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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부작용 없이 피부가 투명해졌다…식용 색소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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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식용 색소의 투명 효과를 사람한테도 쓸 수 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인간 손의 그림. 현재 이 효과는 생쥐 실험에서만 확인됐다. 미국국립과학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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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료계에서 사람의 몸 속을 들여다볼 때 사용하는 기술로는 엑스레이, 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 등이 있다.



값비싼 장비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만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거나 방사선에 노출되는 등의 부작용도 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장비와 그에 따른 불편, 위험 없이도 피부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발견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보습크림처럼 피부에 바르기만 하면 아무런 부작용 없이 피부 안쪽을 드러내 보여주는 투명 염료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찾아낸 염료는 식품에서 많이 쓰는 식용 색소 타르트라진(황색 4호 또는 E102)이다. 타르트라진은 치토스, 도리토스 같은 과자나 음료, 사탕 등에서 노란색을 내는 염료다.



연구진은 이 색소 용액을 생쥐 머리와 배, 다리에 문지르자 피부가 투명해지면서 뇌 표면 혈관과 장 수축 운동, 심장 박동, 근육섬유가 그대로 드러났으며, 용액을 씻어내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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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효과 실험에 쓰인 오렌지색 염료 타르트라진 용액. 댈러스 텍사스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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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물질의 빛 굴절률 일치시킨 효과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피부가 일시 투명해진 것은 빛의 굴절률을 이용한 덕분이다.



손에 손전등을 비추면 손은 환하게 빛나지만 그 아래 혈관이나 뼈, 근육은 볼 수 없다. 피부 조직이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피부 조직이 특성이 다른 여러 물질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에는 빛의 굴절률이 있다. 굴절률이란 진공 상태에서의 빛 속도와 물질 내에서의 빛 속도의 비율을 가리킨다. 빛은 진공 상태에서 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모든 물질의 굴절률은 1보다 높다. 예컨대 물 속에선 빛이 진공에서보다 4분의 3 속도로 통과한다. 따라서 물의 빛 굴절률은 1.33이다. 공기의 굴절률은 진공 상태보다 아주 약간 높은 1.0003이다. 빛은 굴절률이 다른 물질을 통과할 때 방향이 바뀐다. 안경 렌즈가 빛을 망막에 초점 맞출 수 있는 건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은 굴절률이 약 1.4로 물보다 높다. 따라서 세포들은 모든 방향으로 빛을 산란시키는 렌즈라고 볼 수 있다. 이론적으로 지질을 제거하고 물만 남겨 놓으면 빛이 산란되지 않고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은 세포막을 파괴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물에는 적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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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의 두피(위)와 배(가운데), 다리에 각각 타르트라진 색소 용액을 바르자 뇌의 뉴런과 위장관, 근육섬유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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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지질을 제거하는 대신 시료에 포함된 물의 굴절률을 지질을 포함한 여러 단백질의 굴절률과 일치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연구진은 몇가지 식용 색소 후보 중 타르트라진이 빛을 적당한 속도로 느리게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타르트라진은 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식용 색소다. 이는 생체 조직에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걸 시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물에 색을 추가하면 투명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타르트라진은 기본적으로 청색광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빛의 속도를 느리게 해서 물과 지질 간의 굴절률 불일치를 줄여준다. 이에 따라 빨간색과 오렌지색이 물질을 통과하면서 투명 효과를 낸다. 연구를 이끈 궈상 홍 교수(재료공학)는 “물과 지질은 화학적으로 다른 물질이지만 빛은 이를 구별하지 못한 채 통과해 버린다”고 말했다.



연구진이 생쥐의 몸에 난 털을 깎은 뒤 피부에 타르트라진 용액을 바르자 오렌지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만들어지면서 생쥐의 심장 박동과 위장관이 음식물을 밀어내는 모습이 생생해 드러났다. 두피에 바른 염료는 뇌 가장 바깥쪽 혈관을 보여줬다. 그동안 내시경을 통해서만 봤던 다리의 근육섬유도 볼 수 있었다. 연구진은 투명 효과는 몇분 후에 나타난다고 밝혔다.



그런 다음 염료를 물로 씻어내자 피부는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피부로 스며든 염료는 소변을 통해 배출됐다. 연구진은 생쥐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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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트라진 색소 분자가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스탠퍼드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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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확인되면 의료 검사에 유용할 듯





한계도 확인됐다. 우선 이 염료의 투명 효과를 통해 볼 수 있는 건 피부 아래 3mm까지만이다. 따라서 피부가 두꺼우면 투명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또 굴절률이 다른 혈액의 헤모글로빈과 다른 단백질에 대해선 투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연구진은 쥐보다 약 10배 더 두꺼운 피부를 가진 인간에게는 아직 실험해 보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사람 피부를 관통하는 데 필요한 염료의 종류나 양은 알아내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도쿄대 우에다 히로키 교수(생물학)는 사이언스에 “이 분야에서는 일종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사람한테 사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생물학 연구용으로는 당장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안전성 문제가 해결돼 사람한테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기존의 엑스레이나 시티 촬영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조직을 떼내지 않고도 흑색종 검사가 가능하고, 혈관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돼 혈액 채취에 따르는 불편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문신을 한 경우, 피부 아래 침착돼 있는 색소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어 레이저빔을 이용한 문신 제거에도 유용할 것으로 본다.



논문 제1저자인 지하오 우 박사(현 댈러스 텍사스대 교수)는 “타르트라진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실험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논문 정보



DOI: 10.1126/science.adm6869Achieving optical transparency in live animals with absorbing molecule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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