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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광화문]불황형 산업마저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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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불황에 강한 산업이다. 장기불황을 겪었던 일본에서도 편의점만은 꾸준히 성장했다. 쓸돈이 줄어들면 소비를 줄이고, 꼭 사야 한다면 가성비를 찾을 수밖에 없다. 편의점은 이런 수요를 노린 상품을 집중적으로 기획하고, 판매하며 성장한다. 지난해 편의점의 가장 큰 히트 상품 중 하나는 고공행진 중인 외식물가를 겨냥한 도시락이었다.

고물가와 저성장에 시름을 앓던 지난해 초 애널리스트들은 '불황 속 도피저', '불황 무풍지대'라며 편의점을 유통업계의 톱픽(최우선 추천 주식)으로 꼽기도 했다. 그리고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편의점들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증가율은 2022년보다는 낮아졌지만 GDP 성장률 1.4%라는 역대급 저성장 국면에서도 선전했다.

'불황 모르던 너마저...' 흔들리는 편의점.

얼마전 본지 기사의 제목이다. 말 그대로 불황에 강하다던 편의점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전한 기사다. 업계 톱인 CU와 GS25의 올해 실적은 시원찮다. 매출은 늘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이 매분기 감소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도 징후가 보였지만 올해는 더 심각하다. 슬금슬금 우하향하던 주가는 어느새 10년새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적자를 낸 세븐일레븐, 이마트24는 매출액마저 역성장했다.

소비 둔화로 매출은 시원찮은데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은 늘어난 영향이다. 사실 비용이 늘지 않은 해는 없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매출 증가로 비용 상승을 커버했다. 올해는 이 공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편의점 업계는 이미 비상경영 상태다.

편의점이 불황에 강한 산업이라면 라면은 전형적인 불황형 상품이다. 냉면 한그릇에 1만5000원, 칼국수 1만원, 김밥 한줄 5000원 시대에 1000원 안팎으로 한끼를 떼울 수 있는 서글픈(?) 상품이 라면이다. 농심, 삼양식품 등 라면 기업들의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특히 삼양식품은 전세계적으로 불닭볶음면 신드롬을 일으키며 매 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써내려가고 있다. 상반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 비중은 80%에 육박한다.

하지만 삼양식품도 화려한 해외 실적에 가려져 있을 뿐 국내 매출은 역성장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매출 역시 매분기 20~30% 증가했지만 올해 1분기는 10.4%로 뚝 떨어졌고 2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사실 K푸드가 한류 열풍을 타고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해외 시장에서 라면이 잘 팔린다는건 그 나라도 먹고 살기 팍팍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중산층까지 인스턴트 라면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라면은 불황형 상품이긴 마찬가지인 셈이다. 해외 시장에서 K푸드 열풍을 이끌고 있는 한 대형 식품회사 관계자는 "내수 시장은 확실히 어렵고 그나마 해외 시장이 호황이었는데 이제는 해외도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소주도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이다. 국내 양대 소주 제조사인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의 2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소주 판매는 증가했다. 비싼 와인, 위스키 판매는 이미 지난해부터 꺾였고 작년에 좀 팔리던 맥주마저 올해는 역성장했다. 오직 주류 매대에서 가장 싼 소주 판매만 플러스다.

연구기관들은 연달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내수 부진의 장기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2분기 기준 전년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이다.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긴 기간 이어진 마이너스 행진이다. 장기 내수 불황에도 한국은행은 집값 눈치 보느라 금리를 내리지 못하고,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지킨다고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불황형 산업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머니투데이

김진형 산업2부장




김진형 산업2부장 jh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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