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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창업 → 폐업 → 재창업···굴레에 갇힌 韓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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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만6487명.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개인·법인 사업자 수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사업자는 전년(86만7292명) 대비 13.7% 늘어났다. 2005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대폭으로 폐업이 증가했다. 국내 자영업이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지만 최근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악재가 계속 겹친 탓이다. 팬데믹 이후 빚으로 연명해오던 자영업자는 고금리·고물가를 못 이겨 신음 중이다. 최저임금은 더 올랐고 배달 수수료마저 크게 인상하면서 수많은 외식 자영업자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자영업자 연체율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오랜 시간 안에서부터 곪아온 자영업 위기가 터져 나오는 모습이다.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이 ‘회전문 창업’이다. 장사가 안돼 폐업한 자영업자가 또다시 비슷한 업종으로 재창업하는 구조다. 특별한 다른 선택지가 없다 보니 다시금 자영업 시장에 내몰리는 이들이 많다. 별다른 변화도 없이 똑같은 가게를 다시 차리고 또다시 망한다. 늘어나는 것이라곤 빚뿐이다.

전문가들은 “위기일수록 회전문 창업을 멈추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스스로 사업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매경이코노미

한국 자영업이 역대급 위기를 맞이했다. 각종 지표가 최악이다. 폐업자 수는 크게 늘고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 도심에도 높은 공실률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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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진구에 사는 박경호 씨(가명)는 최근 5년 넘게 운영해오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폐업하기로 했다. 매출은 점점 줄어드는데 임대료·인건비 같은 고정비가 늘어나면서 월 적자가 지속되고 있던 참이다. 코로나 팬데믹에도 어떻게든 지켜온 매장이지만 더 이상은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커피 전문점으로 한 번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가 준비하는 다음 창업 아이템은 또 커피 전문점이다. 인근에 작은 개인 카페를 열어 생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폐업과 재창업에 필요한 돈은 신용 대출로 감당하기로 했다. 박 씨는 “스스로도 불안하다”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그는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취업은커녕 다른 업종 재창업도 자신이 없다. 규모를 줄여 개인 브랜드로 커피 전문점을 해보려고 한다”며 “먹고살기 위해 휴일도 없이 일하지만 늘어나는 건 빚뿐이다. 물가도 많이 오르고 경제 상황이 너무 안 좋은 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한국 자영업이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언제는 위기가 아니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요즘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라고 할 만큼 상황이 안 좋다. 폐업자는 급증했고 개인 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계속 높아져만 간다.

그런데도 창업은 계속된다. 과거보단 조금 낮아졌다고 하지만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여전히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창업 → 폐업 → 재창업을 반복하는 ‘회전문 창업’이 굳어져버린 탓이다.

폐업 자영업자가 체질 개선 없이 또다시 창업에 나서다 보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진다.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빚이 더 쌓이는 자영업자가 많다. 당장 대출 상환과 생계유지를 위해, 잘 안 될 줄 알면서도 또다시 창업에 나서는 아이러니다. ‘할 수 있는 게 장사밖에 없다’는 인식이 회전문 창업을 더욱 고착화시킨다.

자영업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도 올해 7월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자영업·소상공인 위기 극복을 내걸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약 25조원 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이지만 자영업 체질 개선을 위한 지원 노력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정책자금 상환 기간 연장 등 금융 지원이 14조원, 누적된 채무 조정을 위해 쓰이는 재원인 새출발기금에 약 10조원이 추가 투입된다. 당장 채무에 허덕이는 자영업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산소호흡기만 붙여준다고 될 일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단순히 빚을 미뤄주는 걸 넘어, 회전문 쳇바퀴에 갇힌 자영업자를 구출할 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왜 회전문에서 못 빠져나올까

진입장벽 낮다 보니 ‘묻지마 창업’

자영업자가 회전문 창업 굴레에 갇히게 되는 이유는 크게 4가지다.

첫째는 은퇴 후 무작정 창업이다. 실상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재교육 시장이 미미한 상황에서 취업이 쉽지 않아 하릴없이 자영업 시장으로 내몰린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다. 2022년 기준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3.5%에 달한다. 미국(6.6%), 독일(8.7%), 일본(9.6%) 등 다른 주요국과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팬데믹을 거치면서도 자영업자는 더 늘었다. 2021년 551만명이었던 자영업자는 지난해 569만명까지 증가했다.

특히 은퇴자가 많은 50대 이상에서 창업이 계속 늘어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국내 자영업자 중 50세 이상 ‘시니어 사장님’ 비중은 2003년 37.8%에서 2023년 63.7%로 2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50대 이상 비율은 19.7%에서 27.3%로, 60대 이상 비율은 18.1%에서 36.4%까지 두 배 이상 치솟았다.

문제는 이들이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자영업 시장에 뛰어든다는 점. 지금껏 장사라고는 해본 적 없는 직장인이 퇴직금만 믿고 창업에 나서는 형국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음식·숙박 업종 자영업자가 창업 전 준비 기간은 평균 8.4개월이다. “현장에서 실제 체감하는 창업 준비 기간은 훨씬 더 적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본사에서 진행하는 3~4일짜리 교육이 전부인 예비 사장님이 많다”며 “한 번도 자기 사업을 해보지 못한 이들이 자영업을 쉽게 생각하고 거금을 투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둘째, 너무 낮은 창업 진입장벽이다. 전 세계 최고 자영업자 비중이 방증하듯 한국은 창업이 쉬운 나라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워낙 잘돼 있고 물류·배달 등 인프라도 뛰어나다. 가맹비를 비롯한 초기 창업 비용만 감당하면 가맹본사가 알아서 가게를 차려주는 식이다.

