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4 (토)

PA간호사 합법화… 여야, 간호법 합의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의료 공백 해소 위해 명문화

조선일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 쟁점법안인 간호법안 심사를 위한 보건복지위원회 1소위원회의가 개회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야가 27일 ‘진료 지원(PA) 간호사’ 합법화의 근거를 담은 간호법 제정안을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함에 따라,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PA 간호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데 여야가 뜻을 모은 것이다. 여야는 간호법을 포함해 그간 정쟁을 벌이느라 뒷전에 밀렸던 민생 관련 법안 등 40여 건을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원포인트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간호법 제정안은 의사의 수술 집도 등을 보조하면서 의사 업무 일부를 담당하는 PA 간호사들의 역할을 명문화하는 게 핵심이다. 미국·영국 등에선 PA 간호사가 법에 규정돼 있지만, 한국 의료법엔 근거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1만6000여 명에 달하는 PA 간호사들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일하고 있다.

여야는 그간 PA 간호사 법제화에는 공감대를 이뤘으나, 이들의 업무 범위와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폐지 등 일부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었다. 국민의힘은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간호법에, 민주당은 시행령에 규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이날 여야의 이런 입장을 반영해 PA 간호사 업무를 ‘의사의 일반적 지도와 위임에 근거한 업무’로 명시하고, 구체적 업무 범위는 임상 경력과 교육과정 이수 등을 고려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 자칫 직역 갈등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의료 공백 사태 해결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안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학력 기준과 관련해선 여야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현행 의료법엔 간호조무사들의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특성화고 졸업자’ ‘간호조무사 학원을 나온 사람’으로 제한돼 있다. 국민의힘은 간호법 제정안에 ‘그 밖에 상응하는 교육 수준을 갖췄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전문대 졸업생도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학력 기준을 완화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특성화고, 간호조무사 학원 등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수용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간호조무사 학력 기준은 일단 현행 의료법에 그대로 두되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주도해 통과시켰다가 대통령 재의 요구로 결국 폐기된 간호법에서 논란이 됐던 ‘지역사회’ 문구는 이번 제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지난해 4월 강행 통과시킨 간호법엔 ‘모든 국민이 의료 기관과 지역사회에서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당시 의사 단체는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의 의료·돌봄을 독점하기 위한 작업”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었다. 이후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민주당도 ‘지역사회’ 문구 같은 쟁점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이날 간호법 제정안 처리에 합의한 것은 의료 대란으로 진료 공백이 장기화하는데도 정치권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간호사·의료기사가 중심이 된 보건의료노조는 29일부터 전국 병원 61곳에서 동시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 개혁의 본질과 동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금 상황에 대한 국민들 걱정과 우려를 경감시킬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의정 갈등 해소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 지시로 ‘의료대란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27일부터 의료 공백 해결책 모색을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여야는 28일 본회의 소집 전 간호법 논의를 위한 복지위 ‘원포인트 전체회의’를 열어 간호법 제정안을 처리하고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한다. 여야 합의로 간호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현재 1만6000여 명에 달하는 PA 간호사 업무 범위가 규정돼 이들의 법적 지위가 보장된다. 전공의 이탈 후 재정난에 빠진 대형병원들은 한동안 PA 간호사를 대폭 늘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PA 간호사로는 전공의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반박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대한의학회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PA 간호사 제도화가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환자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정부·국회가 간호법 제정 시도 중단 요구 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14만 의사는 의료를 멈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야는 간호법 외에 수십 건의 민생 법안도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국회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과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는 상속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범죄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구조금을 유족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안 등 법안 7개를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여야가 각 상임위에서 처리한 예금자보호법, 서민의 금융 생활 지원에 관한 법 등도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이날 원내대책회의 이후 “28일 본회의에서 법안 40여 건이 처리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22대 국회 개원 이후 4개월 만에 정쟁에 밀려 있던 민생·비쟁점 법안들을 처음으로 합의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해 국회로 돌아온 ‘방송 4법’과 노란봉투법 등 법안 6건에 대해선 이달 중 재표결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의사를 보조하는 간호사. 수술 준비와 보조, 수술 부위 봉합 등 의사 업무 일부를 담당한다. 병원의 부족한 인력 충원과 인건비 절감 등의 목적으로 배치된다. 미국·영국 등에선 법으로 규정된 직역이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엔 근거 규정이 없어 불법 의료 행위 지적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간호법을 통한 법제화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주희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