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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보복보다 공존을” 이스라엘의 중심에서 평화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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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0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한겨레’는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 강경란 프로듀서(PD)를 현지 통신원으로 파견해 비극의 현장 소식을 지난 10일에 이어 싣는다. 강 피디는 이라크·발칸반도 등 세계 전역의 분쟁 지역을 누볐고 한국방송(KBS) 5부작 ‘인간의 땅’ 등 10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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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저녁 이스라엘 텔아비브 도심의 카플란 거리에서 시민들이 전쟁 종식, 인질 조기 석방,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퇴진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강경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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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던 지난 25일 새벽, 이스라엘군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가 대규모 미사일 공방전을 벌이며 충돌했다. 그 뒤로도 자잘한 체면치레 보복전이 며칠째 이어졌다. 국제사회와 언론은 이란의 개입과 확전 가능성에 촉각을 세웠지만 정작 이스라엘 현지 분위기는 차분했다.



“오늘 딸아이가 공군 조종사 시험을 보는 날인데 모든 일정이 취소됐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교통정보 서비스 앱 ‘웨이즈’(Waze)의 실시간 정보 업데이트가 (보안을 이유로) 몇 시간 중단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고 안전한 곳에 머물라는 정부의 대피 권고도 해제됐습니다. 상부 갈릴리(레바논과 접경한 갈릴리 지역 북쪽 고원지대) 일부 마을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조용합니다.” 헤즈볼라와 교전 중인 북쪽 국경에서 약 50킬로미터 거리의 갈릴리 호수 인근 키부츠에 사는 친구가 그날 저녁 현지의 분위기를 전해왔다.





팔레스타인 기자에 의도적 총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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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시민들이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전쟁 지속에 항의하면서,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억류한 인질의 석방도 촉구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기의 가운데 ‘다윗의 별’을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로 바꿔 넣고 국기 색깔도 핑크색으로 바꾼 깃발도 보인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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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팔레스타인 영토인 가자지구의 주민들과 하마스에 끌려간 인질들의 가족들이다. 가자지구 휴전과 인질 석방을 목표로 현재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화협상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0월7일,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치조직 하마스는 접경 너머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했다. 1200여명이 사망했고 251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박멸’을 선언하고 대규모 반격을 개시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죠. 그저 가슴 조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인질로 잡혀 있는 옴니 리프시츠가 말했다. 가자지구에 사는 무함마드 발루샤는 좀 더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번 충돌이 가자전쟁을 끝내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헤즈볼라의 공격이 대부분 이스라엘군에 무력화하면서 평화협상에서 하마스가 헤즈볼라 카드를 이용하기 힘들게 됐고, 이스라엘은 확전을 반대하는 국내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 평화협상이 더 속도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발루샤가 조심스럽게 희망을 내비쳤다.



발루샤는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기자다. 아랍에미리트에 본부를 둔 뉴스 채널 ‘알 마슈하드 티브이’에서 일하던 그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시티를 점령한 뒤에도 그곳에 남아 보도를 계속했다. 가자전쟁 발발 70일째.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총에 맞았다. “나는 헬멧도 쓰고 ‘프레스’(보도)라고 적힌 조끼도 입고 있었어요.” 그는 이스라엘군 저격수가 자신이 기자임을 알면서도 표적으로 삼았다고 비난했다. 총알은 허벅지를 관통했다. 주위에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피가 흐르는 다리를 끌고 6시간을 기어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다.



새벽 4시께 친구와 전화 통화가 돼 사정을 알렸지만, 그 역시 이스라엘 군인들을 피해 발루샤의 집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한 친구들이 발루샤를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동네 병원까지 데려갔다. 의사는 부상이 심각해 긴급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힘들고 전문의료진이 있는 알아흘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가자시티 중심부에 있는 알아흘리 병원은 지난해 10월17일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이 안전할 거라 믿고 모여 있던 안뜰에 로켓포탄이 떨어져 500명 가까운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대형 병원 다수를 공격했다. 하마스가 병원 건물을 본부로 사용한다는 이유였다. 가자지구의 보건 시스템은 엉망이 됐고, 발루샤를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발루샤를 태운 구급차는 알아흘리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 탱크가 길을 막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발루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응급구호 자원봉사 ‘회복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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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기자 무함마드 발루샤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한쪽 다리를 다쳐 수술을 받은 뒤 리포트하는 장면. 강경란 제공


2024년 8월12일, 전쟁 발발 310일째. 텔아비브에 머물던 나는 발루샤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지난 20년간 가자지구를 오가며 알게 된 친구들이 많았지만, 전쟁이 터지고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발루샤는 전쟁 중에도 안부를 묻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최근 사진을 보내왔다. 한쪽 다리로 딛고 서서 방송하는 모습이었다. “피격 이후 45일이 지나서야 병원에 갈 수 있었고, 다시 12일 뒤에 첫번째 수술을 받았어요. 이중골절 상태라 수술을 두번 받아야 하는데, 현재는 골절 부위가 움직이지 않도록 외부에서 고정하는 처치만 해 뒀습니다.”