특정 업종으로 쏠림 현상도 창업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음식점·커피 전문점·주점 등 요식업은 특히 창업 문턱이 낮다. 저렴한 창업 비용이 원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음식점 평균 창업 비용은 9110만원이다. 배달 전문점은 그보다 훨씬 낮은 약 3000만원으로 추산된다. 상대적으로 많은 자본과 인적 자원, 노하우가 필요한 기술 기반 창업보다는 외식 업종 비율이 훨씬 큰 이유다. 업종 편중이 나타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생존은 힘겨워진다.

셋째, 늘어나는 채무다.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이 크지 않다 보니 빚으로 연명하는 이가 많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계형 자영업자다.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연매출 5000만원 미만 소상공인 비중은 2019년 28.1%에서 2022년 34.6%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1억원 이상 매장은 50.6%에서 45.3%로 줄었다.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생계형 자영업자 채무는 더욱 늘어난다. 올해 1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은 1055조9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연체율이다. 2022년 2분기 0.5%였던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 1.52%까지 늘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 가계대출 연체율을 훌쩍 웃돌고 있다.

문제는 빚이 늘어날수록 폐업을 결정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서울 중구에서 돈가스 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빚이 계속 늘어나지만 쉽게 자영업을 그만두기 어렵다. 소상공인 자격이라도 유지해야 그나마 지원금과 각종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폐업에도 철거비나 위약금 같은 돈이 드는 만큼 쉽게 결정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서기 어려운 사회 구조다. 재취업은 막막하고 업종 전환도 두렵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공포가 동종 업종 회전문 창업으로 다시 자영업자를 이끈다. 지난해 통계청이 실시한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중 같은 업종으로 재창업한 비율이 전체 20.6%에 달한다. 폐업을 하고도 다른 선택을 못한다.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폐업 후 재창업하거나 재창업을 준비 중인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전체 66.5%가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스마트경제학과 교수는 “호봉제 중심의 한국 기업은 직무와 상관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가 올라간다. 퇴사 후 마땅히 직장을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새 회사에 가도 급여가 급격히 낮아지는 구조”라며 “경직된 기업 고용 문화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재취업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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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문 창업 멈추려면 어떻게

공부하는 사장님과 그를 돕는 정부

회전문 창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쉽지 않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자영업자와 정부, 양측 노력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창업을 준비 중인 예비 자영업자는 물론 현재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도 통용되는 얘기다. 박진용 건국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준비 기간을 늘려야 한다. 창업 교육 프로그램 이수와 견습 창업 같은 준비 기간을 거친 이들에게 ‘이제 자영업을 해도 괜찮습니다’라는 인증을 부여하는 식의 역량 진단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40대 이상 예비 창업자는 창업 희망 업종에서 1년 이상 직원으로 근무 경험을 쌓기를 권한다. 비교적 어린 2030세대라면 개인적으로 수십 곳 이상 가게에서 단기 알바를 뛰어보고 창업해야 실패 확률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고 본다”는 강혁주 평안도식당 대표 말도 같은 맥락이다.

성공한 선배 자영업자로부터 ‘멘토링’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영업 고수 멘토링 플랫폼 ‘창톡’을 비롯해 선배 창업가가 매출 향상을 위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 여럿 생겼다. 노승욱 창톡 대표는 “성공한 선배 창업가를 만나 잠깐이라도 상담을 꼭 받아보는 문화가 필요하다. 현장 경험과 실전 노하우를 지닌 장사고수는 창업 아이템부터 입지, 예상 매출, 마케팅 전략 등 다방면에서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며 “한 명만 만나기보다는 3명 이상 교차 검증을 통해 진짜 내게 맞는 멘토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재기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소진공)에서 운영하는 ‘희망리턴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업종 전환·재창업·재취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재기에 필요한 여러 교육 프로그램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성공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김나현 감성냉장고 대표는 지난 6년 동안 운영하던 편의점을 폐업하고 키오스크를 도입한 무인 운영 아이스크림·과자 할인점을 열어 재기에 성공했다. 정부 지원금으로 매장을 얻고 그동안 생계에 치여 할 수 없었던 부동산 임장과 자기계발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간 운영해왔던 공예 공방을 접을 위기에 처했던 김선영 한국레인보우선영 대표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3D 프린팅 교육을 받고 재기한 경우다.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수업으로 공방에 3D 프린팅 기술과 AI를 도입해 원재료 가격을 낮추고 차별화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아예 폐업 후 재취업에 나서는 것도 길이 될 수 있다. 현재 안산도시공사에서 근무 중인 박준기 씨는 2017년부터 6년 동안 요식업에 종사한 사장님이었다. 소진공 직업 전환 교육을 받으면서 공기업 취업에 필요한 자격과 이력서 쓰는 법을 공부, 공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국가 지원금과 교육 수당으로 재취업 소득 공백도 메꿀 수 있었다.

정부도 단순 금융 지원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영업자 교육 프로그램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재기 지원 정책에 업종 체험 등 실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혁주 대표는 “정부 차원의 자영업자 육성 교육 기관이 절실하다. 실전 스킬부터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정규화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장사 학교’를 만든다면 훨씬 더 많은 자영업자가 폐업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4호 (2024.08.28~2024.09.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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