 남녀가 가족을 이룬 동거가족에 대해선 '정상가족으로 볼 수 있다' 의견은 각각 48%로 절반에 가까웠다. 그러나 함께 살며 생계를 공유하는 형태의 가족인 대안가족에 대해서는 '정상가족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38%)이 '정상가족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보다 6%p 낮았다. 부부의 성별이 동일한 동성가족에 대해서는 10명 중 6명(59%)가 '정상가족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조사는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점은 인식의 변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면서도 "동성가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 '가족의 정의' 조항 삭제 시도, 현 정부서 좌절

달라진 인식과 시대변화를 반영한 가족 개념 확장 시도가 없진 않았다. 2021년 문재인 정부가 마련해 그 해 4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에선 건가법 개정을 통해 '가족의 정의' 조항을 삭제하려 했다. 기본계획 내용은 △ 가족의 다양성 확대를 통해 비혼, 동거, 생활공동체, 동성혼 등 사회적으로 권리에 제약을 받았던 집단 수용 △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기를 통한 성평등한 가족으로의 변화 △ 출생신고 시 혼인 관계의 여부 미포함 등이었다. 당시 종교계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가족 해체, 가계 혼란 가중, 혼외 출생 조장 우려 등의 반발이 나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가족 범위 확대' 시도는 좌절됐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2022년 9월 국회에서 건가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현행 유지로 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가족개념을 둘러싼 불필요한 정쟁을 없애는 것이 좋으며, 현행안으로도 충분히 가족을 보살피고 아우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여가부는 3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2024년 시행계획(안)을 확정했다. 정책 목표에 '가족 다양성 확대'를 언급했지만 새로 마련하는 법·제도는 부모가 아니어도 출생신고를 가능하게 하는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미혼부 자녀 아동양육비 지원 절차 개선 등 부모와 자녀 관계를 중심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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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2022년 9월 국회에서 건강가족기본법에서 가족의 정의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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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다영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5월 발간한 '현 정부의 가족관념에 담긴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서 "건가법 현행 유지 기조는 비혼, 사실혼, 공동체 가족, 동성혼에 기반해 가족을 구성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냉대와 차별, 심지어 혐오를 넘어선 무차별적 공격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라며 "대다수 사회구성원은 가족의 정의가 보다 유연해지기를 바라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건가법 개정·생활동반자법 논의 활성화 기대

건가법 개정 논의를 앞서가는 입법 시도도 있었다. 21대 국회 기간인 2023년 4월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2023년 5월 발의된 가족구성권 3법(생활동반자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그것이다. 법적 가족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며 생활하는 관계에 대해선 법적 권리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동거 가족들이 놓인 상황을 차별로 규정, 시정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지만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우회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종교계와 보수진영의 반발, 법적 가족과 유사한 법률적 지위를 부여하는 데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두 법안은 임기만료 폐기됐지만 변화 움직임은 지속되고 있다. 용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을 재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동성 배우자도 사실혼 관계의 이성 배우자와 마찬가지로 피부양자 자격이 있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향후 건가법 개정안 추진이나 생활동반자법 제정, 관련 제도 개선 동력이 될 전망이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판결 직후 환영 성명을 내 "인권위는 2022년 4월 국회의장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넘어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를 수용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과 (가칭)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며 "22대 국회에서 이와 같은 법률(안)이 상정되어 본격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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