나는 그에게 완전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라도 가자를 벗어나야 한다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남겠다고 했다.



“죽음이 언제 덮칠지 모릅니다. 식량 구하기 힘들고 물가는 살인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게 이 땅을 떠날 정당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안 떠날 겁니다. 이곳에 남아 전쟁이 끝나는 걸 보고 말 겁니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외신의 가자지구 취재를 거의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대부분 발루샤 같은 팔레스타인 언론인에 의해 알려진다. 그만큼 그들의 희생도 크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에서만 최소 116명의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중 5명(레바논 3명, 이스라엘 2명)을 뺀 나머지 전부가 팔레스타인 국적자였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때 납치된 인질 중에는 85살의 요헤베드 리프시츠도 있었다. 그는 가자에서 열엿새를 보낸 뒤 풀려났다. 하지만 함께 납치된 남편 오데드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오데드와 요헤베드는 가자지구와 인접한 유대인 농업공동체 ‘니르오즈 키부츠’에서 살았다. 팔레스타인과 바로 이웃하며 살았던 긴 시간은 ‘공존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들은 ‘로드 투 리커버리’(Road to Recovery, 회복으로 가는 길)라는 비정부단체에서 활동했다. 이 단체는 2006년 유발 로스가 설립했다. 로스는 1993년 동생이 하마스에 납치되어 살해되는 고통을 겪었지만 보복 대신 평화를 선택했다. 응급구호단체를 만들어 생명이 위급한 가자지구의 환자들을 이스라엘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을 한 것이다.



2000년부터 5년가량 이어진 팔레스타인의 2차 인티파다(저항·봉기)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통째로 에워싼 분리장벽이 곳곳에 세워지고, 검문소가 많아지고, 통행도 여의치 않았다. 가자지구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응급환자들, 특히 어린이 환자는 더 나은 의료 시설을 갖춘 이스라엘 쪽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통행증으로는 이스라엘 병원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로드 투 리커버리’는 그들이 이스라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오데드와 요헤베드도 그런 자원봉사자였다.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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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남부 지방에 있는 키부츠에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에 비해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하마스 공격으로 인한 피해도 이들이 많이 입었다. 사망자나 인질로 잡혀간 사람 중에는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평생을 바친 활동가들도 있다. 이런 사실은 보수 성향 사람들이 평화 공존론을 비웃고 공격하는 빌미가 됐다. 그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부정되고 비난의 대상이 됐다. 공존 가능성을 믿고 실천하며 살았던 요헤베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궁금했다. “그런 고통을 겪고도 여전히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들과 이웃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요헤베드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스! 과거나 지금이나 나는 평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은 두 민족이 서로를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죠. 우선 전쟁을 끝내야 해요.”



요헤베드는 함께 납치됐던 남편 오데드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그도 84살 고령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질 생활을 경험한 요헤베드는 남편이 지하터널 같은 환경에서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족들은 조급해졌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더는 시간을 끌면 안 돼요. 정부가 군인들을 투입한 인질 구출 작전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안이 아닙니다. 평화협상만이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들 옴니는 이스라엘 정부가 북쪽 국경에서의 전쟁을 핑계로 평화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올 것을 걱정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평화협상에 적극 나서도록 국제사회가 압력을 행사해 주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금요일 저녁 해가 지고 나서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해가 질 때까지가 유대교의 안식일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지하철도 기차도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저녁 7시가 되면 ‘인질광장’으로 불리는 텔아비브 미술관 앞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 찬다. 인질광장이란 별칭은 전쟁 이후 인질들의 가족과 시민이 이곳에서 인질 석방을 기원하는 집회를 벌여온 데서 유래했다. 인질광장에서 남쪽으로 한 블록 아래 평행한 카플란 거리와 베긴 거리가 교차하는 곳, 사람들은 이곳을 ‘민주광장’이라 부른다. 이스라엘 국방부 청사 바로 앞이다. 1993년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 로드맵인 오슬로 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이곳에서 열린 평화 집회 도중 암살당했다. 그 뒤로 광장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와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 됐다.





