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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당찬 옹녀·조선시대 펍… 국립극장 후끈 달구는 ‘조선 19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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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른 ‘어른들의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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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령과 이야기 금지령이 내려진 시대, 모든 금기를 깨뜨리는 게 허용되는 금란방에선 조선 최고 인기 이야기꾼의 극중극과 다른 이야기들이 아슬아슬 수위를 넘나들며 얽혀든다. 창작가무극 '금란방'.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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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나라의 기강을 잡기 위해 백성들에게 금욕을 명한다! 특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술, 헛된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책을 금한다!”

“전하의 어명”을 발표하는 배우들을 향해 관객들이 “우~!” 야유를 보낸다.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금란방’이 공연 중인 남산 국립극장 하늘극장 앞. 매 공연 시작 약 30분쯤 전이면 배우들이 극장 앞에 나와 관객들과 신나게 대화하는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금란방’의 시대 배경은 조선 영조의 금주령이나 정조의 문체반정을 연상시킨다. 몽둥이를 든 단속반 관리들이 “술 먹지 마세요!” 외치며 뛰어다니는데, 세련된 현대적 디자인의 한복 차림 배우들은 ‘금란주’라며 관객들에게 달콤한 주스를 따라 준다. 그 곁에선 “집안이 정해준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당돌한 딸 뒤를 지체 높은 사대부 양반이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다. 한참을 웃고 즐기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클럽처럼 화려한 조명과 EDM(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음악에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하면, ‘금란방’ 관람 준비 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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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 점 찍고 옹녀'.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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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비슷한 시간 국립극장의 또 다른 극장인 달오름극장에선 돈이 있어도 표를 구할 수 없는 진귀한 매진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배꼽 잡는 연기와 농익은 소리가 만개한 우리 국립창극단 대표 레퍼토리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하 ‘옹녀’) 공연. 프랑스 파리 등 유럽에서도 극찬받으며 우리 전통 해학이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걸 증명한 ‘진짜 19금(禁) 창극’이 10년 만에 돌아왔다. 우리 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 고선웅이 직접 극작과 연출을 맡은 작품. 소리는 실전(失傳)되고 사설만 남아 전해지던 판소리 ‘변강쇠전’을 배꼽 잡는 성적인 농담이 이어지는 현대적 창극으로 변신시켰다. 변강쇠는 낭만은 있지만 일엔 젬병에다 노름과 투전에 빠져 제 식구 건사도 못 하는 남자. 옹녀는 오히려 타고난 ‘남편 죽일 팔자’를 제 힘으로 극복해 나가며, 제 운명뿐 아니라 초자연적 힘에도 당당히 맞서 싸운다. 성인용 농담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고 극적 재미와 균형도 잘 맞춘 덕에 객석은 시종일관 폭소의 도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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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검증된 창작진이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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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 점 찍고 옹녀'.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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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이미 검증을 마친 창작진은 두 공연의 공통점이다. ‘옹녀’엔 고선웅 특유의 걸진 해학과 찰진 말맛이 차고 넘친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 우리 전통 음악과 소리에 빠져 국립창극단 단원을 거친 국내 최고 작창가 한승석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빚어낸 소리도 창극단 소리꾼 배우들의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금란방’의 작사와 극작은 시인 백석(1912~1996) 이야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차범석희곡상을 받은 박해림 작가. 인이 박인 타고난 문학적 서정성은 그대로, ‘금란방’에선 통통 튀는 개성도 돋보인다. 청나라 순회 공연을 마치고 온 장안의 최고 인기 이야기꾼과 그가 풀어내는 극중극, 백성들에겐 술과 이야기를 금지해 놓고 궁궐 깊은 데서 혼자 술과 소설책을 즐기는 왕 등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이 잘 꼬인 색실처럼 엇갈린다. 작곡은 ‘라흐마니노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등 묵직한 뮤지컬을 만들어온 이진욱 음악감독. 2017년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곡·음악상을 받았고 피아니스트로도 활동 중인 실력파다. EDM과 클래식, 전통 가락을 넘나드는 음악은 ‘금란방’이 가진 독특한 매력의 핵심이다.

◇여기선 관객도 공연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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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무극 '금란방'.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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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방’의 김태형은 우리 공연계 가장 영민한 연출가 중 한 명. 대극장 뮤지컬 ‘멤피스’로 올해 한국뮤지컬어워즈 연출상을 받았다. 관객 참여형 연출에도 이미 도가 텄다. 극장 앞 사전 공연으로 극 속에 이미 빠져든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도 익숙한 음악에 맞춰 객석 앞자리의 LED 조명 잔을 들어 올려 배우들과 함께 건배를 하거나, 극중극 주인공이 누구와 이어지도록 끝맺을 것인가를 놓고 엽전을 거는 투표에 참여하기도 한다.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아슬아슬 ‘선’을 넘지 않는 잘 계산된 절제 역시 이 공연의 뛰어난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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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금기도 없는 '금란방'의 무대 위엔 EDM, 클래식, 전통 가락을 넘나드는 춤과 노래가 화려하다.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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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녀’의 객석에 앉으면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에 가장 놀란다. ‘판소리 고인물’ 관객이 아니어도 ‘얼쑤’ ‘좋다’ 같은 추임새가 절로 나오도록 잘 짜인 이야기와 소리의 매력은 당연히도 일등 공신. 여기에 더해, 악단이 앉은 오케스트라 피트 가운데로 객석 바로 앞까지 다가서도록 만들어진 돌출 무대도 큰 몫을 한다. 500여 석 작지 않은 극장인데도, 관객은 코앞까지 다가와 소리하고 연기하는 듯 소리꾼 배우들을 가깝게 느낀다.

간결하지만 힘 있는 메시지도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신분의 한계나 운명의 속박 따위 떨쳐버리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라고 말한다.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해 가라고 관객을 북돋우는 해피엔딩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15일까지, 2만~5만원. ‘금란방’은 28일까지 5만~7만원.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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