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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개념 올림픽' 큰소리치더니...'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 파리 올림픽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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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에 오륜기가 설치된 가운데 지난달 29일(현지시간)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렸던 트로카데로 광장의 챔피언스 파크에서 메달리스트 퍼레이드가 열렸다. 파리=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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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중심부의 센강을 가로지르는 화려한 개막식과 '저탄소' '친환경'을 표방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한 2024 파리 올림픽이 갈수록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

개막식 때 한국을 '북한'이라 소개한 건 실수라 쳐도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개막식 공연이 녹화 방송이라는 게 밝혀져 '사기극'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더군다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선수촌과 버스에 에어컨을 없애고, 채식 위주의 식단이 이어지자 선수들의 불만은 폭주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수년간 유럽의 문제로 대두된 체감온도 40도에 이르는 '폭염'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난과 함께 테러의 위험 속에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 없는 올림픽으로 평가될 전망이다.

'폭염' 대비에 실패한 올림픽..."찜통버스는 9,000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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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경기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샤토루 CNTS 사격장에서 30도가 넘는 더위에 상의를 탈의한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샤토루=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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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이 가장 질타받는 부분은 파리를 뜨겁게 달구는 폭염에 대한 대처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친환경적인 올림픽을 선언하면서 선수들이 이동하는 버스와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늘 하나 없는 야외 경기장에선 선수, 코치진은 물론 중계진까지 햇빛을 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 체조 영웅 시몬 바일스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해 여러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바일스는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체조 단체전 결승전 직전 SNS에 영상을 올려 '찜통버스'를 겨냥했다. 그는 "버스에 에어컨이 없어 기온이 9,000도다. 아, 그리고 (이동시간이) 45분이나 걸린다"고 꼬집었다.

이날 파리의 기온은 36도로 프랑스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고, 마르세유와 니스 등 프랑스 남부 지역은 41도를 넘겼다. 최근 수년간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환경을 이유로 사실상 에어컨 설치를 거부한 조직위의 강행은 염치없어 보인다.

한국 탁구대표팀도 찜통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훈련장 근처에 마련된 숙소에서 몸을 풀었다. 대한탁구협회가 찜통버스에서 40분 이상 보내며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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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프랑스 파리 생드니에 위치한 2024 파리 올림픽 선수촌 내 한국대표팀 숙소가 공개됐다. 대한체육회는 선수들이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별도의 냉풍기를 공수해 각 선수들의 방에 배치했다. 파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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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선수들이 속출하는 건 당연했다. 영국 BBC방송은 "올림픽 선수들이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숙면이 필수적이지만 일부 국가대표팀은 더위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마니아 탁구선수 베르나데트 소크스는 "방에 선풍기가 있지만 충분히 강하지 않다. 그래서 밤에 방문을 열어두고 자고 있다"고 토로했다.

AP통신은 이에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한 더위가 빈번하고 강렬해지면서 연이은 기록적인 지구 온난화가 나타났다"며 "조직위는 선수촌에 에어컨 대신 바닥 냉방 시스템과 단열재를 사용하는 등 저탄소를 목표로 했다. 그러자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자체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저탄소 의미가 퇴색됐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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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한국시간)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전을 중계하고 있는 SBS의 중계진이 양산을 손에 들고 방송하고 있다. SBS 중계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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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5개를 모두 싹쓸이한 양궁 경기장은 그 어느 때보다 태양이 강렬했다. 주요 경기가 현지시간으로 주로 낮 12~2시 사이에 치러져 한국 중계진도 햇볕에 곤혹을 치렀다. 국내 지상파 방송 3사는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번갈아 가며 양산을 들면서 "양산 들어드릴까요?" "이번엔 제가 (양산을) 들겠습니다" 등 멘트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중계 방송 중엔 기피하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해설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한 방송관계자는 "양궁 종목은 야외에서 진행하는 터라 중계석에 그늘막이 설치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은 뜨거운 햇볕과 폭염에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정말 '환경 올림픽'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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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생드니에 있는 2024 파리 올림픽 선수촌을 찾아 식당에서 배식판을 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파리=EPA·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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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쉬어야 하는 선수들은 먹거리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탄수중립'을 표방한 '강제' 채식 위주의 식단이 문제가 됐다. 열량 소모가 많은 선수들은 육류를 기반으로 단백질 섭취가 필수지만 파리 올림픽은 이를 외면했다.

선수촌 식단에 대한 불만이 폭주했다. 팔레스타인 수영선수 야잔 알바왑은 "도쿄 올림픽에도 갔었는데 여기 음식은 끔찍하고 품질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예멘의 육상선수 사미르 알야페이는 "첫 며칠 동안 모든 선수는 하루에 과일 두 조각만 받을 수 있었다. 내 식단에는 더 많은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필요하다"고 토로했고, 미 체조 대표팀의 헤즐리 리베라도 "선수촌에서 먹는 음식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바일스는 "선수촌에서 제대로 된 프랑스 음식을 먹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미국 요리가 더 건강하다. 선수촌 음식은 별로 맛있지 않다"고 선수촌 음식에 불만을 드러냈다.

