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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응급실, 지금도 위기인데…추석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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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상황판에 줄줄이 뜬 ‘진료 불가’…구급상황관리센터 전화도 ‘먹통’

코로나 재유행에 환자 6배 급증…정부는 “일부 문제, 곧 정상화” 입장

경향신문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내 응급의료센터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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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도 의료진도 한계…2차 병원 응급실까지 과부하

서울에서 29개월 자녀를 키우는 김수영씨(39·가명)는 지난 주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몇 시간 동안 고열이 계속됐고 아이가 “배 아파”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씨는 119를 눌렀다. “요즘 응급실에 가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119를 통해 응급처치 같은 대처법을 구할 생각”이었다.

전화를 받은 119 종합상황실 직원이 당황하며 “구급상황관리센터(구상센터) 통화량이 너무 많아서 연결이 아예 안 된다”고 했다. 119에 연락하면 상황실에서 시도마다 있는 구상센터로 다시 연결해준다. 구상센터에서 대처법이나 진료 가능한 주변 병의원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이 과정 자체가 막힌 것이다. 전화가 끊기는 일이 반복되자, 우선 김씨 집으로 구급차와 구급대원을 보내주기로 했다.

김씨 집에 도착한 구급대원 3명이 인근 병원에 다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인근 2·3차 병원은 모두 “소아 응급 진료가 불가하다”며 거부했다. 다행히 집에서 10㎞가량 떨어진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승인이 떨어졌다. 김씨는 “병원에 도착해 대기하는 중에 경증·비응급은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혹시 진료를 못 보고 돌려보내질까봐 무서웠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의·정 갈등 사태가 6개월째 지속되면서 응급실에 걸린 과부하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고음이 잇따른다. 경증 환자들이 다시 응급실을 찾으면서 환자 수는 늘어나고 있는데 장기간 초과근무를 하며 버티던 의료진이 대형병원들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응급 진료는 축소되고 있다. 의료진은 이대로면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는 추석 연휴에 응급실 위기가 폭발할까 우려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도 사실상 빈손이 될 가능성이 높아 정부가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기에 앞서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병원 상황을 제공받는 ‘응급실 종합상황판’ 사이트를 통해 권역 및 지역의료센터 응급실 상황들을 조회했다. 병원들은 평일에조차 응급진료가 불가한 상황들을 다급하게 알리고 있었다.

경북대병원은 평일인 19·20일 오전에 성형외과·비뇨의학과·이비인후과·피부과·안과 등 10여개 진료과가 ‘의료진 부재로 응급 진료 불가’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실은 ‘신경외과 의료진 부족으로 뇌출혈수술, 뇌경색의 재관류중재술 진료 불가능’(20일), 양산부산대병원은 ‘[정형외과] 소아 포함 모든 파트 진료 및 수술 불가능’(16일),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해당과 인력 부족으로 장중첩/폐색(영유아), 소아 수술 불가’(14일), 안동병원은 ‘응급실 내 격리병상 부족’ 등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지난 2월 말 전공의 이탈 후 한시적으로 줄어들었던 응급실 환자 수는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다시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평일(5~9일)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1만9347명으로, 의료공백 사태 직전인 2월 첫째 주 평일(1만7892명)보다 많았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응급실 코로나19 내원 환자 수는 지난 6월 2277명에서 7월 1만3495명으로 한 달 만에 6배가량 급증했다.

하지만 의료진과 병상은 부족하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인력 부족 등으로 응급실 병상을 축소해 운영하는 기관은 올해 2월21일 6곳에서 7월31일 기준 24곳으로 늘었다. 5월부터 병상을 축소한 곳은 20곳이 넘었다.

정부는 이 같은 응급실 문제에 대해 일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며, 조만간 정상화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체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5곳(1.2%)에 해당하는 것으로, 응급실이 완전히 마비된 게 아니라 일부 기능이 축소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시적으로 운영이 제한된 응급실도 신속히 정상 진료를 개시했거나, 향후 정상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장 의료진은 2차 병원까지도 응급실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고 전한다. 2차 병원에서 일하는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2차 병원들은 이미 난리가 났다”며 “일반 병원이 다 쉬어 응급실만으로 버텨야 하는 추석연휴 때는 환자들이 길에서 떠돌아다니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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