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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①기존 정책 재탕 ②미국 대선 관련 알맹이 없어...뒤늦게 나온 尹정부 통상정책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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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남은 임기 3년 동안 통상 로드맵 발표
FTA 네트워크 전 세계 GDP 90% 확대 목표 제시
중앙아시아·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시장 개척
한국일보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2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통상정책 로드맵'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오늘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지난 2년간 통상정책 성과 평가 및 향후 글로벌 환경변화에 대응한 통상정책 방향을 담은 '통상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산업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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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앞으로 3년 동안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세계 1위 수준으로 확대하고 아세안,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통상정책 청사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표는 이미 과거에 제시했다가 해내지 못한 계획의 재탕이 들어있거나 일부는 선언적 내용에 그쳐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2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한 통상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안보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통상 중추국가 실현'을 목표로 세웠다.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 통상체제가 약해지고 주요국들이 경제안보를 이유로 자국우선주의를 강화하는 등 국제통상질서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서 '5대 수출 강국 도약'과 '통상 네트워크 90%를 달성'해 글로벌 통상 중추국가로 부상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에 달하던 기존의 FTA 네트워크를 90%까지 확대한다. 세계 각국과 맺는 FTA, 경제동반자협정(EPA)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경제운동장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국의 FTA 네트워크가 세계 GDP의 85%로 2위이고, 1위는 싱가포르(88%), 3위는 칠레(82%)"라며 "양적 확대 이상으로 질적으로도 새로운 규범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0개 이상 나라와 EPA 및 FTA를 새로 체결하고 이미 타결된 걸프협력회의(GCC), 에콰도르 등 중동·중남미 지역 FTA 등도 신속히 발효되도록 힘쓴다고 했다. 이 밖에도 2019년 협상이 중단된 한일중 FTA 협상을 다시 시작하고 말레이시아·태국과의 양자 FTA 협상에 속도를 낸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중요성이 커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아프리카·중남미·중앙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협력도 강화한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주요 자원 보유국과 광물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한편, 'K산업 연계형 공적개발원조(ODA)'를 추진해 이들 국가들과 장기적으로 상호 호혜적 관계를 맺는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대(對)미국 통상리스크에 대해서는 신속한 대응을 위한 아웃리치(대응활동)를 강화한다. 중국과는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가속화, 중앙·지방정부 다층적 협력 채널 가동 등을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공급망 안정에 주력한다.

美 대선 변수·중국 공급과잉 등 현안 대응 관련 구체성 떨어져

한국일보

그래픽=신동주 기자


문제는 이번 로드맵은 과거 정부에서 발표했거나 기존에 추진 중이던 정책 내용이 적지 않다. 첫 번째 추진 과제로 강조된 'FTA 네트워크 세계 1위 수준인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0%(1위) 확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1월 '2022년 대외경제정책 추진 전략'을 통해 발표됐다.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는 "신남방, 신북방, 중남미 등 시장을 중심으로 양자 자유무역협정을 확대해 2021년 말 기준 전 세계 GDP 85.4%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실장은 "우리나라는 이미 웬만한 무역 상대국과 FTA를 체결한 상황이라 러시아 등 FTA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와 FTA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 늘릴 대상국도 없는 데다 숫자 키우기가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제1추진과제로 내세운 것. 산업부 관계자는 "FTA 90% 확대를 위해 협상력을 동원하고 목표를 다시 한번 설정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계에선 올 11월 미국 대선에 따른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중국발 공급 과잉 등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정부의 로드맵에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실장은 "미국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자국우선주의 경향은 강해질 것"이라며 "(이 점에서) 우리 국익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 통상정책이 제시됐으면 한다"고 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선 상대적으로 한중 관계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며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로 한국 상품 입지가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황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인교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전략보고서의 극히 일부분"이라며 "향후 통상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특정국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본에 넣을 순 없었다"고 답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날 백브리핑에서 "새로운 방향이 없다는 건 동의한다"면서도 "로드맵은 현재까지 정책의 연속선상에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내용이라 경제안보를 강화한다는 측면에 방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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