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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씨네멘터리] "베테랑2"는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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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18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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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에도 급(級)이 있습니다. "베테랑"(2015)은 시쳇말로 '역대급' 흥행작입니다. 24편에 이르는 천만 한국 영화 중에서도 5위에 해당하는 1,341만 명의 관객이 봤습니다.

"어이가 없네"

"베테랑"에 나온 유명한 대사로 이 영화 이후 사회적 밈이 될 정도였습니다.

'인간 말종'인 재벌가 자제 조태오(유아인 분)는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화물차 기사 부자(父子)를 즉흥적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입니다. 기사의 하소연을 듣던 조태오는 밀린 임금이 420억 원이 아니라 420만 원이라는 말을 듣자 -고작 이런 껌값 때문에 이 난리를 치고 있다고? 하는 듯한- 헛웃음을 날리며 '어이가 없다'고 내뱉습니다.

이 대사 바로 직전에 조태오는 자신의 방에 장식돼있던 검정색 자동차 모형을 화물차 기사의 어린 아들에게 선심쓰듯 건네는데, 이 모형이 바로 배트맨 실사 영화(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 나왔던 배트-모빌 피규어입니다.

"나는 복수다"

배트맨 프랜차이즈 실사 영화 중 가장 최근인 2022년에 개봉했던 "더 배트맨"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비내리는 한밤의 고담시(市) 지하철역에서 무고한 시민에게 린치를 가하려는 폭력배 앞에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배트맨이 나타납니다. 두목 갱이 배트맨에게 묻습니다. "넌 또 뭐야?" 곧이어 배트맨을 공격하는 두목 갱을 간단히 막아낸 배트맨은 이 악당을 기절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팬 뒤 나지막이 말합니다.

"나는 복수다"(I am vengeance)

배트맨은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복수를 위해 악을 응징할 뿐입니다. 그래서 배트맨은 '정의의 사도'가 아닌 '자경단'[vigilante·비질란테]입니다. 피살당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배트맨은 고담시의 악당들에게 '사적 제재'[lynch·린치]를 가합니다.
* * *


'프랜차이즈 영화' 또는 '시리즈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의 마음은 양가적(兩價的)입니다. 전편(前篇)과 같기를 바라면서도 전편과는 좀 달랐으면 하는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마음은 한 가지일 겁니다. 야심있는 감독이라면, 전편과 똑같은 걸 뭐 하러 만들겠습니까. 물론 흥행만큼은 성공한 전편과 같기를 바랄테지만요.

프랜차이즈 영화의 흥행 공식은 '익숙하면서도 새롭게'입니다. '순한 매운 맛'같은 형용모순이죠. 이 어려운 걸 해내야 하는 게 프랜차이즈 영화의 감독입니다.

지난 월요일, "베테랑2"의 언론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류승완 감독은 말했습니다.

"전편의 성공을 재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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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의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박선우(정해인) / CJ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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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1편이 대놓고 법을 무시하는 재벌가 망나니를 때려잡는 경찰의 이야기라면, "베테랑" 2편은 법이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악인을 공권력을 대신해 처단하는 자경단을 좇는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대중들로부터 '해치'라는 닉네임으로 칭송되며 형사사법체계 밖에서 '눈에 눈 이에는 이'식으로 악인들을 살해하는 이 빌런 자경단은 "더 배트맨"의 빌런 '리들러'(폴 다노 분)를 닮았습니다. 리들러는 고담시의 부패한 시장과 경찰청장, 검사를 차례로 죽이면서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사적 제재를 일삼는, 복수심에 불타는 자경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리들러는 처음에는 배트맨을 자신과 "같은 과(科)"로 생각하고 동지 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마치 정해인이 황정민에게 "선배님이 조태오 잡는 거 보고 경찰이 됐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황정민이 연기하는 서도철 형사는 불타는 정의감만큼이나 -그의 상사 오팀장의 말에 따르면- 나쁜 놈들 패는 것도 좋아하는 경찰입니다. 배트맨-리들러, 황정민-정해인은 그래서 두 개의 자아,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베테랑" 1편이 시원하게 명동 한복판까지 직진하며 '가진 것 없는(우리가 돈이 없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코믹 범죄액션 수사극이라면 2편은 소셜미디어와 별풍선을 손에 쥐고 여론 재판을 하는 대중을 향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세태고발범 죄액션 수사극입니다.

"베테랑2"의 시작은 이 영화가 프랜차이즈 영화라는 점을 분명하게 환기시킵니다. 1편의 경쾌한 프롤로그와 판 박은 듯 똑같은 구조입니다. 하지만 어깨 힘이 너무 들어갔달까요… 음악, 편집, 연출 모든 것이 과잉이라 기대감을 고양시키기보다는 1편의 가벼운 스윙을 그립게 합니다.

