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 ‘달님 송편’에서 고양이들이 달을 둘러싸고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키즈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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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고 아침 강가에 뽀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하늘까지 높아지면 봄부터 여름까지 키운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이렇게 거둔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차례상을 차리고 온 식구가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는 추석이 왔다. 올 한가위에는 어린이와 함께 추석을 다룬 책을 읽어보자.
추석이나 설날 혹은 단오처럼 특별한 날을 다룬 책은 어린이에게 추억을 만들어준다. 즐겁거나 기쁠 때 가까이에 책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다. 특히 책과 삶을 연결하는 좋은 독서법이기도 하다. 다행히 사실적으로 혹은 판타지로 추석 이야기를 다채롭게 담아낸 어린이책이 여럿 있다. 명절의 풍습이야 시간이 흐르며 변하고 때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책은 그 오래된 이야기를 어린이에게 들려줄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한국적 미감이 고스란히 담긴 이억배의 ‘솔이의 추석 이야기’의 그림. 길벗어린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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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배의 ‘솔이의 추석 이야기’(길벗어린이 펴냄)는 한국 그림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자 한국적 미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림책이다. 고향으로 향하는 ‘민족 대이동’ 풍경을 담은 펼침 세 장면은 고구려 벽화나 조선시대 행렬도를 방불케 한다. 1995년 출간되었으니 얼추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가가 꼼꼼하게 담아둔 장면 덕분에 이제 책은 민속학적 의미까지 더한다. 예컨대 도로 정체에 발이 묶인 귀성객들이 길에서 컵라면을 먹고, 머리를 곱게 쪽 찌어 올린 할머니가 마을 어귀에서 솔이를 기다리는 장면 등이 그렇다. 또 고향 마을의 당산나무, 담장 옆 맨드라미, 제기를 닦고 밤을 치는 모습 등 그 시절이 책을 통해 복원된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는 틀림없이 “왜 새벽부터 버스 터미널에서 줄을 서야 해?” 혹은 “할머니에게 차가 막힌다고 전화하지 그랬어?” 같은 질문을 할지 모른다. 부모 세대가 겪은 추석 이야기를 어린이와 나눌 좋은 기회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에는 도로 정체에 발이 묶인 귀성객들이 길에서 컵라면을 먹는 모습 같은 장면이 담겼다. 길벗어린이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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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꾹꾹 눌러 빚은 송편
시간을 거슬러 올라 농경사회의 추석 풍습을 더 알고 싶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책읽는곰 펴냄)가 좋다. 전통사회의 풍습을 낭랑한 입말로 풀어낸다. 복을 구하는 길상의 의미를 담아 추석빔으로 입던 색동저고리,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대문에 벼 이삭과 조 이삭을 걸어두던 ‘올게심니’, 지붕 위 박을 따다 무친 박나물, 이웃 서당 아이들과 벌이는 가마싸움, 친정 식구와 중간에서 만나던 반보기 등 지금은 잊힌 추석 풍습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송편을 지렛대 삼은 일종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달님 송편’. 키즈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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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추석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송편이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콩, 팥, 밤, 대추 등 소를 넣은 송편을 만드는 일은 즐거운 행사다. 흥미롭게도 최근 출간된 그림책은 송편을 지렛대 삼아 일종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달님 송편’(키즈엠 펴냄)은 신세대 추석 그림책이라 할 만하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고양이가 앞발로 여러번 무언가를 누르는 걸 ‘고양이 꾹꾹이’라고 한다. 고양이 꾹꾹이로부터 시작된 상상은 끝 간 데를 모르고 펼쳐진다. 추석 전날 밤, 마을의 고양이들은 무얼 할까? 혹시 달님을 따다가 꾹꾹 눌러 송편을 만들고, 별을 따다 달님 송편에 기름을 바르지는 않을까? 그림책을 읽고 나면 한가위 둥근달에서 송편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송편을 지렛대 삼은 일종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달님 송편’에서는 ‘달님 송편’이 등장한다. 키즈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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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용궁여행’에서 옛이야기를 해학적으로 재해석해냈던 권민조 역시 송편을 소재로 삼아 환경 문제로까지 문제의식을 넓혀간다. ‘마씨 할머니의 달꿀 송편’(호랑이꿈 펴냄)은 세상을 창조한 마고할미 신화를 빌려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이다. 마치 어린이가 그린 듯 자유분방한 그림과 원색의 색감이 해방감을 느낄 만큼 자유롭다.
마고 할미는 추석 전날 송편을 빚을 준비를 하고 동물 친구를 기다린다. 아무도 오지 않자 할미는 세상에 직접 내려가 농약에 찌든 논, 사라진 갯벌, 썩은 강물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물 친구를 만나고 모두 살려낸다. 마고산으로 돌아간 할미는 동물 친구를 위해 특별 재료를 넣어 송편을 만든다. 이름하여 달꿀 송편. 이번 추석에 어린이가 먹는 송편은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함께 어울려 살자”는 뜻을 담은 마고 할미의 달꿀 송편 되겠다.
옛이야기를 해학적으로 재해석한 ‘마씨 할머니의 달꿀 송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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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도 친구 되는 동심
시골 마을의 가을 정취를 잘 담아낸 두편의 동화 역시 추석 무렵 읽기 좋은 작품이다. 혹시 어린이와 함께 고향에 내려갔다면 한윤섭의 ‘우리 동네 전설은’(창비 펴냄)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어디나 사람이 모여 살면, 슬프고 무섭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난다. 어느 마을이나 버려진 무덤이나 폐가는 있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꼭 사연이 있지 않던가. 이런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전설이 되는 법. 어린이의 시선으로 만난 마을의 전설이 서정적으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이분희의 ‘신통방통 홈쇼핑’(비룡소 펴냄)은 도깨비와 얽힌 전설을 현대적으로 다시 풀어낸 작품이다. 동화의 무대는 ‘독각’마을, 일명 도까비골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참나무가 지천이고 가을이 깊으면 지붕으로 도토리와 상수리가 톡톡 떨어진다. 다시 말해 도깨비가 등장할 완벽한 무대인 셈이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도깨비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어울리는 친구와 같은 존재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친구 명석이나 도깨비와 어울려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통해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능청스러운 전개도 흥미롭다. 두권의 책을 길잡이 삼아 고향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어린이와 함께 나눠도 좋겠다.
옛이야기를 해학적으로 재해석한 ‘마씨 할머니의 달꿀 송편’. 호랑이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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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가족을 만나고, 송편을 빚고, 차례까지 지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뜬다는 한가위의 달구경이다. 천미진의 ‘추석 전날 달밤에’(키즈엠 펴냄)는 송편을 빚으며 소원을 비는 마음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옛 어른들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잘생긴 짝을 만난다”고 했다. 아마도 귀한 송편이니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송편을 빚으며 가족의 건강을 빌고, 송편에 넉넉하게 소를 넣으며 소원을 비는 마음이야 어느 추석이고 같을 테다. 송편을 빚으며 혹은 둥근달을 보며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소원을 비는 마음,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이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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