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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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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차려 사망 훈련병 동료들 "쓰러져도 욕하며 혼냈다" 법정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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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얼차려)을 실시한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지난 6월 21일 오전 춘천지방법원에서 열린 가운데 군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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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일명 얼차려)으로 숨진 훈련병과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함께 훈련받았던 학대 피해 훈련병들이 27일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군기훈련 전후 상황을 증언했다.

이들은 "살면서 느꼈던 것 중 제일 힘들었다", "힘듦의 정도가 1에서 10으로 따지면 10이었다"며 피고인들이 행한 군기훈련의 강도가 높았다고 진술했다. 사건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기도 했다.

중대장과 부중대장은 자신들이 실시한 군기훈련 행위와 훈련병 사망 간 인과관계가 없으며 예견할 수도 없었다고 재차 주장하고 훈련병 사망 책임을 서로 떠넘겼다.

춘천지법 형사2부(김성래 부장판사)는 이날 중대장 강모(27·대위)씨와 부중대장 남모(25·중위)씨의 학대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 사건 두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숨진 훈련병과 함께 훈련받았던 학대 피해 훈련병 4명을 대상으로 한 증인신문도 이뤄졌다.

숨진 훈련병과 함께 군기훈련을 받은 증인 4명은 법정에서 군기훈련 전후 생활관과 연병장 등에서 있었던 상황에 대해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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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규정을 어긴 군기훈련(얼차려)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부중대장이 지난 6월 21일 강원도 춘천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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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증인신문에 나선 훈련병 A씨는 "취침점호 이후 '얼마 안 남았으니까 힘내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부중대장이 알루미늄 야구 배트를 들고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러면서 '취침시간인데 왜 떠드냐. 군기위반을 했다. 내일 기대해라'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부중대장이 완전군장을 하라고 하며 군장의 빈 공간은 책으로 채우게 했다. 책은 40권이 넘게 들어갔다"며 "체감상 무게는 30~40㎏ 정도가 됐던 것 같고, 군기훈련 과정에서 훈련병의 건강상태 등은 확인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A씨는 "부중대장은 완전군장 상태에서 연병장 2바퀴 보행을 지시했고, 이후 나타난 중대장이 뜀걸음과 팔굽혀펴기를 지시했다"며 "군장에서 책이 떨어지면서 넘어진 훈련병에게는 '하루 종일 뛰어라'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숨진 훈련병에 대해서는 "당시 응급처치 등 대처가 빨랐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피고인들의 형사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훈련병 B씨도 "최초 군기훈련은 부중대장이 완전군장 상태에서 연병장 2바퀴를 걷도록 지시했다"면서 "이후 나타난 중대장이 뜀걸음과 팔굽혀펴기를 지시했다. 훈련 중 물을 제공받거나 휴식시간을 부여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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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용산역광장에 지난달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숨진 훈련병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12사단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 앞으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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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중대장이 군기훈련을 지시했을 때가 더욱 강압적인 분위기로 느껴졌다"며 "군기훈련 중 숨진 훈련병이 쓰러졌을 때 '엄살 부리지 말라', '너 때문에 다른 애들 다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라며 욕을 하며 계속 혼냈다"고 진술했다.

또 그는 "오늘 오전에 병원에 가서 진료결과를 받았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진단이 나왔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호소했다.

이밖에 이날 법정에 선 또 다른 훈련병 2명도 증인신문에서 군기훈련을 받게 된 사유와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기상 조건·훈련방식·진행 경과·신체 조건 등에 대한 종합적인 질문을 통해 피고인들이 학대 행위로 볼 수 있는 위법한 군기훈련을 실시해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강씨 측은 완전군장 결속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남씨 측은 연병장 2바퀴 걷기 외에 군기훈련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데 초점을 두는 등 첫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23일 강원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을 대상으로 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을 실시하고, 실신한 박 훈련병에게 적절하게 조처하지 않음으로써 박 훈련병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경위와 경과 등을 수사한 결과 학대 행위로 볼 수 있는 위법한 군기 훈련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판단해 업무상과실치사죄(금고 5년 이하)가 아닌 학대치사죄(징역 3년 이상 30년 이하)를 적용해 기소했다.

재판부는 내달 13일 세 번째 공판을 열기로 했다. 세 번째 공판에서는 이날 출석하지 못한 나머지 학대 피해 훈련병 1명과 참고인들을 대상으로 한 증인신문을 하기로 했다.

재판이 끝난 뒤 박 훈련병 유족은 "부대에서 아들이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을 때 '오실 필요는 없다'는 답변을 들어 후속 조치를 더 할 수가 없었다"며 "첫날부터 거짓말이고 은폐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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