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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AI는 제2의 닷컴 버블” vs “산업 아닌 주가거품일 뿐”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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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대세론’ 의구심 증폭

월가 “AI로 돈 벌 수 있나”

빅테크 올해 투자자금 6분의 5 날려

“스타트업 주도 닷컴과 달라” 반론도

빅테크, 돈 못 버나 안 버나

“AI 모델 무료 제공… 진입장벽 구축

경쟁자들이 사라지면 가격 올릴 것”

실리콘밸리는 상승세 확신

“AI 초기단계… 사라질 수 없는 산업

기꺼이 돈낼 차별화 서비스가 관건”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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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미국을 포함해 한국, 일본 등 주요 증시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급등했다가 급락한 뒤 다시 회복하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인공지능(AI) 버블(거품)론이 지목된다. 챗GPT 등장 이후 AI가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며 가열하게 달렸으나 맞는 방향인지 의구심이 생겨난 것이다. 일각에선 현 상황을 닷컴 버블에 비유하며 AI도 거품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 산업은 현재 어디에 서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AI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봤다.

◆AI 거품론의 시작

AI 거품론은 “AI로 돈을 벌 수 있나”에서 출발했다. 숫자에 민감한 월스트리트에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실리콘밸리의 최고 벤처투자사 중 하나인 세쿼이아캐피털의 데이비드 칸 대표는 ‘AI의 6000억달러 문제’라는 글을 자사 블로그에 올리며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이 AI 프로젝트나 기술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필요한 매출이 올해 연간 추정치 기준으로 6000억달러(약 822조60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매출은 후하게 가정해도 1000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빅테크가 AI에 투자한 자금의 무려 6분의 5가 수익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허공에 날아간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주식 애널리스트인 짐 코벨로도 보고서에서 “빅테크들은 향후 몇 년간 AI 설비투자에 1조달러 이상을 지출할 예정이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다”며 “세상에 쓸모가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것을 과도하게 구축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투자가 쏠리지만, 기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인터넷 시대가 출현한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당시처럼 결국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날개를 단 엔비디아 주가도 시간이 지나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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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닷컴 버블 당시엔 중소·스타트업이 주도했고, AI는 자본력이 막강한 빅테크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닷컴 버블과 AI 열풍은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캐피털 투자자 중 한 명이자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 기업인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설립자인 비노드 코슬라는 “닷컴 버블이 일어났던 이유는 주가가 올랐다가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인터넷 트래픽은 전혀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글·MS 등 AI 기업은 왜 돈을 못 버나

그러면 왜 빅테크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전문가들은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안 버는’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김유철 LG AI연구원 전략부문장은 “빅테크는 AI 모델을 개발해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어서 수익이 안 나는 것”이라며 “경쟁사를 줄이는 시도를 하는 중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AI 모델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 자본력을 갖춘 기업만이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부문장은 “오픈AI나 MS가 큰돈을 내고 언론사 데이터를 사는데, ‘이렇게 투자할 수 없으면 뛰어들지 말라’는 의미”라며 “진입장벽을 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쟁자들이 사라지면 결국 AI 가격을 올릴 것”이라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신산업이 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종욱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도 “현재 빅테크는 돈이 많고, 실패한 기업들의 학습효과가 있으며, 지키는 싸움을 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의 ‘과소 투자의 위험이 과잉 투자의 위험보다 훨씬 크다’와 에이미 후드 MS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우리는 수요가 있을 때만 투자한다’는 발언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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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상승세는 이어질 것인가

숫자로 상황을 판단하는 월가와 달리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AI에 대한 지속적 투자를 확언하는 중이다.

알파벳은 올해 분기별 자본 지출을 120억달러(약 16조3500억원) 이상으로 예상했다. 올해 메타는 약 400억달러, MS는 560억달러 투자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AI 거품은 주가 거품이지, 산업 거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발전 과정에서 부침은 있겠으나 그럼에도 아직 AI 산업은 초기일 뿐이며, AI 자체가 확대되는 추이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인터넷 발전에 AI 발전을 대입해보면 이제 오픈AI라는 넷스케이프가 나온 것”이라며 “지금은 AI 비즈니스 극초기다. 버블론을 이야기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넷스케이프가 1993년 웹브라우저를 내놓으면서 지금의 인터넷 생활이 시작됐다. 이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야후나 아마존 등이 등장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나오고, 이커머스, 배달 등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 교수는 “AI 시대 야후나 아마존, 페이스북 등은 창업하지도 않았다”며 “지금 이제 막 창업하고 있는 회사 중에서 도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문장은 “AI를 쓰면 생산성이 오른다. 사라질 수 없는 산업”이라며 “지금은 AI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꺼이 돈을 낼 가치가 있는 실질적이고 차별화된 AI 서비스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코슬라는 AI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에 비유했다. 그는 “이 기술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새로운 플랫폼이다. 각각의 새로운 플랫폼은 애플리케이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면서 “AI에 대한 성급한 투자로 인해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거품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반 기술이 더는 성장하지 않고 중요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진경·서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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