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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北하사 1명 휴전선 지뢰밭 지나 ‘도보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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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살기 어려워” 강원고성으로

서해 北주민 이어 12일만에 귀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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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20일 새벽 강원 고성군 일대 동해선 인근 지역 휴전선(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어와 우리 군에 귀순했다. MDL을 넘어온 북한군은 신병 확보차 현장에 출동한 우리 군 장병을 보자마자 자신의 이름과 소속, 계급 등을 밝히면서 “너무 살기 어려워 남으로 내려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이 걸어서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건 공개 사례 기준으로 2019년 7월 이후 5년 만이다. 앞서 8일에는 북한 주민 1명이 인천 강화군 교동도 북측 한강 하구 중립수역으로 ‘도보 귀순’ 했다.

군 안팎에선 지난달 21일부터 ‘풀 가동’ 중인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 주민과 북한군을 동요시켜 잇단 귀순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새벽 북한군 1명이 동부전선의 강원 고성군 동해선 인근 오솔길을 걸어서 MDL을 넘어와 육군 22사단 지역으로 귀순했다. 합참은 감시 장비로 MDL 이북 지역에서부터 북한군을 포착하고, 추적·감시하면서 정상적으로 귀순 유도 작전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올 초부터 수천 명의 병력을 동원해 MDL 일대 비무장지대(DMZ) 전역에 수만 개의 지뢰를 추가 매설하고 불모지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고성 인근 동해선 지역에도 다량의 지뢰가 매설됐지만 북한군은 이를 우회해 귀순한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북한군은 장교가 아닌 병사로 계급은 하사로 전해졌다.

대북확성기 튼 강화-고성서 잇단 귀순… “심리적 동요 가능성”

北하사 1명 ‘도보 귀순’
軍 “남하전 포착… 귀순 유도 작전”
“지뢰 작업에 불만 귀순 결심” 관측
‘붉은 노을’ 등 K팝 확성기 방송 한달… 軍안팎 “갈수록 효과 위력 커질 것”


20일 이른 새벽 동부전선의 강원 고성군 휴전선(군사분계선·MDL) 이북 지역. 아직 컴컴하고 야심한 시각, 고요를 뚫고 우리 군 열상감시장비(TOD)에 남하하는 사람의 형상이 포착됐다. 그는 동해선 인근 개활지를 따라 MDL 쪽으로 남하했다. 군복 차림으로 몸을 최대한 낮춰 조심스럽게 수풀에 몸을 숨겼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우리 군은 이 모습을 통해 귀순 시도 중인 북한군이라고 판단했고, 해당 부대는 바로 ‘귀순 유도 작전’에 돌입했다.

군은 이중 삼중의 감시장비로 이 북한군의 남하 상황은 물론이고 다른 북한군의 추격 여부 등까지 관측했다. 이후 무장 병력을 출동시켜 대기시킨 뒤 북한군이 MDL을 넘어온 직후 신병을 바로 확보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우리 군 장병을 보자마자 자신의 신상을 또박또박 소개하면서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 휴전선 대규모 지뢰밭 뚫고 귀순

이날 북한군이 넘어온 고성 인근 동해선 일대는 올 초부터 북한이 대규모 지뢰 매설 작업을 진행 중인 곳이다. 지난해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 전면 단절을 선언한 이후 북한군은 비무장지대(DMZ) 전 구간은 물론이고 경의선·동해선 일대에 다량의 지뢰를 매설하는 한편으로 철로와 침목까지 제거했다. 이렇게 다량의 지뢰를 매설한 건 탈북 방지 목적이 큰 것으로 우리 군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넘어온 북한군은 결과적으로 이런 대규모 ‘지뢰밭’을 뚫고 귀순에 성공했다. 군 소식통은 “귀순한 북한군은 철로를 따라 남하한 게 아니고, 철로 인근 오솔길에서 포착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선 귀순한 북한군이 지뢰 매설 작업 등에 동원된 병력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뢰가 묻힌 구간 등 현지 작업 상황을 훤히 인지한 가운데 사전에 계획을 세워 지뢰밭을 우회하는 ‘귀순 루트’로 탈북에 성공했다는 것.

북한은 기록적 폭염과 집중 호우에도 여군까지 동원해 DMZ 전 구간에 여전히 지뢰 매설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0여 차례의 폭발 사고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이 우리 군 감시장비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 북한군이 지뢰 작업 중 혹독한 작업 환경에 대한 불만을 품고 귀순을 결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한국 가요 듣고 심경 변화로 귀순 가능성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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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8일 북한 주민 1명이 인천 강화군 교동도 북측 한강 하구 중립수역으로 걸어서 귀순한 지 12일 만에 북한군이 또 귀순한 것은 이례적이다. 고성과 교동도 모두 대북 확성기 방송이 들리는 곳이다.

군 안팎에선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를 전 전선에 걸쳐 전면 가동한 효과가 한 달도 안 돼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군은 북한의 잇따른 대남 오물풍선 테러에 맞서 지난달 21일부터 모든 전선에서 고정식(24대), 이동식(16대) 확성기를 매일 10시간 이상씩 가동해 대북 심리전 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재송출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의 가청권(최대 20∼30km)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과 전방 부대의 북한군이 심리적 동요를 겪을 것”이라며 “갈수록 대북 확성기의 효과와 위력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대북 확성기에선 윤도현의 ‘나는 나비’, 빅뱅의 ‘붉은 노을’,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88 서울 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 등이 자주 방송됐다고 한다. 군 소식통은 “이런 노래를 듣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귀순했을 수도 있다”며 “관계 당국에서 해당 북한군을 상대로 관련성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또 대북 확성기 방송에는 “언제까지 무능한 김정은을 지도자라 믿고 따르기만 할 거냐”, “지옥 같은 노예의 삶에서 탈출하라” 등 김정은 정권에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 또 방탄소년단(BTS)의 히트곡 등 K팝과 일기예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상 등 내용도 있다. 그런 만큼 식량난 악화 등 김정은 체제에 염증을 느낀 북한군과 북한 주민이 확성기 방송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뒤 육상이나 해상으로 추가 귀순을 시도할 가능성도 크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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