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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빌려준 통장이 사기 범죄에 쓰였더라도 이를 예견할 수 없었던 이상 계좌 주인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필요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1일 투자자 A 씨가 계좌 주인 B 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등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B 씨는 고등학교 동창이 정상적으로 금융 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2011년부터 자신의 통장을 빌려줬습니다.
동창은 B 씨의 계좌를 해외선물 거래에 썼는데, 2020∼2021년 A 씨로부터 투자금 1억 2천만 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고 잠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B 씨를 사칭해 반환약정서를 써주기도 했습니다.
A 씨는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계좌주 B 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투자금 1억 2천만 원을 반환하거나, 동창의 사기 범죄를 방조한 책임이 있으므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6천만 원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피고(B 씨)가 동창의 주식 투자 거래가 이뤄지리라는 것을 넘어서 투자 사기와 같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과 이 사건 계좌가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B 씨가 계좌를 빌려주면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은 점, 2021년 말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점이 근거가 됐습니다.
B 씨가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동창은 잠적한 뒤 현재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수사가 중지된 상태입니다.
(사진=연합뉴스)
한성희 기자 che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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