오죽하면 노르웨이 수영선수 헨리크 크리스티안센은 SNS에 "초콜릿 머핀은 10점 만점에 11점"이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주된 음식보다 디저트가 낫다는 비아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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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퐁텐블로 프랑스국가방위스포츠센터(CNSD)에 마련된 한국 선수단의 올림픽 사전 캠프 코리아 파리 플랫폼 모습이 공개됐다. 퐁텐블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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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은 자국 선수단에 직접 음식을 제공했다. 대한체육회는 파리 외곽에 임시 급식센터를 마련, 진천선수촌에서 파견된 15명의 조리사를 통해 도시락을 만들어 선수촌 등에 배송했다. 육류가 부족하다는 파리 선수촌과 달리 한국 도시락에는 매 끼 육류가 포함됐다.

영국도 유명 셰프를 고용해 선수들을 위한 요리를 준비했다. 앤디 앤슨 최고경영자(CEO)는 "선수촌 식단은 계란, 닭고기, 특정 탄수화물 등이 충분치 않고 선수에게 생고기가 제공되는 등 음식 품질 문제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종목에 따라 체중을 늘리거나 줄여야 하는 선수들의 요구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제공했다.

수질오염으로 파리 시민들조차 들어가지 않는 센강에서 무리하게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수질악화로 1923년 이후 100년 이상 방치된 센강에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등 경기가 펼쳐져서다. 파리시는 2015년부터 정화 사업에 15억 유로(약 2조2,000억 원)를 쏟아부었으나, 개회식 날 폭우로 폐수가 흘러든 센강은 수질이 더욱 악화됐다. AP통신은 "남자부 트라이애슬론 일정이 하루 미뤄졌지만 조직위는 트라이애슬론과 마라톤 수영을 센강에서 안전하게 개최할 수 있다는 확고한 주장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주최 측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면 트라이애슬론이 듀애슬론(철인 2종)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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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센강에서 2024 파리 올림픽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여자부 개인전 경기가 열려 선수들이 출발하고 있다. 파리=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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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알렉산드르 3세 다리에서 2024 파리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열려 선수들이 역영을 하고 있다. 트라이애슬론 남자 경기는 30일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센강 대장균 검출 수치 초과 등 수질 문제로 연기됐다. 파리=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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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달 31일 트라이애슬론 남녀 개인전에 출전한 선수들이 센강에 뛰어들었다. 이날 경기를 마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앙리 쇼이만은 센강에서 수영하는 동안 입을 다물고 역영을 펼쳤다. 쇼이만은 프랑스24 방송에 "수영할 때 물을 삼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힘들 수 있어서다"라며 "이 경기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경기를 하고 싶고,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자신이 건강을 해칠 것을 알면서도 센강에 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센강에 뛰어든 선수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캐나다의 다일러 미슬로추크는 결승점을 통과하고 10여 차례 구토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이날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한 클레어 미셸(벨기에)은 혼성 계주에 기권했고, 아드리앙 브리포드(스위스)도 대장균에 감염되는 등 센강의 수질 오염 논란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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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센강에서 진행된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10km 마라톤 결승전에서 브라질의 아나 마르셀라 쿠냐가 수영을 하며 수분 공급 병을 던지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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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수영선수 빅터 요한슨도 결국 마라톤 수영 남자 10km에 불참했다. 그는 자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센강에서 수영한 뒤 몸이 아파서 기권했다"며 "확실한 건 센강에서 수영한 후 병이 든 사람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파리 시민들이 센강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방침이다.

테이프 붙여 국기 감추는 이스라엘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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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자르카 주프랑스 이스라엘 대사가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열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희생된 이스라엘 대표팀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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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로 불거진 이란과 이스라엘의 일촉즉발 상황이 파리 올림픽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에 의해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사령관이 사살되는 등 이스라엘 선수들은 정치적 이슈로 그야말로 살얼음판에 놓였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선수단은 파리 올림픽에 입성하기 전 "우리는 1972년 뮌헨 올림픽의 사건을 반복할 것"이라는 위협적인 익명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잊을 수 없는 '올림픽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1972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의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투해 인질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할 때마다 개최국의 각별한 신변 보호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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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열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희생된 이스라엘의 선수단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희생된 이들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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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당국은 파리 올림픽에 앞서 선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장기간 준비해왔으며, 선수단 경호 예산을 50% 확충했다. 개최국 프랑스도 이스라엘 선수단을 보호가기 위해 특별팀을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신 베트(Shin Bet)'는 2년간 파리 올림픽 준비를 계획하는 등 선수단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슈물리크 필로소프 신 베트의 전임 책임자는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헤즈볼라가 공격할 경우 대표단에 제공되는 보안 수준이 높아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크 애덤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대변인은 이스라엘 팀의 보안이 강화됐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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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센강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이 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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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가사이버국은 '암살 보상금'을 내건 SNS 게시물을 제거했다.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 살해하는 데에 4만 유로(약 6,000만 원)를 내건 영상이 올라왔다는 것.

여러 해 동안 올림픽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 선수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16세부터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마라톤 선수 마오르 티유리(33)는 "여행할 때 아예 국가를 드러내는 장비를 전혀 착용하지 않으며, 국가대표팀 백팩에 붙은 이스라엘 국기도 (보이지 않게) 테이프를 붙였다"고 말했다.

여자 서핑 종목에 출전한 아나트 렐리오르(24)도 마찬가지다. 그는 "요즘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게 많이 달라졌다. 나는 내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예전만큼 자주 말하지 않는다. 내 안전을 위해서"라고 털어놨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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