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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머스크가 선택한 美 텍사스, 그곳엔 ‘일자리 천국’ 만든 철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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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기업 투자 유치의 달인

그레그 애벗 주지사

조선일보

그레그 애벗 미국 텍사스 주지사는 20대에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면서 3선 주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누구나 인생엔 역경이 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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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텍사스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21년 테슬라 본사를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텍사스 오스틴으로 옮긴 데 이어, 최근엔 자신이 창업한 우주 기업 스페이스X는 물론 엑스(X) 본사도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이전하겠다고 폭탄 발언했다. 정치적 갈등 등 촉발점이 있긴 했지만 이유가 어찌됐든 텍사스가 기업을 하기엔 더없이 좋다고 판단한 건 틀림없다.

머스크만이 아니다. 수많은 기업의 눈이 텍사스로 향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기업 2위인 셰브론도 140년 넘게 본거지로 삼아온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옮긴다. 애플, 구글, 아마존도 텍사스에 주요 시설을 세우거나 확장 중이고 우리 기업 삼성전자도 텍사스 테일러에 반도체 공장과 R&D 센터를 세우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격적인 세율과 낮은 규제 문턱. 뉴욕타임스도 “작은 정부와 친기업을 지향하는 텍사스에 기업이 몰리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텍사스가 지난 20년 동안 외국인 직접 투자(FDI) 면에서 미국의 모든 주를 통틀어 최고 실적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그 중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텍사스에서 FDI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텍사스의 핵심 파트너다. 텍사스의 이 호황기를 이끌고 있는 그레그 애벗(67) 주지사가 처음으로 방한했다. 이번 한국행은 삼성 공장 방문 및 다른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다. 한국식 바비큐 요리를 즐겨 먹는다는 그를 지난달 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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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지사 그래그 애벗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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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선순환이 텍사스 원동력

애벗 주지사는 2014년 선거부터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자신의 지지 배경으로 “기업 유치에 따른 역대급 재정 흑자와 그에 따른 주민 재산세 환급”을 들었다. 이 동력으로 그는 2024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가 한 조치로 미국의 정치와 정책이 모두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실제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고 또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셈이죠.”

-텍사스가 미국 경제를 리드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은데요.

“텍사스 경제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해요. 22년 연속으로 미국에서 수출이 가장 많은 주를 기록하고 있고요. 다른 어떤 주보다 인구 유입이 많고 일자리가 늘고 있죠.”

-이유가 뭔가요?

“정책과 관련이 있어요. 텍사스에는 소득세가 없고 법인세도 없다고 보면 됩니다. 말 그대로 기업 친화적이에요.”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이 텍사스로 가려 하는군요.

“단순한 기업 유치 그 이상을 하려고 해요. 그 기업이 텍사스에 와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걸 해야죠. 그래야 기업도 성공하고 텍사스도 성공하는 길로 함께 가는 겁니다.”

-하지만 세금 문제는 진짜 어렵습니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뜨거운 감자거든요. 어떻게 과감한 결정을 하나요?

“텍사스는 두 가지 주요 수입원이 있어요. 하나는 판매세(sales tax,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부과하는 세금, 기본세율 6.25%)예요. 인구 증가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 세율이 일정하게 유지되거든요. 판매세로 더 많은 세입이 주정부로 들어오죠.”

-또 하나는요?

“다른 어떤 주보다 많은 석유와 가스를 생산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전 세계 국가 중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만이 텍사스주보다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죠. 여기서 나오는 세금이 있어요. 석유와 가스를 더 많이 생산할수록 주정부에 더 많은 예산이 되는 거죠. 어쨌든 인구가 증가해야 수입도 증가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른 세금은 없나요?

“주민 재산세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지난 회기에 주 재정 흑자가 매우 컸기 때문에 180억달러의 재산세를 인하했어요. 선순환에 따라 주민들도 혜택을 받는 겁니다. 내년 1월 회기에도 예산 잉여금으로 재산세를 더 많이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법인세, 소득세가 없으니 기업이 몰리고, 그렇게 일자리가 증가하고, 인구가 증가하는 선순환인 거네요.

“그렇죠. 텍사스에서 기업을 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수익의 더 많은 부분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 세계 기업이 몰려드는 거고요.”

-텍사스가 신규 일자리 창출 면에서도 1위죠?

“네, 하하. 기업들 덕분이죠. 또 텍사스 오스틴을 중심으로 반경 200마일 이내에 양질의 대학이 많아요. 좋은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댈러스에서 샌안토니오, 휴스턴에 이르는 소위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 많은 인구가 유입된 결과이기도 하고요.”

-AI 시대에 일자리는 줄어들고 MZ 세대 역시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는 확 달라졌습니다. 해결책이 있을까요?

“텍사스에선 한 세기 이상 지속돼 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실이 있는데요. 바로 기업이 텍사스를 택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바로 텍사스 사람들의 직업 윤리예요. 온종일 열심히 일하거든요. 그게 텍사스 정신이에요.”

-최근 삼성도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어요.

