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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韓 원전 발목잡는 美 웨스팅하우스, 인수 기회 3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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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자력 발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원전 수주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발목을 잡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도용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추진 중인데, 웨스팅하우스는 향후에도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웨스팅하우스는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443개 원전 중 약 50%의 원전을 설계·건설한 기업이다. 하지만 원전 사고와 정부의 원전 정책 변화, 금융 위기 등으로 위기를 겪으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한국 기업도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할 기회가 최소 세 번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의 영향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설계 기술과 특허를 가진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했을 경우, 건설과 운영 노하우를 가진 한국이 큰 시너지 효과를 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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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팅하우스 로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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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웨스팅하우스의 최대 주주는 캐나다 사모펀드인 브룩필드다. 브룩필드는 2018년 경영난에 처한 웨스팅하우스를 46억 달러(약 6조원)에 인수했다. 2022년 지분 49%를 캐나다 우라늄 업체인 카메코에 넘기고 51%를 갖고 있다.

1957년 설립된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1970년 미국 스리마일섬에서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가 30년 이상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는 1999년 영국 핵연료공사(BNFL)에 매각됐다.

한국의 첫 번째 인수 기회는 2005~2006년에 찾아왔다. BNFL은 2005년부터 웨스팅하우스의 매각 절차에 나섰고 당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은 글로벌 원전 설비업체로 도약하기 위해 인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두산중공업은 2005년 8월 웨스팅하우스 인수를 위한 의향서를 제출하고 12월 본입찰에 응찰했다. 원자력 시설의 해외 유출을 꺼리는 미국의 입장을 감안해 미국 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하지만 결과는 일본 반도체 기업 도시바의 승리였다. 도시바는 2006년 원전 시장이 더 성장할 것으로 판단하고 54억달러(당시 약 6조원)에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당초 예상 매각가격 17억 달러의 3배에 달했다. 도시바를 비롯해 두산중공업, 제너릭일렉트릭(GE), 미쓰비시 등이 인수 경쟁에 뛰어들면서 몸값이 뛰었다. 당시 두산에너빌리티도 약 32억 달러에 입찰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면서 세계적인 원전 기업으로 위상이 올라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전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고 후 일본은 가동 중인 50개 원자로를 폐쇄했고 다른 국가들도 원전계획을 재검토했다.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진행 중이던 공사는 안정성 검증을 이유로 지연됐고 자연스럽게 시공 비용이 늘어났다.

도시바는 원전사업 손실 7000억 엔(당시 약 7조원)을 떠안으면서 2017년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내고 웨스팅하우스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한국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였다. 당시 도시바의 의료기기 사업은 캐논에, 백색가전은 중국 기업에, 반도체 사업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다국적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웨스팅하우스는 1년 뒤인 2018년 브룩필드에 46억 달러에 매각됐다. 부채를 제외하고 브룩필드가 실제 투입한 돈은 약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로 알려졌다.

원전 업계 고위 관계자는 “당시 웨스팅하우스가 매물로 나오자 국내 에너지 기업을 중심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 다만, 당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원전의 대명사격인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게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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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웨스팅하우스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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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필드는 2022년에도 웨스팅하우스의 지분 매각을 추진했고 그해 10월 캐나다 우라늄 연료 공급업체인 카메코가 22억 달러에 지분 49%를 인수했다. 매각 직전인 그해 6월쯤 웨스팅하우스 사장단은 비공개로 한국을 찾았다. 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개빈 류 아시아 지역 사장 등으로 구성된 웨스팅하우스 사장단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PS 등을 잇달아 만났다. 당초 ‘한미 해외원전시장 협력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협상이 결렬되면서 서명 행사가 취소됐다.

웨스팅하우스는 사모펀드가 최대 주주가 된 후 한국에 기술 침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영향력 과시에 나서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2009년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할 때 특허권 침해를 언급하면서 일부 일감과 로열티를 요구했다.

업계에서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이번 문제 제기도 웨스팅하우스의 몸값을 높이려는 조치일 것으로 본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가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이득을 얻거나 관심 있으면 회사를 인수해 달라는 요구”라며 “과거엔 인수 기회가 있었으나 지금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foxps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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