인질광장 VS 민주광장





토요일 시위는 보통 민주광장 인근 베긴 육교 밑에서 인질 가족들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쟁 종식과 인질 석방을 위한 평화협상을 방해하거나 시간 끌기를 한다고 비난하며 총리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회견장에는 인질 가족뿐 아니라 이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자원봉사자들도 함께한다. 자원봉사자 갈은 네타냐후 총리가 평화협정에 서명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평화협정에 서명하면 그의 연정 내 극우파들이 네타냐후 정부를 전복시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시위는 같은 거리 같은 지역에서 열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질 가족과 시민들은 정치적 성향이나 신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질광장과 민주광장으로 나뉘어 모이고 있다. 베긴 다리 아래와 민주광장에는 네타냐후 총리 사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집결한다. ‘전쟁 종식’, ‘조속한 인질 석방,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국민을 배신하는 정부’ 등 다양한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지금 당장!”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이들과 생각이 다른 인질 가족과 시민들은 텔아비브 미술관 앞 광장에 모여 인질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시간을 가진다. 조명과 음향 등 행사 전문가들이 공을 들인 무대에 가족이나 관련자들이 올라 인질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하고, 준비된 영상도 상영한다. 참전 군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부스가 차려지고 전시도 마련된다. 베긴 다리 쪽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갈라치기, 네타냐후 정부의 전략 중 하나죠.” 지난해 10월 이후 줄곧 인질 가족들을 도와 자원봉사를 해왔다는 타미가 두 집회의 차이를 설명했다. “인질의 조기 석방을 요구한다는 점에는 모두 같은 입장입니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의 차이겠죠. 인질광장 행사를 이끄는 사람들은 아직도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고, 베긴 육교 쪽 사람들은 정부가 인질 석방을 위해 진심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기대를 접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부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표현하는 겁니다.”



네타냐후 정부는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을 중심으로 4개의 극우 시오니스트 정당들과의 연정으로 구성됐다. 재무장관을 맡은 베잘렐 스모트리치는 ‘종교적 시온주의당’의 대표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반아랍을 표방하는 ‘오츠마 예후디트’를 이끈다. 지난 26일, 벤그비르는 “(동예루살렘에 있는) 템플 마운트(성전산)에 유대교 회당을 짓겠다. 그곳에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원한다”고 공언했다. 유대인이 성전산이라고 부르는 곳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는 성지이기도 하다. 이슬람교도들은 8세기에 이곳에 알아크사 사원을 건립했으며,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이곳의 실질적 주인이었다. 앞서 5일에는 잇단 망언으로 악명 높은 베잘렐이 “가자 주민 200만명 굶기는 것은 정당하고 도덕적”이라고 말해 또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2023년 네타냐후가 정치적 목적으로 밀어붙인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시민 시위 때부터 토요시위에 참석했다는 피터(가명)는 민주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비롯해 네타냐후 비판 진영의 현주소를 이렇게 요약했다.



“진보세력이 현 사태의 해법을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는 동안, 보수 세력은 시민들에게 불신과 두려움을 심고 어젠다를 장악하기 위해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막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진보 세력 일부는 지치고 실망해서 더 이상의 투쟁을 포기했고, 일부는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일부는 보수 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한 힘을 모으려 하지만, 공통된 리더십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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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상에 쏠린 간절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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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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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없는 걸까? 8월24일 토요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민주광장 쪽 카플란 거리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느 토요일과 달랐다. 군중 통제가 주 임무인 기마경찰이 등장했고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위협을 느낀 시위대가 봉쇄를 뚫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앞으로 반정부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보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이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매주 주말마다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두려워서가 아니라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불편하거나 시위 장소가 멀어서, 또는 아직 거리에 나설 만큼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카플란 거리 시위에 참석했다는 사업가 아모스는 “이스라엘 국민의 합리적 판단을 믿는다”는 말을 강조하듯 덧붙였다.



2024년 8월26일, 가자전쟁 발발 324일째.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망자가 4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기아, 질병, 물 부족 등 현지 상황은 혼돈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하마스 격멸을 이유로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민간인 강제이주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인질들의 생환 여부도 불투명하다. 28일 이스라엘 공보처에 따르면,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251명 중 103명이 돌아오지 못했으며, 그중 최소 36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지난해 11월 일시 휴전 때 석방되거나 이스라엘 군사작전으로 구출됐으며, 주검으로 발견된 경우도 있다.



어떻게 가자지구의 참상을 막고 인질을 무사히 집으로 데려올 것인가? 열쇠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화협상에 달렸다. 지난 26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완충지대에서 군대를 철수하겠다던 약속을 뒤집었다며 평화협상 테이블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이집트, 요르단 등 중재국 사이의 협상은 계속됐고 외신들은 평화협상에 진전이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인질 가족들도, 가자에서 지옥 같은 삶을 견뎌내는 사람들도 하루빨리 평화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2023년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 비극이 모두 끝나는 것일까? 지금은 리더십 없이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스라엘 국민의 목소리가 하나로 결집한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 극우세력과의 연대를 넘어 또 다른 전쟁 카드를 꺼내 드는 건 아닐까 ? 북쪽 국경에서 헤즈볼라와의 전투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지금 ,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텔아비브/강경란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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