“삼성 같은 규모의 기업이 텍사스에 진출하면 삼성의 공급 업체나 부품 공급 업체 등 이른바 위성 회사라고 부르는 많은 기업이 텍사스로 이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기업들의 유치를 위해 또 뛰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 텍사스 테일러에 있는 삼성 시설을 공식 방문했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렇게 큰 프로젝트는 처음 봤어요. 정말 놀라웠지요.”

-삼성의 투자 유치 배경은 뭘까요? 텍사스엔 ‘삼성하이웨이’란 이름의 도로도 있는데요.

“세금 문제뿐 아니라 텍사스가 자체 법안을 통과시켜 지원하고 있다는 건데요. 반도체 제조만이 아니라 연구 개발을 유치하기 위해 약 10억달러 이상을 제공해요. 이미 텍사스가 10년 동안 미국 내 반도체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삼성 공장이 텍사스에 문을 열면 여기만큼 반도체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주, 아니 국가는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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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로 개인 주소지를 옮기고 트럭 공장도 세우기로 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오른쪽)가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만나 테슬라를 상징하는 손 모양을 함께 들어보이고 있다. /그레그 애벗 주지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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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넘어야 대선 판도 알 수 있어

텍사스는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와 달리 공화당이 강세를 보인다. 미국 내 ‘보수의 심장’이라 불린다. 애벗 주지사도 공화당 출신으로 선거 때 “우리 텍사스를 캘리포니아처럼 망치지 말자”고 하는 등 당내에서 강성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런 그도 11월 대선 결과 예측을 묻자 조심스러워했다. “상황이 복잡해요. 아무도 정답을 모르죠.”

-미국 대선에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는데요.

“아직도 선거는 초기 단계예요. 11월에 대선이 있으면 9월에 들어가야 미국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해요. 따라서 요즘 여론조사가 많이 나오지만 9월 정도까지는 정확도가 높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저도 지금은 판단을 못 해요.”

-향후 한미 관계를 전망한다면.

“미국은 한국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로 간주해요. 특히 세계가 첨단 기술의 길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은 그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주권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북한 문제는요.

“그런 맥락에서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해야죠. 그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한국과 한국 국민의 안전과 안보가 중요합니다. 주변국인 일본 등과의 동맹도요. 이게 제가 한국에 온 이유이기도 해요. 경제 발전으로 동맹을 강화해 세계의 잠재적 적들보다 앞서 나가야죠.”

-한국은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데요.

“텍사스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출산율이 높아서 매년 더 많은 아기가 태어나는 것, 그리고 살기 좋고 일하기 좋아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텍사스에 살고 싶어한다는 것. 텍사스는 미국에서 MZ 세대가 가장 많이 이주하는 곳이에요. 이유는 경제죠.”

-한국은 이민 확대 등도 검토하고 있는데요. 텍사스는 이민자 문제엔 매우 강경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민과 불법 이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현재 바이든 행정부에서 불법 이민이 기록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합법 이민이 아닌 불법 이민이 많아지면 국가는 통제력을 잃게 돼요.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수많은 테러리스트가 있는데, 국가는 현재 그들 일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라요. 명백한 위협이죠. 제가 강경하게 싸우는 대상은 불법 이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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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왼쪽) 대표이사 사장이 올해 1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건축 현장을 방문해 빌 그라벨 텍사스주 윌리엄슨 카운티장으로부터 선물받은 ‘삼성 고속도로’ 표지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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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장애는 아냐, 도전하길”

애벗 주지사는 20대였던 1984년 조깅을 하다가 폭풍우 속 갑자기 쓰러진 나무에 깔려 하반신마비 장애를 갖게 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텍사스 주법원 부판사, 주법무장관을 거쳐 2014년 주지사가 됐다. 그는 평소 휠체어를 타면서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미국의 주요 정치인 중 한 명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이에요. 저처럼 사고를 당했든 멀쩡하게 걸을 수 있든 상관없이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역경이 있죠. 중요한 건 그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도전하세요.”

-앞으로 정치적 꿈이라면.

“지금 저는 미국에서 둘째로 큰 공화당 주의 주지사예요. 다가오는 선거에서 공화당을 돕는 것이 가장 가까운 미래에 제가 할 일이고요. 2년 뒤에는 텍사스 주지사로 다시 선거에 나설 겁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한때 공화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는데요.

“하하. 제가 대선에 꿈이 있다고 해도 가장 먼저 발표할 곳은 한국이 아니지 않을까요?”

-정치를 하면서 후회한 일도 있나요.

“실수는 항상 일어나죠. 하지만 저는 후회에 머물지 않아요. 실수를 넘어 앞으로 할 일에 집중해야죠. 골프를 예로 들어볼게요. 훅이나 슬라이스가 나서 공이 오비가 됐거나 퍼팅을 놓쳤다고 생각해봐요. 거기에 연연할 겁니까? 걱정을 버리고 다음 홀에서 잘 치겠다는 생각을 해야죠. 그게 제가 살아온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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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주지사 그레그 애벗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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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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