뮤직비디오처럼 달뜬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가면 영화는 무거운 분위기로 진입하며 이 영화가 전편과는 다른 영화가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전편이 일종의 명확한 선악 구도를 딱 그려 놓고 달려가니까 관객이 일종의 유사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듯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응원하고 그 팀이 승리하면 명확한 쾌감을 얻고, 이런 거였잖아요. 그런데 저는 영화를 내놓은 뒤 "베테랑"과 비슷한 사회 현상들이 벌어질 때, (대중들이) 영화의 어떤 장면들을 소환해서 소비하는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불편했어요. 우리가 흥분해서 마음 속으로 각자 판결을 내리고 하는 것들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베테랑2"에서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정의와 신념이 대결하는 구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지상파 보도국 라운드 인터뷰)

"베테랑2"는 그래서 악의 정체가 모호하고, 1편처럼 거악(巨惡)을 정점으로 악의 무리가 편대를 이루는 단일한 악의 구조를 다루는 영화가 아닙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죄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인간도 악이고, 그런 악을 때려잡기 위해 사적 제재에 나선 해치도 악이고, 진실은커녕 사실도 외면한 채 "어차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중도 악이고, 이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유튜버·사이버 렉카도 악입니다. 열혈형사 서도철이 길을 잃기 딱 좋은 환경이죠.

"우리가 분노하고 반응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의 반응은 정당한가, 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았어요. 사건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제공되는 정보의 소스만으로 순간적으로 분노해서 그걸 내 안에서 판단을 쉽게 내버리고 그 다음에 다른 이슈가 생기면 그 이슈로 쉽게 넘어가 버리고. 개인이 내린 판결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개인과 사회는 그렇게 계속 굴러가고 있죠….저는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속시원한 해답을 가지고 가시는 것보다 토론해 볼만한 질문 거리를 가지고 극장을 나서시기를 바랍니다." (기자간담회)

"비질란테"와 "모범택시" 등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소재라고는 해도 류감독의 문제 의식 자체는 충분히 영화로 만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소재를 얼마나 류감독답게, 프랜차이즈 영화답게 만드느냐는 것이겠죠.

남산 계단 액션씬과 건물 옥상의 우중(雨中) 활극은 '액션 베테랑' 류승완 감독의 솜씨를 십분 보여줍니다. 이 장면들을 놓고 "존윅"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까지 소환되고 있는데 그 영화들에서도 못 본 액션 디자인 '그자체'는 이 영화를 연휴 극장가에서 볼만한 프랜차이즈 영화로 만들어주기 충분합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이 '토론 거리'로 지정해준 이슈들은 가슴에도 머리에도 잘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해치의 캐릭터는 설득력이 부족해 주제 의식이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착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트맨은 어릴 적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자경단이 되고, 조커(2019)는 자신과 자신의 엄마를 버린 부조리한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빌런이 됩니다. 그런데 해치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모든 것이 설명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가 '맑눈광'의 싸이코패스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싸이코패스는 신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싸이코패스에는 공감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싸이코패스에게는 격렬한 분노를 느끼기조차 어렵습니다. 감정이입이 있은 후에야 토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자체로는 완성도 높은 볼거리지만 지나치게 화려하고 아크로바틱한 액션, 1편에 비해 흘러넘치며 불쑥불쑥 '나도 있다'고 외치는 듯한 음악, 앞서 얘기한 도입부의 과잉 등은 대중 영화로서 "베테랑" 1편이 보여줬던 현실감과 판타지 사이의 적당한 줄타기에 필적하지 못합니다. '15세 관람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잔인한 시신 사진들이 영화 전개상 꼭 필요했는지, 메인 플롯과 꿰맞춰 놓은듯한 일부 서브 플롯이 꼭 필요했는지도 곱씹어보게 됩니다.
* * *


요즘처럼 극장가서 볼만한 스케일있는 대중 영화가 가물고, 영화 선택에도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시대에 "베테랑2"는 분명히 돈값하는 영화입니다. 볼거리,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의 요소를 두루 갖춘 두 시간이 한눈 팔 겨를 없이 지나갑니다. 개봉 이틀 만에 130만 관객에 육박했고 사흘째인 일요일 정오 현재 예매 관객만 55만 명이라 이런 추세면 추석 연휴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도 어렵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베테랑 프랜차이즈'에 기대했던,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고 속이 후련하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사법적 정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때 싹트는 '사적 제재'를 둘러싼 질문을 던지지만, 관객들이 진지하게 토론으로 받을만한 현실감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 아래로 스크롤하면 씨네멘터리 칼럼을 구독할 수 있습니다)

이주형 논설위원 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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