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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일사일언] 아기용품엔 왜 ‘엄마’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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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 카페’나 ‘노키즈 레스토랑’을 보면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갈 때면 항상 조심하게 된다. 엄마들 사이에선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혹여 불편을 끼치면 어쩌나, 공공장소에서 이른바 ‘맘충’으로 간주되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나와 아내도 아이가 태어난 직후 한동안 그런 걱정을 했다.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 정도 자라 외출을 하게 되면서 이런 두려움이 과장되어 있었음을 알게 됐다.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타면 선뜻 자리를 양보해 주고, 출입구에서 발 빠르게 문을 열어주는 분이 많다. 특히 어르신들은 “아가야!” 환하게 웃으며 반가워해 주신다. 아이를 키울 때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리는 듯 감상에 젖은 표정을 짓는 분도 많다. 이런 뜻밖의 환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예상치 못했던 기쁨이다.

정작 놀랐던 건 따로 있다. 예컨대 아기 기저귀 갈이대가 대부분 여자 화장실에만 있다는 사실. 딸과 둘이 외출했다가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게 된다. 부부가 함께 외출해도 결국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사람은 부득이하게 아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은 남녀가 모두 일하고, 육아 부담도 함께 나누는 시대다. 하지만 제도와 인식은 아직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집안에 나날이 쌓여가는 유아용품에는 절반 이상에 ‘mother’ 혹은 ‘mom’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엄마’만이 아닌데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육아 스트레스와 함께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까’ 매번 되돌아본다고 한다. 반면 아빠는 육아 스트레스는 느끼지만 엄마들처럼 ‘혹시 내가 나쁜 아빠일까’ 같은 죄책감까지는 느끼지 않는 듯하다. 이 역시 사회가 아기를 돌보는 것을 암묵적으로 엄마의 책임이라고 끊임없이 말하기 때문 아닐까.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면 ‘도와주는’ 좋은 아빠라는 칭찬을 받는다. 이런 인식은 오히려 아빠들이 육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아이만 돌보는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육아에 대한 인식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소설 ‘마지막 왕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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