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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글로벌포커스]美 청정에너지 스타트업 줄파산…‘탄소 중립’은 신기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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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수소연료 기업들 엄격해진 세액공제에 타격

빅테크, 데이터센터 난립에 탄소중립 목표 지연

트럼프vs해리스 에너지 정책 극명, 불확실성↑

재생 에너지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 찬 출사표를 던졌던 미국의 청정에너지 스타트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도입하며 청정에너지 산업 부흥에 1100억달러를 쏟아부었으나 엄격한 세액 공제 기준으로 투자금 유입이 경색되는 등 관련 프로젝트의 40%가 운영을 멈춘 상태다. 이 기간 그린 수소·바이오연료 스타트업의 주가는 80~90% 폭락했다. 데이터센터에 사활을 걸고 있는 IT 공룡들은 잇따라 기존의 탄소중립 목표를 이연·수정하며 '전기 먹는 하마'가 되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양당 후보의 에너지 정책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업계의 불확실성도 가중되는 모습이다.

무너지는 청정 연료 생태계
청정 연료로 비행기, 선박, 트럭을 구동하겠다고 나선 신생 기업들이 본격 출범도 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유나이티드 항공을 비롯한 글로벌 항공사들로부터 수억달러를 조달했던 지속 가능 항공유(SAF) 기업 펄크럼 바이오에너지는 파산 위기에 놓였다. 석유 공룡 셰브런은 2022년 미국 최대 바이오디젤 기업을 31억달러에 인수해 하루 10만배럴 규모의 바이오연료를 생산했으나 공장 2곳의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2025년까지 연간 200만t 규모의 SAF 생산을 목표로 했던 셸도 유럽 최대 규모의 바이오연료 공장 건설을 중단해 최대 1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F는 전 세계 온실가스(GHG) 배출량의 2~3%를 차지하는 항공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핵심 열쇠 중 하나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탄소중립이라는 기후 목표를 내걸었지만, 항공 및 해운 등의 산업은 풍력이나 태양광 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너도나도 SAF 사업에 뛰어들며 붐이 일었지만, 시장 악화와 미국 정부의 엄격한 청정 수소 세액 공제 규정으로 인해 그 열기가 빠르게 식는 모습이다. 미국 최초의 그린 수소 공장을 만든 스타트업 플러그 파워의 앤디 마쉬 최고경영자(CEO)는 "청정에너지 버블이 꺼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플러그 파워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수소 및 바이오연료 스타트업의 주가는 2022년 이후 80~90%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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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해진 세액 공제 기준…IRA 프로그램 40% '스톱'
이들 청정에너지 기업들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IRA의 세액 공제 규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IRA를 제정하며 관대한 세금 공제를 통한 청정수소 생산 본격화를 다짐했지만, 이와 관련한 세액공제의 최종 가이던스 발표가 미뤄지면서 관련 프로젝트들이 답보 상태다. 미 재무부가 지난해 12월 청정 수소 생산 잠정 가이던스를 발표했으나,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그린 수소'만 세액 공제 혜택을 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기존의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을 통해 수소를 생산해온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지게 됐다.

투자 흐름이 경색된 것은 청정 수소뿐만이 아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IRA와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제정하며 청정 기술 개발 촉진과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4000억달러(약 548조원) 상당의 세금 공제 및 보조금을 내걸었으나, 현재 IRA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 중 40%(840억달러 상당)가 연기·중단된 상태다. 이 가운데에는 에너지 기업 에넬의 10억달러 규모 태양광 패널 공장과 LG 에너지솔루션의 23억달러 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공장도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제이슨 그루멧 미국청정전력협회(ACPA) CEO는 "가장 부담스러운 규제를 성급하게 부과하는 것은 새로운 기술 배포에 대한 시장의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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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비전 미루는 빅테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이 탄소중립(넷제로)을 비전으로 세우고, 스타트업들이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은 별다른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구글이 지난달 발표한 연례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이 2023년 배출한 온실가스는 1430만t(이산화탄소 환산량 CO2e 기준)으로 전년과 비교해 13% 증가했다. 2019년에 비해서는 무려 48% 급증한 수준이다.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구글의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진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넘어서 순배출 마이너스 달성을 천명했으나, 2020년 이후 총 탄소 배출량이 30% 정도 늘어난 상황이다.

이 같은 빅테크들의 온실가스 배출 급증의 주범으로는 데이터센터 난립이 지목된다. 오픈AI의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AI 모델을 개발·훈련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고전압 송전선은 물론 발열을 잡기 위한 상당한 양의 물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이란 점이다. 빅테크들이 앞다퉈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을 비롯한 원자력 발전 확보에 목을 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제 보다 줄여서 보고하기 위한 로비 활동에 나서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의 오일 사랑 vs 해리스의 그린 뉴딜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기후·에너지 정책에 대한 양당의 대선후보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도 청정에너지 산업 미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IRA 노선을 강화해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무탄소 전력 생산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IRA 정책의 폐단들을 어떻게 바로잡을지에 대해선 아직 제시한 바가 없다. 반면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에너지 정책 기조를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했다. 석유 시추 부지를 대폭 확대해 유가를 낮추고 인플레이션도 잡겠다는 심산이다.

'기후 위기 경제학'(Climate Crisis Economics)을 집필한 경제학자 스튜어트 매킨토시는 "미국이 '녹색 전환'에서 후퇴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제적인 추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벤처캐피털 오버추어의 공동창립자 쇼믹 두타는 "11월 대선 결과가 어떻든 일부 기후 기술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면서도 "다만 친환경 철강, 시멘트, 지속가능한 항공연료 등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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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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