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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박근혜 "내가 삼성병원장 꾸짖었다?"…당신이 속은 사진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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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회고록’ 다시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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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첫 탄핵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며 기약 없는 파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4년 9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2021년 12월 31일 사면된 박 전 대통령은 국내 언론 최초로 더중앙플러스 '박근혜 회고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87)'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중앙일보 독자 여러분을 위해 재임 기간 동안의 국정 비화와 최순실 게이트 등 박 전 대통령의 솔직한 심경이 담긴 회고록을 각 파트별로 엄선하여 1화를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The JoongAng Plus(더중앙플러스)’는 중앙일보의 역량을 모아 마련한 프리미엄 지식 구독 서비스로, 재테크·육아·건강 등 134개에 이르는 다양한 시리즈를 구독 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부 - 정책편〉

내가 삼성병원장 꾸짖었다? 사진 한장이 괴담 만들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9249

난 욕 먹고 연금개혁했는데…文, 손 하나 까딱 안 하더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5050

“지구상 이런 나라 몇 있을까”…내가 국정교과서 마음 먹은 순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773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중동 지역에 다녀온 68세 남성 A씨가 중동호흡기 증후군(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첫 확인됐다고 밝힌 것은 2015년 5월 20일이다. 2002년에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호된 경험을 한 것이 기억났기 때문에 만반의 대비를 다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전염병이든 초기 대응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중동에서 시작된 이 메르스는 우리에게 생소한 질병이었다. 나름 대비를 한다고는 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전의 사스 정도를 염두에 둔 대응이었다. 나중에 대처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이지만 사스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질병의 유입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반면 메르스는 내국인에 의해 질병이 유입된 후 의료기관에서 감염이 계속된 것이어서 사스와 양상이 달랐다. 초동 대응 단계에서 허점이 드러났던 것은 이런 배경의 차이 때문이었다.



사우디 체류 사실 숨겼던 A씨…메르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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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확산하던 2015년 6월 12일 대전 대청병원에 군 의료진 24명이 처음으로 투입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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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1일 보건복지부는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대화해야 전염될 수 있다”고 발표했고, 이런 기준에 따라 첫 환자 A씨와 연관된 64명을 격리했다. 하지만 메르스의 전파력은 이전의 호흡기 질병보다 훨씬 강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1일 당일 세 번째 감염자가 발생했고, 그는 첫 번째 확진자인 A씨와 같은 병실에 있었던 환자였다. 이어 26일에는 네 번째 감염자가 발생했고 이후로 거의 매일 1~2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며 두 달 만에 186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중 사망자는 38명이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지금으로선 이런 정도의 감염 상황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국가적으로 큰 위기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네 번째 감염자가 발생한 26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대면보고가 있었다. 일단 호흡기 전염병이 확실한 만큼 확진자와 일반인 사이의 예상 접촉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수준으로 호흡기 전염병이 확산되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정보를 공개하고 차단할 것이냐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도, 법적 토대도 없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코로나19 사태 때도 동선 등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조치 등에 대해 초기에는 사회적 반발이 심했다. 2015년엔 그런 것을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료기관조차 환자나 방문객 등의 정보 공개를 신속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에는 정부가 감염 의심자가 원치 않을 경우엔 주소나 전화번호를 확보할 방법조차 없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런 병에 걸렸다고 알려지는 것이 싫다”며 어디에 들렀었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등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면 정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기본적인 정보조차 확보되지 않으니 정부의 신속한 역학조사나 사전 대응이 불가능했다.

나중에 확인된 것이지만 첫 번째 환자인 A씨는 2015년 5월 11일부터 고열과 기침 증상을 보여 20일까지 무려 4곳의 병원을 다녀간 상태였다. 하지만 A씨는 앞선 세 곳의 병원에선 사우디아라비아에 체류했던 사실을 숨겼고, 의료기관들도 그가 메르스 환자일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A씨가 두 번째로 찾아간 경기도 평택의 한 병원에서 3일간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와 가족들을 통해 이곳저곳으로 퍼지게 됐다.

이런 초유의 상황에서 대통령이 할 일은 현장에서 애쓰는 의료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메르스 사태가 본격화 된 6월 초 메르스 대응의 최일선인 국립중앙의료원 현장 점검(5일)을 시작으로 범정부 메르스대책 지원본부(8일), 경기도 메르스종합관리대책본부 상황실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일선 보건소(12일), 서울대병원 메르스 선별진료소와 격리병동(14일) 등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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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6월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범정부 메르스 대책 지원본부 상황실을 방문해 메르스 방역대응 및 방역지원 상황을 점검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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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래전 잡아둔 6월 14~17일 방미 일정을 미루기로 하고 미국 측에 이를 알렸다. 다행히 미국 정부는 한국의 상황상 정상회담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했다. 12일에도 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20여 분간의 전화통화를 통해 우리 측 입장을 직접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메르스 발발에 따른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어려운 시기에 한국이 도전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줘 무척 고마웠다.

