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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검찰과 법무부

통신조회 때리다 부패·마약수사 막힐라… 檢 “수사 지연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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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검찰 깃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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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검찰에 ‘A사 대표가 거액의 현금을 음료수 박스에 담는 것을 목격했다’는 제보 한 통이 접수됐다. 현금을 음료수로 가장한 ‘검은 돈’이 의심되는 상황. 하지만 이 밖에 뚜렷한 단서가 없어 수사 진행이 쉽지 않자, 검사는 법원으로부터 통신 영장을 발부받았다. A사 대표의 전화 수∙발신 내역을 확인해 누구와 언제 통화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통신사로부터 회신 받은 두 달 치 통신사실 확인자료에는 A사 대표와 통화했던 100여 건의 번호만 나열돼있었다. 수사 검사는 해당 번호 가입자의 이름과 주소 등 간단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통신이용자정보 조회(통신 조회)’를 실시했다. 그 결과 범행이 의심되는 날짜 전후로 A사가 납품하고 있는 공기업 사무실 번호로 전화한 기록이 나타났다. 이에 검찰은 범위를 좁혀 수사를 진행한 결과 A사 대표가 해당 공기업을 상대로 납품 청탁 명목의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추가 수사를 진행해 비리 관련자 수십명 구속에 성공했다.

영장으로 확보한 통화 내역을 바탕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상대방의 이름과 주소 등을 확인하는 검찰의 ‘통신 조회’를 두고 야권에서 ‘사찰 논란’을 제기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일선 수사 현장과 괴리된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과 경찰의 통신 조회는 정치적 사건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A사 사례같이 각종 부패∙강력 사건의 기초 수사에 활용되고 있다. 한 법조인은 “수사 과정에서 통신 조회를 임의로 제한한다면 대형 비리나 마약 범죄를 밝혀내는 데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14일 말했다.

◇ 檢 “공범 파악에 필수”

수사기관이 통신 영장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료는 전화 상대방의 번호와 시점, 통화 시간 정도뿐이다. 해당 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최근 논란이 된 통신 조회다. 통신 조회는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통신사에 공문을 보내면 확보할 수 있다.

통신 조회는 수사 초기 혐의자나 공범을 신속하게 특정하는 과정에서 활용된다. 예컨대 마약 수사 시 경찰이 말단 판매상을 붙잡아 통화 내역을 확보했다면, 통신 조회를 통해 판매상이 연락한 유통책과 총책, 구매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범죄가 벌어진 기간이 길수록 통화 내역도 많아져 통신 조회로 신속하게 공범을 추려내야 한다.

만약 수사기관이 영장으로 통화 내역을 확보하고도 통신 조회를 할 수 없게 된다면, 해당 연락처로 수사관이 일일이 전화해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초기 대응이 중요한 강도, 보이스피싱, 성폭력 등 사건에서 일일이 영장을 받아 통화 대상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되면 범인 검거의 적기를 놓칠 수밖에 없다”며 “범죄 피해 확산을 제때 막지 못하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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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언론인 사찰 규탄 및 통신이용자정보 무단 수집 근절 방안' 기자회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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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국회 모두 “영장 불필요”

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통신 조회의 위헌성 문제를 검토하면서 법원의 영장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헌재는 “통신 자료 제공 요청은 강제력이 개입되지 않은 임의 수사에 해당한다”며 “수사기관의 통신 자료 취득에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백히 밝혔다. 검찰과 경찰이 통신사에서 받는 이용자 정보에는 성명, 연락처,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정보에 한정되고 민감한 정보는 포함돼있지 않다는 이유다. 다만 헌재는 통신 조회 시 사후 통지 절차가 필요하다며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1대 국회에서는 통신 조회를 규제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논의됐다. 이때에도 통신 조회에 대한 법원 영장제도가 검토됐지만, 수사 공백 우려를 염려해 도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가입자 정보를 조회한 뒤 사후에 통지하는 방식으로 법이 개정됐다. 최근 민주당은 기초적인 통신 정보도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조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 통신 조회, 10년 전보다 1/3 감소

현행법은 수사기관이 통신 정보를 제공받은 후 30일 이내 조회 내용‧사용 목적 등을 통지하도록 규정한다. 즉, 통신 조회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조회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 한 부장검사는 “추후 통지할 것을 알고 연락처를 조회한 건데 사찰 논란이 웬말”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의 통신 조회 건수도 최근 10여 년간 줄어드는 추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에 의한 통신 조회는 2014년 1296만여 건 이뤄졌으나, 작년 463만여 건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검찰의 통신 조회는 426만여건에서 약 148만건으로 줄었다. 약 3분의 1로 감소한 셈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 때는 수사기관에서 매해 500만~600만여 건씩 통신 조회가 이뤄졌다. 대검 관계자는 “특정 시점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통신 조회를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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