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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텔레그램 성범죄, 시민의 디지털 소통 규범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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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 휴대폰 사용자가 텔레그램 메신저를 보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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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착취물 유포로 논란에 휩싸였다. 텔레그램은 프라이버시 보호와 정치권력으로부터 이용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비전으로 내세운다. 그러려면 미디어를 통제하려는 국가권력에 맞서 비영리성과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실제 텔레그램은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광고 수익을 벌어들이지 않고, 창업자의 자금 출연이나 기부, 유료 회원제 등으로 유지돼왔다. 종단 간 암호화로 강력한 익명성이 보장되며, 표적 광고도 없다. 이런 특성은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힘을 모으도록 돕는다. 그 덕분에 텔레그램은 인권침해에 대한 반발이나 반정부 운동, 표현의 자유, 노동권을 위한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홍콩 민주화 항쟁이 있었던 2019년에도 텔레그램이 널리 사용됐다. 당시 한 비행기 승무원이 페이스북 계정에 시위 관련 게시물들을 공유했다가 해고되는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소셜미디어에 대한 공포가 증폭됐다. 그해 한국을 찾은 한 홍콩 활동가는 “노동자들이 해고될까 두려워 ‘좋아요’도 안 누른다”고 증언했다.





텔레그램으로 조직된 민주화 시위





홍콩 시민들은 정부에 맞선 자신들의 행동이 감시 대상이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텔레그램에 그룹채팅방과 채널을 개설해 각종 시위 정보를 공유했다. 경찰은 갖은 수를 쓰며 시위대의 신원을 파악하려 했다. 한 단톡방 운영자의 자택을 기습해 채팅 기록을 압수하기도 했다. 2014년 우리나라의 카카오톡 사찰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당시 많은 활동가는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났다.



텔레그램은 홍콩의 저항 행동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조직하는 통로가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린당(LIHKG)에 시위 아이디어가 올라오면, 그에 공감하는 이들이 텔레그램에 채팅방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토론을 거친 익명의 기획자들은 텔레그램 채널을 만들어 자신들의 계획을 홍보했다. 이를테면 2019년 12월7일 낮 공항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했던 시위는 채팅방에서 핵심 참가자들을 모으고, 토론을 통해 몇 가지 규칙과 목표를 공유했다. “늦은 밤까지 칭마대교 교통에 지장을 끼치는 차량 시위”를 펼친다는 구체적 계획이 이렇게 정해졌다. 이 시기 불복종 시위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도부 없는 운동’이 익명화된 조직화 루트를 찾은 셈이다.



이는 꼭 집회 기획에 국한되지 않는다. 입법회 청사 앞 ‘레넌 벽’(시위 구호가 적힌 벽) 조성, 친정부 상점 불매, 백화점 안에서 ‘홍콩에 영광을’ 떼창 같은 행동들이 이렇게 추진됐다. 텔레그램을 매개 삼아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시민들은 어떻게 하면 실제 도시를 멈출 수 있을지 궁리했고, 자발적으로 업종별 노조를 만들었다. 업종별 노동자들이 모여 그룹채팅방을 만들고 각자의 집회를 기획했다. 가령 2019년 12월 초 500여명의 광고업계 종사자들은 집회와 문화 행사를 열며 일주일간 업무를 거부했다. 사회복지·호텔업 등 50여개 업종에서 이런 시도가 이어졌다. 이듬해 국가보안법 입법으로 집회·시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면서 아득히 먼 이야기가 됐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비영리 메신저가 발휘할 수 있는 순기능이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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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의 디지털 통제는 홍콩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0년 10월, 타이 정부 당국은 민주화 시위대가 사용해온 텔레그램 메시지 앱을 차단하라고 인터넷서비스 업체에 명령했다. 타이 경찰도 텔레그램 측에 민주화운동 관련 채팅방의 폐쇄를 지시했다. 왜 국가가 나서서 텔레그램을 막으려 했을까? 텔레그램이 시민들이 단기간에 시위를 조직하는 데 유용하고 보안성이 좋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 역시 디지털 감시를 강화하고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을 강하게 통제했다. 통신사업자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고, 방송법 개정을 통해 검열 권한을 확대한 것이다. 시민불복종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때 검열과 통제는 무시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운동이 침체되면서 사람들은 긴 침묵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텔레그램에서는 불복종운동과 관련된 소식들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는 항쟁이 3년 넘게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 중국에서도 텔레그램은 사회비판적인 목소리가 숨통을 틔우고 발화되는 공간이다.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인 사회운동 영역의 채팅방이나 채널들이 즐비하다.





사회운동의 온라인 활용은 여전히 중요





텔레그램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검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기 전인 지난 8월19일, 한국에서는 여성의 얼굴을 알몸 사진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이미지가 텔레그램 단톡방을 통해 유포됐다는 끔찍한 뉴스가 보도됐다.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텔레그램 대변인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긴급 삭제 요청한 성범죄 영상물을 “모두 삭제했다”며 “약관 위반으로 신고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삭제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삭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딥페이크 영상의 유포는 기술적 문제이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 대응, 규범을 상실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비뚤어진 집단의식에서 기인한다. 우리 사회에 드러나지 않게 존재해온 문제가 권력이 미치지 않는 루트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를 근절하려면 교육과 제도, 피해자 보호, 공동체의 형성과 성폭력적 문화의 일소 등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 권력의 감시·통제만 강화하거나, 사회운동이 온라인 소통으로부터 더 거리를 두는 결론을 내선 안 된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디지털 소통은 공동체가 ‘대항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권력관계를 바꾸는 데 기여하며, 매스미디어가 양산하는 국가주의 서사에 맞선 ‘대항 서사’를 만들 수 있다.



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에 대한 정치권력의 제재나 사용 자체에 대한 금기시는 독립적 소통 수단의 상실을 낳는다. 권력에 의한 통제가 강해지면 표현의 자유는 침해되고, 이는 권력에 맞선 민주적 통제의 역량 발휘를 제한할 뿐이다.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성폭력적 콘텐츠를 제재할 국가권력 바깥의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6일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집회’와 같은 행동에 함께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들은 가해자 처벌만이 아니라, 시민에 의한 디지털 소통 규범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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