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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정동칼럼]‘알권리’ 후퇴시킬 행안부의 입법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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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된 이후 26년이 지났다. 그동안 긍정적인 변화들도 있었지만, 비밀주의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검찰, 법무부, 대통령비서실, 감사원 같은 기관들은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건의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를 거부하면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의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이다. 그런데 이의신청은 정보공개를 거부한 기관이 스스로 재심사를 하는 제도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행정심판을 해도,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행정부 소속인 행정심판위원회도 정보공개에는 소극적인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행정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일반 시민이 인지대·송달료까지 납부해가면서 행정소송을 하기란 쉽지 않다. 대법원까지 가게 된다면 3년 안팎의 시간이 걸리고,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만약 시민이 행정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면, 공공기관 쪽 변호사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실제로 1심에선 시민이 승소했지만, 2심과 3심에서 패소해 1320만원의 변호사비용을 물어내게 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익소송에 대해선 원고인 시민이 패소하더라도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관련된 법 개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게다가 대법원까지 승소 판결을 받아도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시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까지 있다. 지금 검찰이 특수활동비와 관련해서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 다시 행정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 몇년이 걸리는 과정을 또 밟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흔치는 않지만, 공공기관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보가 존재하는데도 ‘정보 부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그런 행태를 보였다. 무려 6805쪽의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존재하는데도 소송 과정에서 ‘자료가 없다’고 허위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정보공개법은 허점이 많다. 실효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으면, 동일 사안에 대해선 정보공개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정보가 존재하는데도 공공기관이 ‘정보 부존재’라고 허위 주장을 한 경우엔 형사처벌도 해야 한다. 정보공개법상의 기본적 의무 사항을 지키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해선 제재도 가해야 한다. 심지어 아직도 팩스로 정보공개청구서를 접수하는 공공기관이 있을 정도다.

정보공개와 관련된 특별행정심판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행정소송보다는 행정심판을 통해서 신속하게 정보가 공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보는 시의성이 생명인데, 몇년이나 시간이 걸리고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행정소송을 통해서는 국민의 ‘알권리’가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의 행정심판 제도는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부족해 정보공개와 관련해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세사건을 담당하는 조세심판원이 따로 있는 것처럼, 정보공개심판원을 별도로 두는 게 필요하다. 투명성 확보는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이므로, 특별행정심판 기구를 설치해서라도 관료주의와 비밀주의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정보공개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31일 ‘부당하거나 사회 통념상 과도한 정보공개청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런 경우에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답하지 않고 종결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당’이나 ‘사회통념상 과도한’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국민의 정보공개청구권을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반(反)헌법적이고 반(反)민주적인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고, 투명한 정보공개는 민주주의의 기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극소수의 청구인들이 1인당 연간 수천건 이상의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법 개정 추진의 근거로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온라인 정보공개시스템(www.open.go.kr)의 이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약관을 개정해도 되는 일이다. 몇몇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접근법이다. 더구나 검찰과 대통령비서실 등이 정보공개를 회피하기 위해 온갖 잔꾀를 쓰고 있는 마당에 이런 식의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향신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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