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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전 부치고 홍동백서 따지는 차례상, 언제까지 차리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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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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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만790원. 한국물가협회가 서울과 6개 광역시를 대상으로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10일 가격 기준)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전통시장 4인 가족 기준인데, 지난해보다 1.8% 올랐습니다. 그래도 대형마트(35만6950원)에 견줘서는 21.3% 저렴하네요.



유교 전통문화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에서 ‘차례상 표준안’을 제안하며 간소화 방안을 밝힌 지도 2년이 지났습니다. 2022년 성균관이 일반 국민 1천명과 유림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적당한 차례 비용’으로 일반 국민은 10만원대(37.1%), 유림은 20만원대(41%)를 가장 많이 꼽았었는데요, 그럼에도 차례상 부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실제로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 시사 폴(POLL) 서비스 ‘네이트큐(Q)’가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성인 6220명을 대상으로 ‘5일간의 긴 추석 연휴, 가장 부담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5명 가운데 1명(1379명, 22%)이 ‘명절 음식 준비 부담’을 꼽았습니다.



여성 응답자의 26%가 ‘명절 음식 준비’가 가장 부담스럽다고 지목했고요, 남성은 10%가 같은 항목을 부담 1순위로 꼽은 점이 눈에 띕니다. 명절 차례상을 둘러싼 갈등은 폭력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2022년 9월 추석 연휴 때 부산에서는 아내가 ‘앞으로 차례 음식을 만들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한 뒤 부부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져 아내가 남편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성균관이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발표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은 2022년 당시 “차례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의식인데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에 불화가 초래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라며 “차례상 표준안이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세대 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겨레

성균관에서 제안하는 간소화된 추석 차례상.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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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차례상 표준안’을 보면 차례상 음식 가짓수는 최대 9개면 족합니다.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입니다. 여기에 육류, 생선, 떡을 추가할 수 있는데 상차림은 가족들이 서로 합의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유독 만들기 수고로운 전이 빠진 것이 특징입니다. 성균관이 차례상에 전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한 근거는 조선시대 예학사상가인 사계 김장생이 쓴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서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고 한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예법 지침서인 ‘주자가례’에도 차례상에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리고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조선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은 밀가루를 꿀과 섞어 기름에 지진 과자와 같이 만들기 번거롭고 비싼 음식인 ‘유밀과’를 올리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고요, 조선 중기 학자인 명재 윤증 선생도 기름으로 조리한 전을 올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균관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다도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동안 차례상을 바르게 차리는 예법처럼 여겨왔던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와 ‘조율이시’(대추·밤·배·감)도 예법 관련 옛 문헌에는 없는 표현이라고 하니, 상을 차릴 때 음식을 편하게 놓으면 됩니다.



최근에는 명절 연휴를 활용해 국외 여행을 떠나는 분들도 많은데요, 최 회장은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면서도 “국외에 가서 현지 음식으로 간소하게 조상을 기리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례를 아예 안 지내는 것보다는 낫다는 취지죠.



혹시 피자나 스파게티를 차례상에 올리고 싶으신 분이 있으신가요? 최 회장은 1인 가구가 크게 늘어난 점 등을 들어 “권장은 하지 않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경우엔 올려도 된다”고 합니다. 과일 역시 “특히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과일이면 얼마든지 좋다”고 하네요.



이처럼 중요한 건 형식보다 마음입니다. 전은 이제 진짜 안 부쳐도 됩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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