6월 8일은 메르스 사태에서 최악의 날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삼성서울병원에서만 17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등 하루 만에 확진자가 23명이 급증하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결국 문형표 장관은 이날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방역에 구멍이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 실패라기보다는 충분치 못했던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이후 67명의 환자가 더 나와 총 9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메르스 확산의 최대 진원지가 되면서 37일 동안 부분폐쇄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병원 입장에서도 힘들었겠지만 초기 대응에서 문제가 있었던 점도 분명했다.



삼성서울병원장 질책? 분위기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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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확산하던 2015년 6월 21일 삼성서울병원 본관 건물 앞에서 방역 작업이 실시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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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충북 오송에 있는 메르스 진단 검사의 핵심 기관인 국립보건연구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이곳으로 따로 불러 “메르스 확산이 꺾이려면 전체 환자의 반이 나오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어떻게 안정되느냐가 관건이니 삼성서울병원의 모든 감염과 관련된 내용들이 아주 투명하게 전부 공개되고 더 확실히 방역이 되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병원을 잠시라도 드나들었던 것은 환자뿐 아니라 방문객도 있을 수 있으니 방문객의 명단과 동선을 확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니 꼭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이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이 80여 명의 환자를 발생시킨 ‘수퍼전파자’, 14번 환자와 접촉한 이들의 명단을 넘겨달라고 삼성서울병원에 요청했을 때 병원 측이 제대로 응하지 않아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감염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초기 대응에 지장을 초래한 원인이 됐다.

송 병원장은 “메르스 사태 때문에 대통령과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다.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보건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며 최대한 노력을 다해 하루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이때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이 언론에 나가면서 생각지도 않은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통령이 애꿎은 병원 측을 과도하게 질책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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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주시 흥덕구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송재훈 서울삼성병원장과 얘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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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송 병원장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자리였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언론에서는 사진을 교묘하게 배치해 실제 분위기와 다른 프레임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2016년 9월 경주에 큰 지진이 났을 때다.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자원봉사자 분들이 악수를 청해 나도 격려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런데 나와 그분들 사이에는 진흙으로 뒤덮인 바닥이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이동하는 순간 작업하시던 몇몇 분들이 “여기 들어오지 마세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진흙이 피해 복구에 사용되는 작업용 흙이라서 밟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순간 여자 경호원이 놀라서 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허리를 꽉 잡은 장면이 사진에 찍혔고 이튿날 한 신문의 페이스북에는 “대통령 발에 진흙이 묻는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 by 청와대 경호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것은 삽시간에 퍼졌다. 어느 정치인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 소문이 나돌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 쪽을 보면서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꼭 다른 데를 쳐다보고 있을 때만 사진을 찍어 내보낸다.

어쨌든 당시 최선을 다하고 병원이 폐쇄되는 아픔까지 겪었던 삼성서울병원 직원들은 지금도 트라우마가 있다고 들었다. 메르스를 퍼뜨린 병원처럼 다뤄지면서 많은 눈총을 받아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이다. 초기에 다소 병원 측의 실수가 있기도 했지만, 삼성서울병원이 오명을 뒤집어 쓴 데는 정치권의 책임도 없지 않았다.



“의사가 자가격리 어기고 행사 참석” 박원순 주장 사실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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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2015년 6월 4일 저녁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메르스 관련 긴급 브리핑을 했다. 이날 박 시장은 "메르스 확진 환자인 서울의 한 의사가 격리 통보에도 불구하고 1400명 규모의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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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6월 4일이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오후 10시 넘어 갑자기 긴급 브리핑을 열고, 35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의 한 병원 의사가 자가격리를 어기고 5월 30일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와 병원 심포지엄 등 행사에 참석해 사람들과 접촉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향후 서울시의 메르스 상황을 직접 진두지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KBS에서 “의사가 ‘자가 격리’ 어기고 행사 참석”이라는 보도가 났고, 해당 병원이 삼성서울병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원과 의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35번 환자가 증상이 시작된 것은 5월 31일이었고 이날부터 격리에 들어가 확진 통보를 받은 것은 6월 2일이었다. 박 시장은 나중에야 35번 환자에게 사과했지만, 이미 삼성서울병원에는 온갖 비난이 쏟아진 뒤였다.

사실 감염병 문제는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 지역 따로, 저 지역 따로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튿날 메르스 대응 점검을 위해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은 자리에서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메르스를 해결하려 할 경우 혼란을 초래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우리가 경험도 해보지 못한 감염병일수록 중앙방역대책본부로 창구를 일원화해 중앙 부처와 지자체 간에 계속 협업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나중에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확인됐다.

