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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수류탄에 죽었다는 실미도 공작원, 면도칼로 그어낸듯 목 잘려” [인터뷰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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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71년 8월23일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던 군인들이 탈취해 타고 오던 버스가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멈춘 뒤 군인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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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은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 지 53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김일성 암살을 위해 극비리에 만든 특수부대의 공작원들은 섬을 빠져나와 시내버스를 탈취하고 서울 청와대로 진격하다 자폭했다. 반세기 만인 오는 9~10월께 국방부 장관은 이 사건과 관련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사과는 경기도 벽제리 공동묘지에서 열리는 사형집행자 유해발굴 개토제 때 ‘국방부 간부의 대독’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방부 쪽은 사과 내용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라고만 밝혔지만, 모호하고 형식적인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실미도 사건은 불법 모집에서부터 훈련 중 인권침해, 부식비 횡령, 사형집행 및 암매장 등 처음부터 끝까지 최악의 국가범죄였다. 만약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모조리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면 이 역시 사과해야 할 범죄에 해당한다. 한겨레는 실미도 사건 53주년과 국방부 장관의 사과 발표를 앞두고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공작원(훈련병) 생존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목 없는 주검 사진에 대한 의구심





― 국방부는 어쨌든 사건 당일 유한양행 앞에서 산 채로 잡힌 5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가 실미도 사건에서 모두 죽었다면서 시신 사진을 보여준 적 있다. 그중에는 목 없는 시신이 3구 있었다. 아니 수류탄으로 버스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목이 면도칼로 그어낸 것처럼 잘릴 수 있나. 1·21 사태로 북한 무장공작원이 넘어왔을 때도 시신 보여주면서 31명 다 죽었다고 했는데, 나중에 몇 명이 살아남아 북한으로 돌아간 게 드러나지 않았나. 똑같다. 가짜 시신 사진 찍어놓고 다 죽었다고 한 거다. 지금이라도 국방부에 목 없는 시신 사진을 공개하라고 요청하고 싶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말이다.”



목 없는 시신과 관련해 실미도 사건을 직접 조사했던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는 “위원회 조사 때 국방부 실미도 사건 TF단(과거사위 출범 전 국방부 자체적으로 꾸린 조직)에서 이관받은 사진첩에 문제의 사진들이 있었고, 이는 아마 사건 직후 공군 2325 정보부대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사체 사진 중 목 없는 시신뿐만 아니라 마구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이 있었는데 부상한 생존 기간병은 2005년 11월29일 면담조사에서 ‘자기가 일일이 시체 확인을 했는데 형체 불명의 시신은 군화 혓바닥(발등 위 가리개)에 쓰인 이름을 보고 알아냈다’고 했다”고 전했다.



― 국방부가 엄청 싫어할 이야기다.



“한번은 국방부에서 보자고 해서 갔더니 ‘공작원은 다 죽었다’고 이야기가 끝났는데 왜 생존자에 관해 떠드냐면서 자중해달라고 했다. 실미도에서 살아남은 기간병들도 입 다물라고 철저히 교육받았을 거다. 생존자가 강인찬 모델 하나만 있는 게 아닐 거다. 최소한 3명은 있다고 진실에 목을 걸겠다. 확실하다. 실미도 소설 발표한 뒤 수상한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생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여러 이야기를 했다. 기간병 중 누가 살아남았는지를 꼬치꼬치 물었다. 나를 떠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야기하다 보면 ‘아 이 사람이 문외한이 아니구나’ 하면서 통하는 게 있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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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육군본부 유해발굴단은 사형집행자들을 묻었다는 서울 오류동 산 26-2, 23-8 공군정보부대 터에 대한 유해발굴을 진행했으나 유해를 찾지 못했다.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한 이들에 대한 유해발굴은 2005년 11월 경기도 벽제리 서울시립묘지에서 이뤄졌다. 박선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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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8명은 아직도 유가족 안 나타나





