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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태어나 보니 선진국’을 만든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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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1위, 자동차 3위, 군사력 5위의 명실상부한 선진국

기적 만든 건 민주화 세력이 아닌 자기 일 매진한 보통 사람들

AI 대전환 성공하려면 개도국 시절 같은 정치권력 다툼 중단을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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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예사롭지 않다. K팝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이야기는 식상할 정도다. 거기에 더해 K드라마, K웹툰, K무비 등이 인기를 누리더니 이제는 K푸드까지 팬덤이 폭발 중이다.

문화적 팬덤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 전투기, 탱크, 자주포, 미사일을 사겠다는 나라들이 줄을 선다. 체코는 우리에게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맡겼다. 첨단 무기나 원전은 원래 선진국이 휩쓸던 시장이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자국민을 보호하는 첨단 무기를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사는 나라는 없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이 절대 중요한 원전도 개도국에 맡기는 걸 놔둘 선진국 국민은 없다.

노르웨이·핀란드가 우리 K9 자주포를 사고, 폴란드가 우리 탱크와 전투기를 구매한 건 유럽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다는 확실한 시그널이다. 이들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지배하던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의 일원인 국가들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들에게 전쟁고아의 나라, 보잘것없는 개도국이었던 코리아가 어느새 이렇게 선진국으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에 올라온 대한민국 군사력 순위는 세계 5위, 강대국 순위는 세계 6위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세계 10대 강대국 순위에 올라온 신흥국은 오직 우리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믿기 힘든 기적을 이끌어낸 진짜 영웅일까.

일단 자기들이 한 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만든 주역이라며 연금을 받겠다는 사람들이다. 민주화를 달성한 건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이나 원전 산업, 방위 산업을 만든 건 아니다. 그렇다면 반도체 세계 1위를 만든 건 누가 했을까? 2년간 반도체 불황으로 세수 줄어든 게 연 60조원이라고 한다. 1년 국가 예산의 10%나 된다. 그동안 경기도 나빠지고 나라 살림도 어려워졌다. 역설적으로 적자가 나니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자동차 산업도 세계 3위다. 현대·기아차가 토요타, 폴크스바겐에 이어 매출, 영업이익 규모에서 2년 연속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영업이익으로 폴크스바겐을 넘어설 기세다. 조선은 중국과 매출 규모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지만 기술력만큼은 압도적 세계 1위다. 미국 군함 시장까지 넘보는 중이다. 이런 제조업의 탄탄한 기반 위에 전투기 만드는 방위산업까지 꽃피기 시작한 셈이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의 28%를 차지하고 경제의 반석을 만든 제조업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무도 공치사하는 이가 없다. 제조업 연금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사람도 없다. 정주영, 이병철, 이건희 같은 기업가들이 깃발을 세운 건 맞지만 누가 뭐래도 이 기적을 현실로 만든 건 지난 30년간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해온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다. 대기업 현장에서, 중소기업 현장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일본도 독일도 해볼 만하니 따라잡자고 땀 흘린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든 대한민국은 지난 120년 현대 인류사의 유일한 기적이 되었다. 세계 10대 강대국 중 우리나라를 빼면 모두 1차 세계대전 주요 참전국들이니까.

디지털 문명 시대는 광고하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는 TV 광고 하나 없이 테슬라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는데, 단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업을 소개하고 신제품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의 말대로 광고는 ‘차를 타본 고객들이 유튜브에 스스로 올리는 것이 진짜’인 시대다.

유럽의 시민들이 우리 전투기를 사고, 원전을 사는 것은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지한다는 뜻이다. 폴란드, 노르웨이 국민에게 TV로 광고 한번 안 하고 만든 팬덤 덕분이다. 문화의 초일류화에 집착했던 콘텐츠 전문가들과 제조의 초일류화에 집착했던 우리 엔지니어들이 힘을 모아 만든 기적의 성과다. 첨단 산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64국을 평가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6위였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디지털 문명은 국경 없는 팬덤 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우리 문화와 우리 상품을 경험한 세계 시민들이 스스로 K팬덤을 만들어 코리아를 선진국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적을 만든 영웅들이 바로 세대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다.

디지털 문명은 다시 또 AI 문명으로 거대한 전환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금융가에서는 2000년 닷컴버블 이후 가장 많은 자본이 하나의 기술 주제로 쏠린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그때 인터넷으로 몰렸던 자본이 지금의 디지털 문명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리고 다시 AI라는 주제로 모인 거대 자본은 이제 AI 문명 시대를 여는 에너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닷컴 버블 시대를 슬기롭게 넘기며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이번 AI 대전환도 잘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서도 AI 관련 포럼이 4개나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어떤 논의도, 정책도 들어보지 못했다. AI 지원은커녕 온통 정치 싸움에다 국민 용돈 지원금 논란으로 시끄럽다. 어느 국회의원도 미래를 위해 AI 산업 지원하자는 특별법 하나 내지 않는다.

디지털 문명 세계는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지하는데 대한민국 정치권은 개도국 시대 권력 다툼에 목을 매고 있다. 기적을 만든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라도 각성해야 한다. 국민이 곧 권력이고 영웅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어차피 미래도 그렇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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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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