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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대대적으로 띄운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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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매체 동원해 추모 열기, 왜?

조선일보

1978년 덩샤오핑이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V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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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鄧小平) 동지에 대한 최고의 기념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다.”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을 맞은 2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시진핑은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이던 10년 전 기념식 연설 때와 달리 덩샤오핑을 ‘당의 제2대 중앙 영도 집단 핵심’이라고 수식하며 그가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2022년 출범한 ‘시진핑 집권 3기’의 핵심 구호인 ‘중국식 현대화’를 덩샤오핑 노선 계승이라고 규정했다. “덩샤오핑이 조국 완전 통일의 올바른 길을 실현했다”고 평가하며 대만 통일 의지도 드러냈다. 이날 중국에선 관영 매체와 책·우표·영화·세미나 등이 총동원돼 덩샤오핑을 추모했다.

1904년 8월 22일 쓰촨성 광안에서 태어난 덩샤오핑은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이후 중국의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중국을 고립시킨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개혁·개방을 이끈 인물이다. 희건 검건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로 상징되는, 실용주의 경제 개혁을 실천한 그는 1997년 세상을 떴다.

시진핑이 자국의 경제 불황과 미국의 전방위 압박 등 내우외환 가운데 ‘중국의 구원자’로 꼽히는 덩샤오핑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투영하고, 그 권위를 빌려 국정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소리(VOA)는 “덩샤오핑이 심혈을 기울였던 개혁·개방 치적으로 시진핑이 주창하는 ‘중국식 현대화’를 수호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시진핑 집권 3기의 핵심 기조인 ‘중국식 현대화’는 서구의 현대화 공식을 따르지 않고 ‘일당 체제’와 ‘계획 경제’를 유지하며 2035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중국식 현대화란 개념은 1979년 3월 덩샤오핑이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처음 언급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중국의 일은 중국 상황에 맞춰 중국인 스스로 해야 한다”(1982년)는 말도 남겼다.

중국 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는 지난 16일 게재한 ‘덩샤오핑 동지가 일궈낸 중국 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을 부단히 전진시키자’라는 글에서 덩샤오핑을 마오쩌둥·시진핑과 직접적으로 연결지었다. 이 글은 덩샤오핑 이론은 마오쩌둥 사상을 계승한 것이고, 덩샤오핑의 업적 기념은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강국 건설과 민족 부흥 추진에 의미가 크다고 했다. 시진핑이 마오쩌둥의 정치 유산을 덩샤오핑을 거쳐 물려받아 국가를 부흥시켰다는 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이 글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당사·문헌연구원이 썼다. 이 기관의 수장은 장관급인 취칭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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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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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모 열기는 2년 전 조용히 지나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상하이 등 개혁·개방 중심지를 시찰하며 한 발언들) 30주년과 상반된다. 올해 탄생 120주년을 앞두고는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덩샤오핑을 조명하는 보도들을 쏟아냈다. 공산당이 발행하는 신문인 학습시보는 “덩샤오핑이 결정한 개혁·개방은 40년 이상이 지났지만,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고 심각하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에도 중요하다”고 했다. 중국군(軍)은 지난 19일 개최한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기념 전군 이론 세미나’에서 ‘당이 총을 지휘한다’는 주장을 담은 ‘덩샤오핑 군사건설 사상’을 거론하며 시진핑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중국국가우정국은 덩샤오핑 탄생 기념 우표 2종을 발행했고, 당역사문학연구소는 ‘덩샤오핑의 개혁 사상과 그 실천적 의미’라는 책을 발간했다. 장시성의 출판사 두 곳은 덩샤오핑 일대기를 다룬 책을 냈고, 영화 ‘덩샤오핑의 소도(小道)’(2021년 작)는 22일 중국에서 재개봉했다.

시진핑은 집권 2기 이후엔 장쩌민·후진타오 등 직전의 두 지도자에 비해 덩샤오핑을 덜 언급하고, 마오쩌둥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에 올해 기조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은 2012년 공산당 총서기 취임 직후 첫 지방 시찰지로 광둥성 선전을 찾아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하며 남순강화를 떠올리게 했는데, 이후 연설에선 덩샤오핑 언급이 줄고 마오쩌둥이 강조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진핑이 덩샤오핑이 세운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까지만 최고지도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원칙)’와 전직 공산당 간부 기소 면제 등 일부 유산을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개혁·개방과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는 외부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덩샤오핑이 중국의 경제·기술 성장을 위해 기업 등 민간 분야에 부여했던 자율성과 해외 기업·자본에 대한 혜택이 대폭 사라지고, 국가 주도 경제와 사회 통제가 강화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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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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