메르스 사태는 우리로선 처음 경험한 전염병이었고, 그러다 보니 정부의 대응이 초기에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통해 이후 여러가지 경험이 쌓이면서 이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나는 메르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직후부터 국가 방역 체계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규모의 전염병이 발생할 때는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메뉴얼을 만드는 한편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기반도 정비했다. 감염 의심자에 대한 정보를 빨리 알아내지 못하면 신속하게 역학조사나 대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카드사나 통신사 등을 통해 확진자 및 접촉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토록 한 것도 이때였다. 덕분에 코로나19 사태 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신속하게 감염자와 접촉자를 추적해 전파를 막을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개선은 진단 시약이나 감염 진단 장비 등을 민간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급한 상황에서는 빨리 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허가를 신속하게 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 덕분에 민간 기업이 신속하게 진단 시약을 개발하고 출시할 수 있게 됐는데 이것 역시 코로나19 사태 때 많은 도움이 됐다. 결론적으로 메르스 사태를 겪고 난 후 구축한 방역 인프라가 코로나19 시대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니 이때의 고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제2부- 정책〉다음 편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난 욕 먹고 연금개혁했는데…文, 손 하나 까딱 안 하더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5050

“지구상 이런 나라 몇 있을까”…내가 국정교과서 마음 먹은 순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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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회고록’ 다시보기 목차

〈인터뷰 영상 풀버전〉

박근혜 前대통령 침묵 깼다 “탄핵 제 불찰, 국민께 사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5342





〈1부 - 최순실과 탄핵〉



“최순실과 이혼한 줄도 몰랐다”…朴이 밝힌 ‘정윤회와 인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1726

문건 배후엔 김무성·유승민? 朴 “촉새 女의원의 음해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665

“대통령님, 비덱이 뭔가요?” 잡아뗀 최순실, 난 믿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3853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 참모 말린 이 말 직접 넣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4162

시중에 나돈 ‘탄핵 찬성’ 62명…날 힘들게 한 명단 속 그 이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4472

최순실 일탈 왜 보고 안됐나…어렴풋이 짐작 가는 게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551





〈3부 - 국내 정치편〉

안대희·이완구 다 날아갔다…“가슴 쓰렸다” 총리 잔혹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9668

朴 “내가 혼외자 터뜨려 채동욱 찍어냈다? 황당하단 말도 아깝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9967

통진당 해산 반대한 문재인…朴 “위기때 실체 드러나는 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0295

박근혜가 직접 택한 남자…“그가 내 앞에서 울먹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922

그날 밤, 연락 끊은 유승민…그와의 관계 그때 파탄 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6770

유승민 그리 키울 일 아니었다…2016년은 정말 되는 게 없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7097

“내가 알던 진영 아니었다” 朴 놀라게한 측근의 돌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7448





〈4부 - 외교안보편〉

“위안부 합의 들은 적 없어” 윤미향 오리발, 말문 막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717

朴 커터칼 테러때 도착한 쇠고기, 거기엔 아베 편지 있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960

안 그래도 ‘최순실’ 터졌는데…朴, 왜 논란의 지소미아 집착했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7297

개성공단 폐쇄, 내가 선수쳤다…뻗대던 北, 그제야 꼬리내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5335

김관진 “협상 결렬” 문 박차자, 김양건 “뭔 결렬” 팔 붙잡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5632

그토록 공들여 성공한 첫 방미…하필 그때 윤창중이 사고쳤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8606

中 전승절때 구석 밀려난 北, 최용해는 나와 눈 마주치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0748

한국형 전투기가 되겠냐던 文, KF-21 출고식서 “우리가 개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1087

가발까지 쓴 표창원·손혜원…춤추며 ‘사드 괴담’ 퍼뜨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466





〈5부 - 세월호의 기억편〉

“내가 정윤회와 호텔서 밀회?”…朴 직접 밝힌 ‘세월호 7시간’ (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531

세월호 그날 청와대 왜 갔나…朴 밝힌 ‘최순실 미스터리’ (중)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874

朴 “나도 흥분해 경질했다”…교육장관 ‘황제 라면’ 진실 (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2193





〈6부 - 검찰 수사편〉

朴 “왜 더러운 사람 만드냐” 검사 면전서 서류 확 밀쳤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5628

최순실과 눈도 안 마주쳤다, 그녀는 중요한 말은 쏙 뺐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5911

“딱 하나 사실대로 말 안했다” 검찰조사 그날, 박근혜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6280

“뇌물죄, 이미 정해져 있었다” 판사도 놀란 朴 최후 입장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326





〈7부 - 수감생활편〉

컵라면 물 가득 부어 끼니…의사는 내 어깨 보고 “참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878

동생 지만 면회도 거절했다…박근혜가 감추고 싶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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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희미한 미소 띤 채 “내일 감옥 가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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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참 면목없고 늘 죄송했다”…당선인 돼 찾아온 ‘특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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