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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고급주택 합법적 절세 가능케 한 낡은 법의 빈틈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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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구 세무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멋진 고급주택에 사는 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국내 최고급 주거지 중 한 곳을 구입할 자금을 줄 테니 세금만 부담하라고 한다면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정답은 'NO'다. 세금이 한두푼이 아니어서다. 이 때문인지 고급주택은 '크기'를 절묘하게 줄이는 방식으로 세금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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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시그니엘레지던스를 아는가. 국내 최고급 주거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인데,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롯데월드타워 42~71층에 위치한 오피스텔이다. 국내 유명 연예인을 비롯한 인플루언서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최고급 주택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면적별로 보면 공급면적 기준 350㎡(약 106평)부터 2130㎡(약 644평)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657㎡(약 198평) 이하다. 가격대를 보면 600㎡대가 88억~100억원, 500㎡대가 61억~88억원, 400㎡대가 53억~80억원으로 형성돼 있다.

2017년 준공 이후 현재까지 있었던 거래 중에서 100억원을 초과한 거래는 단 1건이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3일 68층 1228㎡(약 371평ㆍ전용면적 483.96㎡)의 매물이 240억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240억원을 그냥 줄 테니 1228㎡의 오피스텔을 구입해 세금만 부담하고 들어가서 살아보라"는 제안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기분 좋은 제안임에 틀림없지만 과연 몇명이나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금 때문이다.

그럼 세금을 한번 따져보자. 우선 기본적으로 주거용으로 취득할 경우 취득세(4.0%ㆍ주거용 오피스텔 취득세율)와 지방교육세(0.4%), 농어촌특별세(1.0%) 등 구입 가격의 5.4%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240억원짜리 거래에 이 세율을 적용하면 총 12억9600만원의 세금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매입자가 실제로 지출하는 돈은 240억원이 아니라 252억9600만원이란 얘기다.

세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용면적을 기준으로 면적이 245㎡(약 74평)를 넘느냐 넘지 않느냐를 한번 더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세법(지방세법 제13조 제5항 제3호과 동법 시행령 제28조 제4항 제4호)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경우 전용면적이 245㎡(복층인 경우 274㎡)를 초과하면 고급주택으로 간주해 높은 취득세를 매기기 때문이다. 고급주택에 해당한다면 취득세율은 4.0%에 8.0%를 더해 총 12.0%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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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엘레지던스의 경우 타입(A~G타입 존재)에 따라 전용면적이 다르지만, 공급면적이 626㎡ 이상이면 전용면적이 245㎡를 초과한다. 따라서 똑같은 시그니엘레지던스라도 공급면적이 626㎡ 이상이면 더 비싼 세금을 내고 취득해야 한다.

고급주택을 사치재로 판단해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거다. 240억원짜리 시그니엘레지던스는 당연히 626㎡ 이상이고, 따라서 실제 구입비는 272억1600만원이 된다. 그러니까 세금만 32억1600만원인 셈이다.

물론 세금을 약간 줄여볼 여지는 있다. 법적으로 시그니엘레지던스의 건축물 용도가 주택이 아닌 오피스텔이기 때문이다. 신고를 주거용으로 할지 업무용으로 할지 선택할 수 있는데 만약 용도를 주거용이 아닌 업무용으로 신고한다면 농어촌특별세율이 1.0%에서 0.2%로 줄어든다. 취득세율과 지방교육세율은 각각 4.0%와 0.4%로 동일하다. 주거용이 아니니 고급주택 세율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때 세금은 11억400만원이다.

다만 어떤 용도로 신고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는 만큼 징수자인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사용자의 신고만을 신뢰하기 어렵다. 당연히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지 구청에서 직접 실사를 나올 확률이 높다.

실제로 240억원짜리 거래가 이뤄졌을 때에도 송파구청 측은 "주거용으로 사용하면서도 세금을 줄이기 위해 업무용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실사를 나갈 것"이라면서 "실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고급주택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세금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고급주택 중에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다른 최고급 주택으로 꼽히는 한남더힐, 나인원한남, 갤러리아포레 등에서 단층 기준으로 전용면적 245㎡를 초과하는 주택 타입이 없는 건 대표적인 사례다. 복층의 경우에도 274㎡보다 약간 작게 지음으로써 고급주택 취득세의 중과를 피했다.

예컨대 장동건ㆍ고소영 부부와 유명 입시학원 강사 현우진씨, 골프선수 박인비씨 등이 사는 것으로 유명한 강남구 청담동의 PH129(더펜트하우스 청담)도 마찬가지다. PH129의 복층 면적은 273.96㎡로 고급주택 면적 기준인 274㎡보다 불과 0.04㎡가 작다. 이는 A4 용지 한장보다도 작은 면적이다. 덕분에 법에서 정한 고급주택의 기준에는 속하지 않는 고급주택이면서 거액의 세금은 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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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자체가 이런 행태의 불합리성을 따져 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2020년 8월 PH129 준공 당시 시행사는 복층으로 이뤄진 273.96㎡ 27채에 일반주택 취득세 기준인 3%를 적용해서 세금을 납부했다. 274㎡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강남구청은 시행사가 내부 발코니를 전용면적에 포함하지 않는 방식으로 취득세를 줄인 것으로 판단했다. 현행법은 외부로 돌출된 발코니만 전용면적에서 제외하고 있어서다. 이를 근거로 강남구청은 해당 건축물의 취득세를 고급주택에 적용하는 세율(일반 세율의 3배)로 다시 계산해 시행사에 부과했다.

결국 시행사는 강남구청의 행정에 불복했고, 조세심판원은 지난 7월 시행사의 손을 들어줬다. 강남구청에서 인허가를 해줄 당시 이미 내부 발코니를 전용면적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고급주택의 기준을 면적이 아닌 공시가격 등 가격을 기준으로 나눠야 합당하지 않으냐"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고급주택이 일반주택과 같은 세율을 부담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거다. 지난 3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시ㆍ도별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위 10위 단지'에 따르면 전용면적 407.71㎡인 PH129의 공시가격은 164억원으로 올해 전국 공동주택 중 가장 높다.

홍석구 세무사 | 더스쿠프

seokgu1026@jungyul.co.kr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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