1971년 8월23일, 실미도를 탈출해 인천 송도에 상륙한 뒤 시내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던 공작원의 수는 국방부 과거사위 공식 기록상으로는 22명이다. 전체 공작원 31명 중 7명은 훈련 중 사망한 상황이었고, 당일 아침 기간병 살해 과정에서 공작원도 2명 죽었다. 전균, 이영수다. 그리고 3명(심보길 김기정 전영관)은 송도에서 서울로 가는 조개고개(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사망한다. 결국 19명이 마지막 ‘죽음의 버스’에 탑승한 셈인데, 군 당국은 이 중 15명이 자폭해 결국 사망하고 4명은 구속돼 사형 집행되었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버스에 탔던 인원이 19명이 아닌 18명이라는 사형집행 공작원의 증언도 나왔다. 이 밖에도 송도에 도착한 공작원 숫자에 대한 송도 초소 초병의 최초 보고가 22명이 아니라 21명이었다는 주장(안김정애 ‘실미도의 아이히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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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6년 대통령 직속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실미도 사건을 직접 조사했던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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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15일에서 25일까지 육군본부 유해발굴단은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한 15명을 비롯해 20명을 묻었다는 경기도 벽제리 서울시립묘지 1-2지역에서 진행했다. 여기서 유해는 20구가 발굴되었고,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의 디엔에이 감식으로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가능성 있음’ 포함)은 8명 뿐이었다. 남은 12명 중 유한양행 자폭 전에 죽은 이들과 유가족이 나타난 9명을 제외하면 3명이 남는다. 이들은 고아였거나 사고무친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기태, 박응찬, 정은성이다. 백동호 작가에게 이들에 관해 물었다.





임기태·박응찬·정은성, 모두 탈출했을 수도





― 임기태·박응찬·정은성을 아는가. 애초에 확실히 죽었거나, 유해발굴로 신원확인이 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남은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강인찬이 있는가.



“그렇다. 그 추측이 맞을 것이다. 강인찬은 그중 한 명일 수도 있고, 탈출한 사람은 그들 다일 수도 있다.”



― 정확히 누구인가. 백동호 작가는 소설에 나오는 강인찬의 실체에 대해 밝힐 의무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실미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그렇다.



“하하하. 말할 수 없다. 이미 밝혀질 만한 것들은 다 밝혀지지 않았나. 그와 내가 한 약속은 역사 속에 묻어야 한다.”



― 성이라도 알려주면 안되나.(웃음)



“안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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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육군본부 유해발굴단은 사형집행자들을 묻었다는 서울 오류동 산 26-2, 23-8 공군정보부대 터에 대한 유해발굴을 진행했으나 유해를 찾지 못했다. 개토제 행사 때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박선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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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미도 기간병들은 생존자 설에 대해 뭐라고 하나.



“실미도 사건 당일 공작원들에게 18명이 살해당하고 6명이 살아남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제대한 기간병들까지 13명 정도 참여하는 ‘실미도 전우회’가 있었다. 1999년 소설 ‘실미도’가 나오고 그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한때 특별회원으로 회비도 내면서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그들도 공작원 생존자가 있다는 걸 강하게 부인하지 않았다.”



― 기간병들과 친하게 지냈나.



”모임에 가곤 했지만 친해질 수 없었다. 그들은 소설에서 기간병을 너무 악마로 그렸다며 나에게 시비를 걸어 다툼이 일기도 했다. 나는 소설에서 많이 순화해서 써줬다고 생각한다. ‘명예훼손으로 걸 테면 걸라’고 했다. 이들이 2003년 영화 개봉 전에는 ‘기간병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영화상영금지 가처분하겠다’고 영화사에 압력 넣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교육대장이었던 김순웅 상사(안성기 분) 등이 인간적으로 묘사된 게 아닌가 싶다. 2004년 이후엔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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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54995.html)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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